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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언덕’서 만나는 금관가야 비밀의 열쇠

가야사…세계속으로 <2> 김해 대성동 고분군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1-14 19:08:5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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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도시개발 과정서 발견
- 부산 경성대팀 ‘애구지’ 발굴
- 1호분서 철제품·통형동기 출토
- 금관가야 실체 밝히는 시발점
- 1~5세기 묘제 변화도 한눈에

- 신비의 왕국 가야 궁금하다면
- 마실가듯 고분군 찾아 가보길

김해 대성동 ‘왕가의 언덕’에 섰다. 여기서 왕가는 금관가야(가락국)의 왕통을 뜻하지만, 기실 시조 수로왕과 마지막 구형왕을 빼면 나머지 왕들은 이름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미스터리 가야사의 실상이다. 하지만 ‘왕가의 언덕’에 서면 보이지 않을 듯 어렴풋이 보이는 금관가야의 진실에 한발 다가선다.

대성동 고분군은 김해 시내의 야트막한 둔덕이지만 전망이 훤하다. 김해벌의 들바람과 신어산 분산에서 부는 산바람이 여기서 만난다. 가락국 탄생 설화를 품은 구지봉이 멀지 않고, 수로왕릉과 봉황동 유적도 지척이다.

금관가야의 흥망을 생각하며 대성동 고분길을 걷는다. 잔디 옷을 껴입고 말쑥하게 단장된 산책로.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다. 어떤 가야의 전령이다. 둥글넓적 후덕한 인상이 낯익다.
금관가야의 비밀을 간직한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을 서쪽에서 바라본 전경. 고분군은 해반천에 접해 남북으로 길게 형성돼 있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제공
■삶과 죽음이 포개진 공간

대성동 고분은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가 포개진 공간이다. 이곳에선 신화가 역사를 만나고, 도굴과 발굴이 부딪히고, 추론과 주장, 가설과 통설이 뒤엉킨다. 그래서 무척 흥미로운 장소이면서 난해한 공간이다. 무덤의 형태와 변화, 그 속의 토기편, 철기류, 뼛조각 등을 끼워 맞춰 풀어내는 퍼즐,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금관가야다.

아리송한 금관가야를 깨운 건 부산의 인디아나존스(고고학자)들이었다. 대성동 고분은 경성대박물관이 1990~2001년 4차례, 이후 대성동고분박물관이 2009~2020년 6차례의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했다. 10차례의 발굴 조사 끝에 학계는 “금관가야가 실재했고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한 해상왕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기 가야의 맹주인 금관가야의 성립과 전개, 정치, 사회구조를 해명하는 데 대성동 고분은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금관가야를 신화의 영역에서 역사의 무대로 옮겨준 대성동 고분.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전 발굴 현장으로 가 본다.

■끈기와 열정이 이룬 대발굴

4세기 대에 축조된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의 목곽묘 39호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제공
“엄청난 것이 나왔어요. 왕묘예요 왕묘! 가야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에요!”

1990년 7월 9일, 국제신문 문화부로 황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발굴하던 경성대 발굴팀이 현장에서 보내온 낭보였다. 평소 친분을 유지하던 발굴팀이 특별히 ‘찔러준’ 문화재 특종이었다.

다음 날 오전, 대성동 1호분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날 국제신문의 1면 머리기사 표제는 ‘금관가야 왕릉 첫 발굴, 임나일본부설 뒤엎을 획기 자료 출토’였다. 실로 대문짝만한 기사였다. 1면에 이어 3면에는 발굴책임자인 신경철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다음 날 전국의 유수 신문과 방송들이 앞다퉈 이 사실을 보도했다. 고고학계는 흥분했고 일본 학자들의 현장 방문도 줄을 이었다. 조용하던 김해가 시끌벅적해졌다.

