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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변 황금칼·구슬의 나라…‘가야 다양성’의 보물창고

가야사…세계속으로 <8> 합천 옥전고분군- 다라국의 흥망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3-03 19:26:39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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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팀 17년 집념의 발굴조사
- ‘제 7의 가야’ 다라국 존재 확인
- 5~6세기 대가야 영향 속 독자성
- 옥전고분 출토 10점 보물 지정
- 로만글라스는 동서 교류의 산물

‘제7의 가야, 다라국’, 이는 KBS가 2001년 방송한 역사스페셜 제목이다. 가야의 여러 나라를 ‘삼국유사’에서 ‘6가야’로 기록한 것을 하나 더 보탠다는 의미로 제7의 가야라 이름했다. 다큐에서 다뤄진 대로, 옥전고분은 안개에 가려진 다라국이란 고대 정치체를 부활시킨 고분 유적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발굴의 현장, 옥전고분에 나 있는 다라국 황금이야기길(합천박물관~옥전고분군, 300m)을 찾았다. 봉긋봉긋한 고분군 사잇길 저 너머로 봄이 오고 있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의 옥전고분군과 황강을 북쪽에서 바라본 전경.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황강은 고대부터 수로 기능을 했다. 합천군 제공
■다라국의 발견

옥전고분군은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변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고분은 몇 개의 능선에 나뉘어져 넓게 분포하며, 모두 1000여 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엄청나다. 이 가운데 지름 20~30m 내외의 대형 봉분이 27기로 수장급에 해당한다.

발굴은 1985년 경상대학교박물관이 시작했다. 경상대 조영제 교수팀은 7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11권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흙과 돌, 비와 바람, 시간과 씨름하기를 무려 17년. 끈질긴 발굴 조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옥전고분군이 4세기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됐으며, 낙동강 지류인 황강의 지리적 입지를 활용해 대가야 신라 백제 그리고 창녕 함안 등 가야 제국들과 교류하며 약 200년간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라국’, 또 하나의 가야라는 것도 통설로 굳어졌다. 발굴팀은 서기 400년 고구려 남정(南征)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금관가야의 유력 일파가 합천 성산리 일대와 옥전고분 주변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했다. 3세기 말 북방의 부여족이 김해로 들어와 금관가야를 세웠다는 ‘부여족 남하설’과 비슷한 논리 구조다. 하지만 금관가야 일파의 다라국 건국설은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옥전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와 용봉문 환두대도, 보물로 지정된 옥전고분 M6호분 출토 금 귀걸이(왼쪽부터). 국립김해박물관·문화재청·합천군 제공

■옥전, 구슬밭의 보물들

옥전고분군 주변의 옥전마을과 성산마을 일대는 한 시대 왕국이 터잡고 번성할 환경을 갖춘 자리다. 황강이 굽이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길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고분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황강은 율곡면과 쌍책면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상포나루(윗나루)에서 동쪽으로 돌아 성산리와 다라리를 지나고, 적포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상포나루는 과거 황강의 주요 나루였고, 합류 지점의 적포는 상·중·하적포로 나뉠 만큼 낙동강 수로 교통의 요지였다. 수십 년 전까지 소금을 실은 배가 낙동강-황강을 거슬러 올라와 쌍책초등학교 바로 앞에 정박했다고 한다. 다라국은 천혜의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백제와 신라, 또는 창녕과 함안의 가야국들과 긴밀한 교류를 가졌던 것이다.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우리나라 고분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발굴팀은 그동안 119기의 고분에서 총 30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대형봉토분 9기, 목곽묘 80기, 석곽묘 37기, 석실묘 2기가 조사되었고, 그 속에서 금·은·동 장식의 관(冠)·큰칼·투구·허리띠, 금귀걸이, 로만글라스, 8벌의 철판과 철 비늘의 갑옷, 15벌의 투구, 6벌의 말투구와 2벌의 말갑옷, 말안장 장식들, 그리고 호화로운 장신구와 가야 토기들이 확인됐다. 고분은 여러 차례 도굴을 당한 상태였으나 결정적인 것들은 잔존해 있었다. 그것도 가야사의 천운이다.

옥전의 무덤 형태는 일반적인 덧널무덤과 덧널의 바깥쪽에 돌로 보강한 이 지역의 독특한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하다. 무덤의 계기적인 변화는 대가야와 신라, 백제 등 주변국의 영향력을 살피게 한다.

권력과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도 많았다. 23호분에서 국내에 그 예가 없는 금동관모(金銅冠帽)가 나왔고, M3호분에서는 용봉문양 2점, 봉황문양 1점, 용문장식 1점 등 장식 고리자루큰칼 4자루가 한꺼번에 출토돼 학계를 들뜨게 했다. 이는 국내 최고 지배자급 무덤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2019년 보물 제2042호로 지정됐다.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가락지 등 장신구는 그대로 사용해도 될 만큼 세련돼 있었다.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세공기술은 당대의 백제나 신라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수준이다. 옥전 28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는 가야 귀걸이를 대표하는 유물로 일본 금속 공예에 영향을 준 점을 인정받아 2019년 보물 제2043호로 지정됐다.

