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의 ‘최상위 실행자’로 지목돼 기소된 임종헌(사진)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기소된 지 5년 2개월 만에 나온 1심 판단이다. 그간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인정된 법관 3명 중에선 가장 높은 형량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김현순 조승우 방윤섭 부장판사)는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대내외 비판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비자금 조성 등 네 가지 범주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구체적 죄목은 직권남용, 직무유기, 공무상 비밀누설,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30여 개에 달한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 측 입장에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건네받아 감수해주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소송에서 고용노동부의 소송서류를 사실상 대필해주는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이 핵심으로 꼽힌다.
재판부는 이 중 2014년 9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 결정의 문제점을 검토하라고 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한 혐의, 같은 해 10월 고용노동부의 관련 소송서류를 사실상 대필해주고 청와대·노동부를 거쳐 사건을 맡은 대법원 재판부가 접수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015년 6월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원의 제소 방안 검토를 지시한 혐의도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적 중립에 반해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며 유죄로 봤다.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의 예산 3억5000만 원을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대다수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과 청와대를 지원하는 데 이용했다”고 질타했다. 다만 “수많은 검사가 투입돼 공소사실이 약 300쪽으로 정리되는 동안 ‘사법 농단’ 의혹 대부분은 실체가 사라진 채 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만 남게 됐고, 이런 혐의도 대부분 범죄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