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에도 아찔한 급경사 계단에
- 안방 쪼개 만든 간이 화장실까지
- 상당수 집 슬레이트 지붕 그대로
- 노인 거주자들 건강·생명 위협
“비만 좀 온다 하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는데, 지붕 내려앉을까 봐 그게 걱정이다. 곰팡이나 습기 같은 한가한 소리 하지 말거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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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만골 주민인 정기선 어르신이 옥상에 내걸린 빨래를 걷으려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정 어르신은 물만골에서 거주한 지 50년이 넘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국제신문 취재진은 물만골에서 생활한 지 50여 일이 지나 장마가 계속되던 지난주 마을 초입에 있는 정기선(85) 어르신의 집을 방문했다. 여느 소형 단독 주택과 비슷한 공간 구성이었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부엌에는 큰 대야가 놓여 있었다. 습기가 많은 물만골에 빗물까지 떨어지니 집안은 눅눅했고, 곳곳에 곰팡이 자국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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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까지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건축물. 이원준 기자 |
마을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주민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 어르신의 집은 황령산로와 딱 붙어 있다. 이곳은 보행로는커녕 문을 여는 순간 자동차와 부딪힐 정도로 도로와 맞닿았다. 정 어르신는 옥상에서 빨래를 말린다. 하지만 옥상으로 향하는 길은 80대 중반의 어르신는 물론 취재진에게도 위험천만한 좁은 급경사의 계단이었고, 옥상은 난간 하나 없이 말 그대로 지붕 위 공간에 빨랫줄을 걸어둔 게 전부였다. 정 어르신는 “우리 영감이 이 집을 얼마나 잘 지었는지 50년이 넘었는데도 튼튼했는데, 빗물이 새는 거는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만골은 연제구 연산동과 수영구 남천동을 잇는 황령산로를 따라 윗마을과 중간마을, 아랫마을로 주거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중간마을과 윗마을에는 깔끔하게 외관이 단장된 일부 건축물이 있다. 마을 입구의 아랫마을과 황령산을 등지고 왼편으로 황령산로에서 거리가 먼 산기슭에 있는 집은 지어진 지 오래여서 주거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문제는 물만골의 주거환경이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실제 마을 곳곳에는 화장실이나 창고 지붕에 석면이 검출되는 슬레이트가 그대로 있었고, 심지어 벽면까지 통째로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공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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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춘 어르신이 천장이 낮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
윗마을에 있는 이동춘(74) 어르신의 집은 열악한 물만골의 주거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곳은 정 어르신의 주거지보다 더욱 열악했다. 방 1칸이 이 어르신 내외가 거주하는 곳으로, 방 1칸에 창고와 주방이 있는 단일 건축물이었다. 이 어르신은 안방 공간을 쪼개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지만 성인 남성이 허리를 굽혀야 될 만큼 천장이 낮은 주방은 손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어르신의 집은 지붕과 벽면에는 석면이 배출되는 슬레이트를 패널이 감싼 구조였다.
이 어르신은 “슬레이트에서 석면이 나와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거 우리도 잘 안다. 몰라서 슬레이트 놔두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철거하고 개량하는 비용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물만골에는 이 어르신의 집처럼 상당수의 건축물은 석면이 검출되는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지 않은 채 그 위에 패널을 입혀 덧대어 사용하는 실정이다. 물만골은 부산보건환경연구원이 석면노출 우려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곳(국제신문 지난 5월 17일 자 1·3면 보도)이기도 하다.
부산시의회 김형철(연제2) 의원은 “무허가 건축물의 특성상 정비가 쉽지 않지만 석면에 생명이 위협받는 주민을 외면할 수는 없다. 부산시와 연제구가 물만골 주민에게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주거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견인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