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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독창성과 다양성, 국제성은 21세기 문화창조의 원천

가야사…세계속으로 <10> 가야의 유산 잇기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3-17 19:07:0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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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신화는 가야 동질성 바탕
- 우륵·김유신 등 유민 족적 뚜렷
- 가야사 한반도 넘어 동아시아로
- 세계유산은 과정일뿐 완성 아냐

가야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520여 년 이어진 문명국이었다. 김해의 낮은 야산 구지봉에서 철기 세력인 김수로가 나타난 서기 42년부터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대가야가 멸망한 562년까지가 가야의 존속 기간이다. 가야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변한의 역사를 포함해 700년 가야사를 말하는 학자(김태식)도 있다.
가야사는 과거사가 아닌 오늘 우리의 역사다. 인본사회연구소 회원들이 세계문화유산인 경남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을 돌아보고 있다. 박창희
가야의 전성기 영역은 동쪽으로 부산과 경남 양산 밀양까지, 북쪽으로 경북 고령 성주 상주까지, 서쪽으로는 지리산을 넘어 전북 남원 장수와 전남 곡성 구례 광양 순천 등 호남 일대를 아우른다. ‘삼국유사’는 ‘6가야 전설’과 함께 지리산 동쪽 경계를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백두대간을 넘어 섬진강·영산강 유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우리가 알았던 ‘경상도 가야’는 수정돼야 할 개념이다.

■두 개의 신화:한 가야 의식

강원 동해시 추암동 유적에서 발굴된 대가야계 토기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가야에는 두 개의 건국 신화가 있다. 김해 구지봉의 가락국 건국 신화와 가야산의 대가야 정견모주 설화다. 두 개 모두 신통방통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 신화는 “기원후 42년 구지봉에서 지역을 다스리던 구간(九干) 등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구지가) 하고 춤추며 노래하니 자주색 줄을 타고 금합이 내려왔다. 그릇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있는데 태양처럼 빛났고 모두 남자로 변했다. 그중 용처럼 생긴 이는 수로(首露)라 했는데 가락국을 세웠고, 나머지 5명도 5가야의 임금이 됐다”고 전한다. 이때 부른 ‘구지가’는 임금을 맞이하는 민중의 노래이면서, 무가적인 주술성을 지닌 한민족 서사시로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김해 구지봉에는 거북 형상의 기념석과 대가야국태조왕탄강지지비, 그리고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 적힌 고인돌이 있다.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현장이다.

대가야 건국 신화는 약간 결이 다르다. 옛날 가야산 깊은 골에 정견모주가 살았다. 성스러운 성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여신이었다. 그녀가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빌자 하늘이 감동해 천신 이비가지가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상아덤에 내려왔다. 그렇게 천신과 산신은 서로 감응(感應)해 아이를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 이 설화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과 ‘석이정전’을 인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화엄종 승려인 순응과 이정은 802년 신라 애장왕 때 해인사를 창건했다. 해인사 국사단에는 설화의 주인공인 정견모주가 모셔져 있다.

가락국과 대가야 건국 신화에는 ‘한 가야’ 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고려 초 어느 시기까지 가야의 옛 땅에 살던 주민들은 “우리는 가야의 후예”라는 인식을 공유했고, 그것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이런 가야 동질의식과 뿌리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부산 경남지역에 이어지고 있다.

■토제방울에 새겨진 건국신화?

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토제방울. 직경 5㎝의 방울 표면에 가야 건국신화를 연상케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이거 무슨 문양이지?” 2019년 3월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정비 공사 과정에서 5세기 말 무렵의 석곽묘가 드러났고, 이곳에서 4~5살 어린아이 유골과 함께 직경 5㎝가량의 토제방울이 발견됐다. 조사단이 유물을 깨끗이 씻어 현미경을 들이대자 선으로 그린 독립적인 6개의 그림이 나타났다. 오징어인지 거북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춤을 추는 듯 노래하는 듯한 모습이 조사단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사단의 뇌리에 퍼뜩 스친 것이 ‘거북아, 거북아’로 시작되는 구지가였다. 흙방울의 그림이 가락국 건국 신화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논란이 있지만 많은 학자는 조사단이 추론한 ‘건국 신화 그림’에 고개를 끄떡인다. ‘가락국 신화’가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 6개국 나름의 형태 또는 각각의 실정에 맞는 버전으로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대가야의 아이 무덤에서 나온 토제방울은 무덤 주인공이 생전에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일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가야의 연맹체설을 뒷받침하는 유물로 볼 수도 있다.

