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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을 앞세운 가야, 초기엔 신라 압도…‘고구려 남정’으로 궤멸적 타격 입어

가야사…세계속으로 <4> 가야 연맹과 전쟁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1-28 18:36:2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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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장기·농기구 등 선진기술 적용
- 삼국사기에도 ‘가야군 위력’ 담겨
- 교역권 쟁탈 위해 포상팔국 전쟁
- 광개토왕 파병은 세력 재편 불러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가야’ ‘가락’ ‘가라’라는 이름에서 연약한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기록이 거의 없어 실체가 베일에 가려진 건 사실이지만, 가야고분군에서 취합되는 정보는 강성·상업·문화 제국의 이미지다. 그 바탕은 철이다. 고분 출토품을 살펴보면 덩이쇠 투구 갑옷 쇠창 꺾쇠 화극 칼 등자 낫 쇠스랑 같은 철제품이 유난히 많다. 철은 곧 기술이자 무력의 원천이다. 철기시대, 드디어 전쟁이 격렬해진다.

낙동강을 따라 산맥이 갈라지는 틈새마다 나라들이 들어섰고, 나라마다 대장간이 번창했다. 마을마다 쇠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대장장이들은 쇠터의 돌을 달궈서 쇳물을 끌어내고, 덩이쇠를 녹이고 두드리고 갈고 벼려서 병장기와 농기구를 만들었다. 대도엔 환두를 장식하고 오묘한 철 상감(象嵌)기법과 합금술을 활용한 철의 예술을 구현했다.

가야는 철을 무기로 한반도 남부 고대문명을 개척했다. 관건은 제철 기술과 철 산지, 철 교역권의 확보였다. 초기에는 김해 구야국(가락국)이 철 주도권을 잡았으나, 5세기 들어선 대가야가 주역이었다. 이 시기엔 가야가 신라보다 우위였다. 가야 고분의 철제품들은 철기시대를 웅변하면서 전쟁을 통한 정복의 역사, 핏빛 전흔을 말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대성동 ‘가야의 길’에 설치된 가야 전사 조형물. 전기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국은 한반도 철기시대를 주도하며 군세 등에서 신라를 압도했다. 박창희
■가야-신라의 전쟁

때는 서기 1~2세기, 곳은 황산하 어귀. 정사 ‘삼국사기’의 전황 보고다.

신라 탈해 이사금과 가락국 수로왕은 대립 관계였다. 76년, 수로왕이 신라를 공격하면서 처음으로 신라와 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77년, 신라가 가야군 1000을 사살하며 첫 격돌은 신라의 승리로 돌아갔다. 87년, 신라 파사 이사금은 가소와 마두(양산·울산 일대로 추정) 2성을 쌓아 가야의 침략을 대비했다. 94년, 마침내 가야가 마두성을 함락시키며 승기를 잡았다. 96년, 가야가 신라의 남경을 공격하여 적장을 사살했으나 가야군의 피해가 컸다. 97년, 신라 파사 이사금과 수로왕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20여 년간 진행된 1라운드 전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102년, 수로왕이 신라를 도와 진한의 음즙벌국과 실직국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는 등 신라-가야 사이에 잠깐의 평화가 깃들었다. 115년, 신라 지마 이사금이 직접 1만 군사를 이끌고 황산하(양산과 김해 사이의 낙동강 하류)를 건너 금관가야를 공격했으나 가야군의 복병에 걸려 참패하고 왕만 구사일생 살아 돌아갔다. 10여 년에 걸친 2라운드 전쟁은 가야의 승리였다. 이후 80여 년간 신라-가야 사이의 큰 충돌은 없었다.

‘삼국사기’가 신라 중심의 기록임을 감안하고 봐도 가야병의 군세가 만만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가야가 왜 주체적 기록을 갖지 못했는지 미스터리다, 신라본기, 백제본기와 더불어 ‘가야본기’도 있었을 터인데…. 김부식의 가야 홀대는 두고두고 아쉽다. 자율과 다양성의 가치로 세계문화유산이 된 가야사가 건너야 할 역사의 강이다.

■포상팔국 전쟁

철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한반도 남부에 전쟁 압력이 높아진다. 철의 강력한 무력이 서로 충돌하면서 사회 계급이 분화하고 ‘국가’ 형성이 가속화한다. 문헌에 따르면 가야 지역에서 ‘대국(大國)’은 4000~5000가(家), ‘소국(小國)’은 600~700가라고 한다. 2~3세기가 되면 가야 각국 중 금관가야와 아라가야는 대국의 면모를 드러낸다.

3세기 들어 가야 소국들은 해상교역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 중국-낙랑-가야-왜를 잇는 해상무역 중계권은 각국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즈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자.

201년, 금관가야 거등왕이 신라에 동맹을 요청하자 신라가 받아들였다. 209년, 소가야(고성)를 비롯한 남해안 연안 8개 가야 소국이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에 반란을 일으켰다(포상팔국의 난). 신라-금관가야가 합세해 8국을 물리쳤다. 212년, 소가야 골포 칠포의 3국이 신라의 갈화성(울산)을 공격하자 이번에도 금관가야와 신라가 힘을 합쳐 승리를 거뒀다. 이것이 이른바 ‘포상팔국(浦上八國) 전쟁’이다. 포상팔국은 포(浦), 즉 항구를 끼고 있는 고성 창원 사천 칠원 등지의 8개 나라다. 이 전쟁은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충돌이다. 이 전쟁 이후 금관가야는 경남 서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로 성장한다.

포상팔국 전쟁은 가야에서 교역 중심이 종전의 ‘늑도(사천) 교역’에서 ‘김해 교역’으로 대체됐음을 의미한다. 기원전 1세기 이후 중개무역 기지였던 늑도 교역은 기원후 2세기께 김해 교역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환두대도. 대가야의 군사력을 상징한다. 박창희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南征)

400년, 금관가야가 백제,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해 경주를 포위했다. 위기를 느낀 신라 내물마립간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하고, 고구려 광개토왕은 다목적 전략으로 남쪽 정벌에 나섰다. 5세기 초 한반도 전체가 대규모 전쟁에 휩싸였다. 중국 지안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영락 10년 경자년(400년)에 광개토왕은 보기(步騎,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다. 신라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 사이에 왜가 가득 차 있었다. 바야흐로 고구려 군대가 이르자 왜적이 물러가므로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렀다. 성을 공략하자 성이 곧 귀순했다…’.

정복군주 광개토왕 비문에는 서기 400년 전후의 급박한 한반도 정세가 언급돼 있다. 전체 판세는 가야-왜-백제가 한편을 먹고 고구려-신라 동맹군이 맞붙은 형국. 비문의 글자 누락·멸실로 수많은 해석이 따르지만, 이때 금관가야가 궤멸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남정의 주목적은 고구려가 백제를 견제·제압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한강 진출을 둘러싸고 일진일퇴하며 ‘30년 전쟁’을 벌였다. 이에 백제는 고구려의 위협 속에서 가야-왜를 잇는 3국 동맹 축을 만들어 활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광개토왕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전쟁의 승자는 고구려, 패자는 뜻밖에도 금관가야였다. 이를 계기로 전기가야연맹은 해체되고 아라가야와 대가야가 서서히 부상한다. 가야사의 일대 격변기였다. 이후 가야의 전쟁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믿을 경우, 532년 금관가야 항복, 562년 대가야 멸망전으로 전개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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