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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야왕국…함안의 모든 길은 말이산으로 통한다

가야사…세계속으로 <5> 아라가야의 ‘불꽃’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2-04 19:19:0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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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기 가야연맹 ‘2인자’ 부상
- 국내 첫 말갑옷 출토된 마갑총
- 아라가야 강력한 군사력 짐작
- 말이산은 ‘한국의 폼페이’ 비유
- 아라홍련 꽃피운 고대 강소국

아라, 이름이 새첩다. 예쁜 여식애의 이름. 이게 경남 함안 땅에 존재한 고대 국가의 이름이라니…. 아라가야, 아야가라(阿耶加羅)란 이름은 ‘삼국유사’ 5가야조에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아시랑국(阿尸良國) 혹은 아나가야(阿那加耶)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안야국(安耶國),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과 ‘일본서기’에는 안라(安羅)라고 해 이름이 출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라·아시라·아야·아나·안라 등은 모두 우리말의 음운 변화에 따른 이름이다. 이것이 지금은 아라가야로 정리됐다. 일연 스님의 작명 실력에 감탄한다. 김훈 소설 ‘현의 노래’에선 아라가 대가야 가실왕을 모시는 젊은 순장 시녀로 등장한다.

■불꽃무늬토기가 말하는 영역

아라가야의 영광을 보여주는 경남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 전경. 함안의 모든 길은 말이산을 향한다고 할만큼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제공
아라가야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몇 개 있다. 불꽃무늬토기, 사슴모양뿔잔, 말이산, 말갑옷, 아라홍련꽃 등이다. 이 중 화염형투창고배, 즉 불꽃무늬토기는 굽다리 접시 받침에 불꽃 문양을 새긴 토기로 아라가야의 상징이다.

이 토기가 출토된 곳이 함안을 중심으로 서쪽 진주시 일부 지역, 북동쪽 창원시 일부, 서북쪽 의령군 일대, 남동쪽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지역인데, 대략 선을 그으면 5세기대 아라가야의 전성기 영역이 나온다.

말이산 45호분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사슴모양뿔잔은 아라가야의 명품 토기다. 맑은 눈의 사슴이 뭔가 생각난 듯 살짝 머리를 돌려 술잔을 바라본다. 사슴 등에는 U자형의 잔이 얹혀 있고, 몸통을 떠받친 굽다리에는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불꽃무늬 사이로 토기가 숨을 쉬는 듯하다. 조형미가 압권이다. 불필요하고 복잡한 것들이 제거되고 중요한 특성만 살린 미니멀리즘의 예술세계라 할까.

그리고 말이산! 단 몇 줄의 역사 기록, 미지의 아라국 역사를 온전히 품은 곳, 한국의 폼페이, 아라가야의 흥망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 말이산 고분군을 빼고는 아라가야의 진정에 다가갈 수 없다. 백문 불여일견, 가슴에 ‘불꽃’을 피워 자박자박 말이산을 오른다. 겨울 언덕 너머 봄바람이 분다.

■아라가야 우두머리들의 안식처

함안의 모든 길은 말이산으로 향한다. 함안군청과 함안박물관을 끼고 있는 말이산 고분군은 평지에 불룩 솟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해발 40~70m의 나지막한 구릉이지만 올려다보든, 내려다보든 사방의 경관이 뛰어나다. 아라가야 왕들은 그렇게 권세와 위엄을 보이고 싶었으리라. 이곳엔 10m 이상 대형분이 50여 기, 봉토가 확인된 것이 200여 기 산재한다. 단일 고분 유적으로 국내 최대급이다. 멸실했거나 확인되지 않은 고분을 합하면 1000여 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말이산 45호 고분에서 출토된 봉황 장식 금동관은 아라가야의 문화 수준을 웅변한다. 복원된 금동관은 길이 16.4㎝, 높이 8.2㎝로, 길쭉한 관테 위에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세움 장식이 올려져 있다. 두 마리 새 모양 세움 장식이 마주 보는 대칭 구도는 삼국시대 금속공예품 가운데 처음 보이는 사례다.

‘말이’는 순우리말인 ‘마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두머리’라는 의미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 즉 ‘왕의 산’을 뜻한다.