옥전(玉田)은 이름 그대로 구슬밭이었다. M2호분에서는 한꺼번에 2000개가 넘는 구슬이 쏟아져 발굴자들을 놀라게 했다. 28호분에서는 가야 고분에서는 처음으로 구슬을 다듬는 데 사용한 사암제의 숫돌이 발견되어 이곳 구슬이 ‘메이드 인 옥전’임을 입증했다. 문화재청은 2019년 옥전고분군 출토 고리자루큰칼과 금귀걸이 등 가야유물 4건, 10점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고, 합천군은 이를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로만글라스가 말하는 것

다라국의 흔적을 전하는 경남 합천군 쌍책면 다라리 마을 표지석. 박창희
옥전고분군에서는 가야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의 로만글라스가 발견됐다. 학계에선 로만글라스는 왕관보다 더 값진 유물로 평가한다. 도대체 어떻게 1500여 년 전 로마 왕조의 유물이 합천의 옥전에 전해져 무덤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연구 결과 로만글라스가 묻힌 연대는 475년 전후로 밝혀졌다. 이 시기 고대 로마는 대규모로 유리를 생산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시켰다. 동서 문물 교역의 중심에 서 있던 신라는 이러한 유리그릇을 받아들였고, 이게 교류를 통해 합천 옥전까지 들어왔던 것이다. 로만글라스의 행방을 추적해 보면 동서 국제교역, 삼국내 교류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옥전 출토 로만글라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것을 출토지인 합천박물관으로 돌려놓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다라리에서 길을 잃다

경남 합천군 쌍책면 다라리(多羅里). 황강변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다라리는 우리 고대사의 ‘다라국(多羅國)’의 존재를 증언하는 곳이다. 다라리의 주민들은 “상책면 중촌, 계촌마을을 포함해 다라리로 부른다”면서 “언제부터 다라리가 됐는지 모르지만, 최소 500년 전부터 조상들이 불러온 지명으로 안다”고 했다. 주민들은 또 “다라리는 고령(대가야)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마을 뒷산인 와우산(臥牛山)에 장군묘라 불리는 분묘가 있고, 대대로 마을 당산제도 지내왔다”면서 마을 전통도 소개했다.

쌍책(雙冊)이란 면 이름도 독특하다. 조선시대 초책면, 이책면이 합쳐져 쌍책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책이 바로 옥전고분이 아닐까. 옥전고분과 다라리는 약 1㎞ 떨어져 있는데, 옥전고분이 발굴되면서 다라리는 졸지에 가야의 역사 마을로 부상했다.

‘다라국’은 국내 문헌에는 일절 언급이 없고, 이웃 나라 문헌에 짧게 등장한다. 8세기에 제작된 ‘일본서기’에 따르면 다라국은 6세기 전반에 함안의 아라국에 외교사절을 파견하여 가야 제국과 함께 백제와 신라에 대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대가야가 멸망한 562년 무렵 신라에 통합되었던 북부 가야왕국의 하나였다.

다라국의 위상은 중국에까지 전해진다. 양나라의 무제가 백제 사신의 내왕을 그린 ‘양직공도(梁職貢圖)’에도 다라(多羅)는 대가야나 신라와 함께 백제 인근의 저명한 나라로 소개되어 있다.

■왕궁지를 찾아라

옥전고분 들머리에는 합천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입구 정원 연못에는 용봉문 환두대도 조형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황금칼의 나라, 다라국에 대한 전시실도 따로 마련돼 있다. 그런데 박물관과 고분을 한바퀴 돌아봐도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다라국 사람들의 생활사가 발굴되지 않은 탓이다. 다행히 최근 성산마을 일대에서 성산토성 유적이 발굴되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7차례에 걸쳐 시행된 문화재 조사 결과 성산토성의 서쪽은 가파른 절벽을 그대로 이용했고 남쪽과 동쪽·북쪽은 흙과 돌을 이용해 성벽을 조성한 토석양축성(土石兩築城)이었다. 토성에서 석성으로 변화하는 다라국 고유의 축성기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구릉 정상부에는 성벽 안쪽으로 가야 시기 제사유구, 백제와 관련 있어 보이는 5동의 대벽(大壁) 건물지, 인공 도랑시설(溝)과 주거지도 조사됐다. 성산리 토성이 옥전고분군을 축조했던 집단의 생활유적이자 다라국의 왕성일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 전모를 알기가 어렵다. 세계유산 옥전고분군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가야사의 중요한 연구 과제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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