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시설 설치 의무 규정이 생기기 전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가 화재 사고에 취약하다는 본지 지적(국제신문 지난 12일 자 1면 보도)에 따라 부산시가 완강기 설치 지원을 추진한다.

지난 9일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에 불이 나 이를 피해 발코니에 매달려 있던 일가족 3명이 추락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국제신문DB

부산시는 화재 대피시설 등 소방시설이 없는 노후 아파트 1210단지를 대상으로 완강기 설치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16일 밝혔다. 1992년 7월 25일 신설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동주택의 3층 이상인 층의 발코니에는 화재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피할 수 있는 피난구나 경량 칸막이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규정이 생기기 전 지어진 아파트는 이러한 설치 의무가 없어 화재 사고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지난 9일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 7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일가족 3명이 숨지거나 크게 다쳤다. 이들은 화재를 피해 발코니에 매달려 있다 추락했다. 이 사고로 아버지와 베트남인 외할머니가 숨졌고 아들은 발목이 골절되는 등 중상을 입었다. 사고가 난 아파트는 규정 신설 전인 1992년 2월 준공한 곳으로, 경량 칸막이·화재대피공간·하향식 피난구와 같은 대피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스프링클러와 완강기 또한 없어 화재 사고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를 두고 부산시와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지난 13일 합동회의를 거쳤지만, 소방시설 점검과 더불어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방안 정도만 도출됐다. 20~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에 대피시설을 새롭게 설치하는 시설 개선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진 탓이다.

이에 부산시는 노후 아파트에 완강기 설치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대피시설보다 설치가 간편한 세대별 완강기를 통해 화재 사고 발생 시에 대피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시는 매년 시행 중인 ‘노후공동주택 주거안전지원사업’의 예산을 활용해 완강기 설치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업의 예산은 약 2억 원으로, 노후 아파트 전 세대에 완강기 설치를 지원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부산시에 따르면 대피시설 규정 신설 전 사용 승인된 공동주택은 1210단지(14만6859세대)로, 완강기 설치 비용을 5만 원으로 단순 계산해도 약 75억 원이 필요하다.

이처럼 예산 부족 문제에 부산시는 노후 아파트에서 직접 완강기 설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아파트에서 관리비 등으로 가지고 있는 예산을 완강기 설치에 활용할 수 있게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이를 위해 완강기 설치 홍보나 캠페인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화재는 한 곳에서 발생하지만, 주변 세대에 피해가 번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주민들의 (완강기 설치)동의가 더 잘될 거로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