봉긋봉긋한 대형 고분을 가졌기에 함안은 일제강점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일제 관변학자들은 ‘임나일본부’ 증거 찾기에 골몰했다. 일본학자인 구로이타 가쯔미(黑板勝美)는 김해·함안 지역 조사에 나서며 “일본서기에 따르면 임나일본부는 분명 한반도 남부 어디에 있다. 내 손으로 그 증거를 찾겠다”(‘매일신보’ 1915년 7월 24일 자)면서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던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김해와 함안에서 임나일본부의 흔적을 찾지 못한 일제는 1939년 고령 지산동 39호분을 파헤쳤으나 역시 성과는 없었다.
아라가야 조형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말이산 45호분에서 출토된 사슴모양뿔잔(왼쪽 사진)과 아라가야의 봉황장식 금동관. 함안군 제공

■가야읍·가야동 등 지명 유지

말이산 고분을 품은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가야동 일대는 지명이 말하듯 현존하는 가야왕국이다. 옛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지역민들의 염원이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으로 꽃 핀 것이니 아름다운 유산이다.

말이산 고분 주변에는 아라가야의 왕과 왕궁을 연상케 하는 지명이 많다. 삼봉산과 가야동 사이가 ‘선왕동’이고, 가야동 앞에는 함안천에 합류하는 ‘대문천’이 있다. 그 사이에 ‘진터’가 있고 남서쪽으로 ‘남문’, ‘남문 내’ ‘남문 외’, 그리고 가야동의 서북쪽에는 ‘궁 뒤’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게다가 ‘말이산(왕의 산)’까지 떡 버티고 있으니 지역민들의 자부심을 알만하다.

함안의 아라가야 찾기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졌다. 1587년 편찬되어 현존 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함주지’에는 말이산 고분군의 위치와 모습, 봉토분의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2018년 말에는 아라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가야리에서 높이 8.3m, 잔존 길이 약 2㎞의 토성벽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 망루 무기고 강당 내무반 취사반 등 부대 건물터 14개 동이 드러나 아라가야 왕성 부활의 청신호가 켜졌다. 머잖아 번듯한 아라가야 궁성이 재현될 조짐이다.

■말갑옷이 깨운 고대사

1992년 6월 6일 아침 신문 배달 소년이 함안 도항리의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신기한 토기편과 철기 조각을 발견했다. 굴착기가 막 땅을 파헤치려는 찰나였다. 때마침 역사학을 전공한 신문사 지국장에게 소식이 전해졌고 함안군청에 신고되어 발굴이 진행됐다. 드러난 유물은 완형에 가까운 말갑옷으로, 길이 230㎝, 너비 48㎝, 목과 가슴을 가리는 경흉갑(頸胸甲) 형태였다. 피장자의 오른쪽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듯 환두대도가 놓여 있었다. 이 말갑옷은 2009년 경주 무덤에서 발견되기까지 한반도에서 출토 사례가 없었던 실물로, 함안 마갑총(馬甲塚)이라 이름 붙여졌다.

말갑옷은 뛰어난 철 가공기술과 막강한 경제력이 없으면 만들어낼 수 없는 전략물자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말갑옷은 말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4종류 450여 장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들었다. 당시 전문 장인집단이 있었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개마무사(鎧馬武士·갑옷 입힌 말을 탄 기병)가 아라가야에도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학자들은 말갑옷 자체보다 말갑옷을 입고 활동한 주인공의 궤적과 당시 중장기병의 전술, 시대 상황 등에 주목하면서 연구하고 있으나 마갑총의 비밀은 속 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다. 출토된 말갑옷은 1998년 7월 국립김해박물관 개관 기념전에 처음 공개된 후 그곳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아라홍련의 향기

말이산 고분군 자락에 들어선 함안박물관 앞에는 연꽃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름철 이곳에 가면 귀한 연꽃을 만나는데, 바로 아라홍련이다. 아라가야 멸망 후 신라가 쌓았다는 성산산성에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의 목간과 700년 전의 연씨(아라홍련 씨앗)가 출토되었다. 이 씨앗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2010년 7월 싹 틔우기에 성공하여 붉은빛이 감도는 커다란 연꽃을 피웠다. 아라가 홍연으로 꽃피니 아라홍련이다. 마치 가야 여인 아라가 홍조를 머금고 밝게 웃는 모습이다. 아라가야 부활의 시그널로 보고 싶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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