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ｍ 내 초등학교 2곳 위치
- 이미 3619명 탄원서 등 제출

- 최근 사천 유사 판례 주민 승소
- 환경오염 개연성 입증 여부 주목

부산 사하구의 조선소 인근 주민이 산화 철 분진 등 날림먼지로 인한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며 조선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한다. 앞서 주민 3619명은 탄원서를 사하구 등 유관기관에 제출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이 같은 법적 대응을 시도하는 것이다. 경남 사천시 주민이 제기한 유사 소송에서 대법원이 조선소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한 것도 주민의 움직임에 힘을 보탠다.

부산 사하구 감천동 동일조선소 앞에서 18일 주민이 조선소를 가리키며 날림먼지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18일 오후 사하구 감천동 동일조선소 앞. 조선소와 불과 50ｍ 떨어진 주택에서 50년 동안 거주한 변용자(73) 씨가 “오늘처럼 비가 오고나면 집 마당, 베란다 창틀에 시커먼 쇳가루가 쌓이고 페인트 작업이라도 하면 온동네에 페인트 가루가 날려 자동차에 달라붙고 난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 씨의 가장 큰 걱정은 10살 난 손주의 건강이다. 변 씨는 “3살 때부터 조선소 앞에서 키운 손자는 기관지가 약해 1년 내내 가래 기침을 달고 산다”며 “나도 지난해 편도 수술을 했는데 의사가 집에 쇳가루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더라. 조선소가 몸을 망쳐놨구나 싶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 일대 주민은 변 씨처럼 이 조선소의 날림먼지로 인한 건강 피해와 생활권 침해를 호소한다. 무엇보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의 불안이 크다. 동일조선은 1981년부터 43년째 이곳에서 선박 수리와 건조 작업을 해온 수리조선소로 인근 400ｍ 내 감천초등학교와 서천초등학교가 있다. 13살·11살 두 자녀를 둔 김현정(43) 씨는 “온 가족이 천식으로 고생해 지난해 집이 안 팔렸지만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반 친구들도 호흡기 질환과 아토피를 달고 사는 실정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학 가는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부산시와 사하구는 뭘 하고 있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일대 주민은 조선소가 배출하는 날림먼지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면서 사하구와 국민의힘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 등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같은 해 10월에는 동일조선이 날림먼지 처리 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부산시가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주민의 주장이다. 이 지역 출신의 사하구의회 조재영 의원은 “조선소는 불시점검이나 단속에 걸려도 그때만 반짝 신경 쓰고 평소엔 허술한 그물망만 쳐 놓고 작업하기 일쑤다”며 “주민의 건강, 특히 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인데 관할 지자체가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 근본적인 대책은 물론 새학기 전에 임시 대책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사천시 모례마을 주민이 인근 조선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민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의 피고인 조선소가 주민 85명에게 총 1억6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소의 날림먼지 배출과 주민 호흡기 질환, 정신적 피해 등 환경오염 개연성을 인정한 첫 확정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