대성동 고분군은 1990년 도시개발 과정에서 운 좋게 발견됐다. 시작은 한 고고학자의 열정과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경성대 발굴팀은 당국의 체계적 지원이나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술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대성동 일대는 표고 22m의 구릉성 밭뙈기였다. 발굴팀은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이곳을 ‘애구지’(애꾸지 또는 애꼬지)라 불렀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애구지는 ‘애기 구지봉’이란 의미. 가락국 건국 신화가 깃든 구지봉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봤다.

예산을 아끼느라 수로왕릉 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흙과 씨름하던 발굴팀은 한 달 만에 환호성을 질렀다. 가장 높은 쪽의 콩밭을 가로세로 10m씩 걷어내고 2m 정도 파 내려가자 희미한 목곽흔이 나타났다. 목곽은 썩어 내렸고 안에는 온통 흙이었다. 곽 주변에는 개구멍 비슷한 큼직한 구멍이 세 개 뚫려 있었다. 도굴범이 다녀간 흔적이었다.

장방형 구덩이는 모두 세 개. 긴 것은 길이 8.5m, 너비 4.8m였다. 경주 외엔 영남지역에서 못 보던 5세기 초의 초대형 주·부곽식 덧널무덤이었다. 주곽에는 다량의 철제품과 함께 무덤 주인과 5명의 순장자가 매장되어 있었다. 주술 도구로 짐작되는 통형동기도 나왔다. 통형동기는 일본 긴키지역에서도 출토된 바 있는 교역품. 과거 100년 동안 일본에서 4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대성동 고분 한곳에서만 14점이 나와 가야 원산지설이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대성동 1호분으로 명명된 이 무덤은 이후 금관가야의 실체를 벗기는 시발점이 되었다. 비록 도굴 피해를 입긴 했어도 땅속 깊은 곳의 유물은 온존했으니 그것도 천행이다. 이어 발굴된 2호분에서는 일본 고훈시대 무덤에서 종종 출토되는 파형동기(바람개비 모양 청동 장식)가 나와 관심을 집중시켰다.

작가 최인호는 가야의 비밀을 캐는 장편 ‘제4의 제국’에서 파형동기의 원형이 인도의 비슈누 여신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고, 이는 허왕후가 인도에서 온 여인이라는 설화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해 주목을 받았다.

■금관가야의 타임캡슐

대성동 고분은 금관가야의 타임캡슐이다. 고분은 애구지 위쪽부터 아래로 넓게 분포한다. 규모가 크고 부장품이 화려한 무덤은 위쪽에, 규모가 작은 무덤들은 언덕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봐서 계급 분화와 위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야의 묘제 변화도 드러난다. 1세기부터 5세기 후반까지 시기에 따라 목관묘→목곽묘→석곽묘→석실묘로 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지고 부장품이 많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석곽묘는 나무 대신 돌로써 무덤의 네 벽을 만드는데, 주로 4~5세기대에 사용되었다. 석실묘는 따로 출입구를 만들어 여러 차례 추가장이 이루어졌다.

금관가야는 5세기 후반에 구릉지 남쪽 끝에 축조된 석곽묘를 끝으로 고분 축조가 중단된다. 고구려 남정(南征)에 따른 금관가야의 멸망을 추론하는 단서다. 대성동 고분의 이같은 묘제 변화는 다른 가야 고분과 거의 흡사해 가야 연맹체제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대성동 고분군은 10차례의 발굴 조사를 거쳐 총 22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됐다. 특이한 것은 이렇다 할 봉분이 없다는 것. 목곽분이 내려앉고 오랜 세월 삭평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자리엔 흙을 덮고 잔디를 입혀 원래 고분 자리와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주차장이 있는 남쪽에는 2003년 대성동고분박물관을 세웠고, 북서쪽 언덕배미엔 29호분과 39호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한 노출전시관을 만들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는 1만여 점의 각종 유물과 함께 대성동 고분의 묘제 변화와 순장 여인의 복원 모습, 금관가야의 흥망성쇠를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가야는 부산 경남 사람들의 삶의 원형질을 형성한 문명이다. 신비의 왕국 가야가 궁금하다면 ‘마실 가듯’ 김해 대성동 고분을 찾아 가 볼 일이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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