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취객이 집 앞에 방치돼있다 숨진 사건과 관련해 그를 집 앞에 데려다줬던 경찰관이 유죄 판결을 받자 경찰 내부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술 취한 시민에 대한 보호조치를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 경찰관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관련 법제도 정비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최근 각각 벌금 500만 원과 4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다.
이들은 2022년 11월 30일 새벽 112 신고를 받고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A 씨를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야외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왔다. 경찰이 현장에서 철수하고 6시간 뒤 A 씨가 저체온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서울에는 한파 경보가 발령돼 최저 기온은 영하 8.1도를 기록했다.
경찰은 A 씨의 상태와 당시 기온 등을 근거로 사망 예견 가능성이 충분했던 만큼 구호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A경사와 B경장을 검찰에 넘겼다.
당시 피해자 유족들은 이들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냈지만 검찰은 지난해 9월 A경사와 B경장을 약식 기소했다. 이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최근 경징계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판결 내용이 지난 14일 알려지자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지휘부에 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법원이 일선 치안 현장의 고충을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고 현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계적 판결’을 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다.
업무상 과실죄는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를 태만히 한 것이다. 생명·신체 등에 위험이 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사람을 다치거나 숨지게 했을 때 적용한다.
경찰 내에선 “주취 신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주취자들을 모두 집 안까지 데려다주라는 얘기냐”라는 비판과 함께 “하위 경찰관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 것도 지나치다”라는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주취자에 묶여 긴급 범죄 신고 대응 늦어질 수도”, “책임은 경찰이 아닌 주취자에게 책임 물어야” 등의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술 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찰의 보호조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른다.
해당 법 4조에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한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특별한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 외 소방 당국, 지자체 등 유관기관의 협력 체계나 역할 분담도 명확하지 않다.
경찰은 취객 사망사고가 잇따른 직후인 지난해 5월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을 손질했다. 의식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의사능력이 없는 주취자는 소방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등의 내용이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주취자 관련 전국 112신고 건수는 465만 5144건이다. 연평균 93만 1028건의 주취자 관련 신고가 돌아온 것이다.
주취자 관련 112 신고가 90만 건 안팎을 기록하지만 주취자 병상이 있는 의료시설은 전국 49개뿐. 특히 인구 939만 명이 몰려 있는 서울에는 4개 병원 14개 병상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빈 병상을 찾아 ‘뺑뺑이’를 도는 일이 다반사다.
경찰은 근본 대책으로 주취자 보호조치 관련 법을 추진 중이나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다.
지난해 6월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해당 법안은 경찰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의료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 이송·치료·보호시설 운영 등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발의안과 비슷한 시기에 발의된 주취자 관련 법안 3건 모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