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연맹, 이는 맞는 말일까. 가야는 전기와 후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속한 독특한 정치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가야의 특성에 인류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가야가 과연 연맹체가 맞느냐, 특히 단일 연맹체를 이룬 적이 있느냐를 두고 질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의 통설은 단일 연맹체론이다. 가야 제국이 특정한 국(國)을 맹주국으로 어떤 형태든 연맹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5가야조가 하나의 근거가 된다. 서기 400년을 전후해 전기에는 김해 금관가야가, 후기에는 고령 대가야가 맹주로 연맹체를 형성했다는 논지다. 역사학자 손진태, 이병도에 이어 김태식(홍익대 명예교수)이 이 설을 정리, 논리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단일 연맹체설은 연맹체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고, 분립된 국가를 바탕으로 한 단일한 연맹체가 수백 년간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대안 논의 중 하나가 연맹체 부정론(천관우, 이영식)이다. 가야 제국 가운데 중심 세력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나 연맹체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또 하나는 대가야 연맹체론. 주보돈(경북대 명예교수)은 2017년 자신의 저서 ‘가야사 새로 읽기’를 통해 전기 가야의 중심이었던 구야국(금관국) 체제 때는 대체로 변한 사회의 모습을 띠며, 4세기 초부터 서서히 변한 사회가 변화해 가야 연맹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해 파장을 낳았다. 그는 가야의 중심은 줄곧 대가야로 보았다.
지역연맹체론은 일종의 절충안이다. 가야권이 하나의 단일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설에서 바뀌어 대가야권(고령 합천 등 주변 지역), 금관가야권(김해 부산 등), 아라가야권(함안 마산 등), 소가야권(고성 진주 등) 등 지역별로 중간 규모 연맹체가 여럿 있었다는 주장이다. 부산대 백승충 교수의 설이다.
이같은 복잡한 논의는 가야 정치체의 주요 성격이자 특징으로서 앞으로 세계유산 가야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