■가야 멸망과 유민들

가야의 멸망은 시나브로 찾아왔다. 기록에는 532년에 김해의 금관가야가, 562년에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 또는 복속되면서 가야는 종말을 고한다.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가야의 일부 유민은 특유의 생존력으로 역사에서 살아남는다. 김해김씨로 임나 왕족의 후예를 자칭한 진경 대사는 선문 구산의 봉림사에서 신라불교를 중흥시켰고, 대가야 후예인 강수는 삼국통일기의 대중국 외교무대에서 맹활약했다. 삼국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금관가야의 마지막 구해왕의 아들 김무력의 손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가야 왕의 명으로 악성 우륵이 만든 가야금과 그의 가야금 열두 곡이 신라의 국악으로 자리 잡은 건 드라마틱한 문화 계승이다.

그러나 두각을 나타낸 가야 유민은 소수이고, 대다수 가야의 망국민은 살던 땅에서 쫓겨나거나 사민(徙民) 되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1992년 6월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에서 발굴된 대가야계 고분은 망국 후 대가야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이곳의 석실묘와 석곽묘에서는 6~7세기대 신라 토기 속에 멸망기 대가야 계통의 토기가 섞여 있었다. 발굴팀은 유물의 시기와 형태를 검토한 끝에 이곳이 대가야 유민들의 강제 이주, 즉 사민의 결과물일 것으로 추정했다.

562년 나라가 패망하고 망국민이 된 대가야 사람들은 눈앞이 캄캄했을 터.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고향에서 쫓겨나 신라가 개척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2021년 1월, 고령 대가야박물관은 국립춘천박물관과 함께 동해 추암동 유적의 토기 등을 전시한 ‘대가야 사람들의 향수’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유민에 대한 호의적인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 사다함 열전에는 ‘장군 이사부가 대가야를 토벌할 때, 부장인 화랑 사다함의 전공이 컸다. 사다함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받았으나 모두 풀어 양인(良人)이 되게 했다’고 적고 있다.

가야 망국민 중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도 많았다. 일본으로 간 가야인과 후예들은 고대 일본의 국가 형성과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고분에서 가야문화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낙동강 문화의 원천, 세계 속으로

가야 멸망 후 이 땅에 고구려 신라 백제, 즉 3국이 정립한 시기는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가야의 시간 520년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 고대사는 반쪽이 되고 만다.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가 거론되는 배경이다.

가야가 만난 세계는 한반도를 넘어선 동아시아였고, 저 광활한 북방 초원과 실크로드를 따라 로마까지 연결된다. 가야인의 피에는 초원의 바람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흐른다.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등재된 것은 놀라운 문화적 사건이다. 가야의 다양성과 독창성, 국제성을 세계가 인정했으니 그에 걸맞은 보존과 연구, 계승 노력이 따라야 하는 건 당연하다. 세계유산은 한 과정일 뿐 완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공고한 삼국의 틈바구니에 낀 가야사는 여전히 찬밥 신세다. 강단 사학계에는 여전히 식민사관이 똬리를 틀고 있고, 역사 왜곡으로 얼룩진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이 아직도 학계 주변을 배회한다. ‘친일’의 기류를 타고 일본이 언제 또 역사 재침탈을 기도할지 모른다.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하나 가야사를 보는 눈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가야사는 낙동강 문명, 낙동강 기적을 낳은 원천이다. 6가야 또는 12가야가 낙동강 유역에서 성장 발전 소멸했고, 그 뒤를 신라 고려 조선이 이었기에 한민족 문명사가 세워진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속속 보고되는 가야 유적은 가야사가 영호남 화합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가야는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역사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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