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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미술학도 찾아요, 숲이 우거진 주택화방…식혜 한잔하고 가지예, 산꾼 사로잡는 안식처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 <6> 물만골을 찾은 사람들

  • 송진영 roll66@kookje.co.kr, 최혁규 기자
  •  |   입력 : 2023-06-27 19:16:06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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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민화갤러리’ 운영 문명화 화가
- “도심 속 자연 매료… 교통도 편리
- 생태예술촌 만들어지면 좋을 것”

- 버스종점 휴게소 사장 김남종 씨
- 노점상 접고 3년 전 이곳에 정착
- “노후 보내기에 이만한 곳도 없죠”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은 부산시청에서 불과 약 2㎞ 떨어진 곳이지만 ‘낯선’ 곳이기도 하다. 물만골을 안다는 사람도 ‘황령산 전망대를 오르는 길가에 있는 슬럼가’로 정도로 인식한다. 물만골 인구도 갈수록 준다. 행정구역상 연산2동 1통인 물만골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지난달 14일 기준으로 529명(349세대)이다. 2010년 주민등록상 914명(450세대)에서 2020년 589명(365명)으로 급감했다. 연제구가 발행한 ‘살고 싶어라 물만골마을’ 책자를 보면 1992년 이곳에는 411세대에 1600여 명이 거주했다.
문명화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위원장이 물만골에 있는 ‘숲민화갤러리’에서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물만골 휴게소’를 운영하는 김남종 사장이 밝은 표정으로 휴게소를 찾은 취재진을 맞이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최근 물만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깔끔하게 외관을 정비한 건물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술과 휴식 공간도 생겼다.

■“물만골을 생태예술촌으로”

“처음에는 물만골이 산골 오지에 있는 줄 알았어요. 부산도시철도 물만골역에서 걸어서 왔더니 금새 닿았어요. 원주민들에게는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마을버스를 타고 화방에 몇 차례 다니다 보니 공기도 좋고 참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 그리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 아닐까요.”

등산객을 제외하고는 외지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물만골이지만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미술학도’들로 잠시 북적인다. 민화를 배우려 물만골에 있는 한국미술협회 문명화 민화분과위원장을 찾아온 10여 명의 제자들이다. 민화는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린 소박하고 파격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그림’이다. 조선 후기 서민 계층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장수와 부귀 출세 다산의 염원을 담은 작품이 많다.

문 위원장은 6년 전 이곳에 우연찮게 화방을 얻었다. 연산동 주택가에서 있던 작업실이 재개발구역에 포함되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공간을 물색했다.

집이 있는 남구 대연동에 살면서 연산동 화방까지 자주 황령산을 넘어 다녔던 문 위원장은 고민 없이 물만골에 새 화방을 차렸다. “연산동에 화방이 있을 땐 황령산에 머리도 식힐 겸 종종 올라오곤 했어요. 해운대에 화방을 열까도 생각하다가 공기 좋고 물 좋은 물만골로 스며들게 됐죠.”

문 위원장이 물만골을 택한 이유는 자연·주거환경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부산시에서 도시조경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 출신인 문 위위원장은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건물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침 매물로 나온 물만골 마을버스 종점 옆 주택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집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마음이 확 트일 정도로 풍경도 좋았다. 화방 이름은 ‘숲민화갤러리’로 정했다.

물만골 화방은 문 위원장의 제자들에게 인기가 더 좋다. 문 위원장은 “민화는 자연 속 풍경을 담는 그림이 대부분이다. 제자들이 자연을 바라보면서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그림도 훨씬 잘 그려진다고 한다. 수업이 끝날 때면 황령산과 물만골의 명소를 안내해달라고 요청할 만큼 이곳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물만골이 청년예술인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는다. 그는 “부산에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을 제외하고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곳이 없다. 물만골은 생태예술적 환경이 매우 뛰어나고 도심과도 가까워 예술인들에게 각광받을 장소다. 부산에도 ‘날 것 같은 자연과 그 속에 오랜 세월 자리 잡은 주거지’의 보존이 필요하다면 물만골을 도심 속 생태예술촌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고 감히 제안해본다”고 덧붙였다.

■“물만골 명물 되고 싶어요”

황령산을 찾는 등산·관광객들은 물만골행 마을버스 종점에서 승하차를 한다. 마을버스 종점 바로 앞에는 ‘물만골 휴게소’가 있다. 간단한 음식과 음료로 허기를 채우고 갈증을 해결할 수 있어 ‘물만골 산장’으로도 불린다.

휴게소 외관은 아담하면서도 깔끔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달리 조리된 음식은 팔지 않는다. 주인장인 김남종(70) 사장이 직접 만든 호박식혜와 오미자차·레모네이드에 컵라면이 전부다. 영업시간도 매우 짧고 불규칙적이다. 간혹 산행에 지쳐 “식사할 만한 게 없느냐”고 물어보는 등산객이 있지만 김 사장은 “이곳은 무허가 주택이라 일반음식점처럼 조리된 음식을 팔 수 없다. 컵라면이라도 드시고 가시라”고 달랜다.

대전이 고향인 김 사장은 남편과 함께 부산으로 일자리를 찾아 왔다가 30년이 넘게 노점상을 하면서 자녀 2명을 키웠다. 김 사장은 “지금은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주스였지만 그게 언제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는지 아느냐. 내가 서면에서 노점상할 때 제일 먼저 만들어 유행시켰다. 새벽시장에서 과일을 사와서 밤 12시까지 과일주스 만들어 팔았는데 인기가 괜찮았다. 특허라도 신청해둘 걸 그랬다”며 웃었다.

김 사장이 물만골에 들어온 것은 3년 전인 2020년 초반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노점상 영업에 차질이 생기면서다. 자녀들도 “이제는 쉬면서 건강을 챙겨라”고 해 노점을 접었다. “30년 동안 서서 노점상을 했더니 무릎이 남아나질 않았어요. 지금도 두 무릎은 인공관절로 겨우 버팁니다.”

김 사장은 취미 삼아 만들던 된장·간장을 담가 팔아보려고 값싸고 넓은 마당이 있는 물만골에 정착했다. 대형마트와 중소병원이 가까이 있는 것도 물만골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한두 달 집에서 된장만 만들고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쑤시고 병이 날 것 같더라.” 휴양 차원에서 물만골에 왔지만 소일거리 없는 하루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때마침 집 근처에 매물로 나온 작은 집을 사들여 개조해 ‘물만골 휴게소’ 운영에 나섰다. 서서 움직이고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가게를 열었어요. 그런데 말이 가게지 파는 것도 몇 개 없어요. 문도 열고 싶으면 열고, 비오거나 쉬고 싶으면 닫습니다.”

김 사장은 “이제는 우리 애들 2명과 손주 5명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보면서 ‘물만골에 맛있는 호박식혜집 있더라’는 소리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나처럼 소박하게 취미나 특기를 살려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려면 물만골 같은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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