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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47> 언어와 언론 ; 풍부한 언론

  •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입력 : 2024-03-31 18:43:1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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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동문과 동창에 대해 논쟁했다. ①두 낱말은 뜻이 똑같다. ②동문이 더 크다. ③동창이 더 크다. 무엇이 맞을까? 동문에서 문(門)은 들어오고 나가는 문(gate)이다. 어느 학교 졸업생들은 졸업 연도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문을 통해 다녔으니 동문(同門)이다. 동창에서 창(窓)은 창(window)이다. 졸업생 중 어느 해 어느 창 옆에서 같이 공부했다면 동기(同期) 동창(同窓)이다. 결국 동문이 동창보다 더 크겠다. 동창회 사무실이 아니라 동문회 사무실인 이유다.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인 이유다. 동문생 녀석이 아니다.

저승의 퓰리처가 바라볼 이승의 언어와 언론
이처럼 낱말엔 나름의 뜻을 지닌 이유가 있고 어원도 있다. 순우리말에도 어원이 있다. 벌과 나비를 꼬시니까 꽃이고, 이리저리 유통되며 도니까 돈이며, 바다 위에서 도니까 돌고래다. 살을 지니며 사니까 사람이고 살이 끌리는 살앙이 사랑이며, 새싹 솟는 게 보이는 계절이라 봄이고, 쓸어져 담길 것이라 쓰레기다. 빵 가방 냄비 구두처럼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도 있다. 야구 냉장고 민주주의처럼 일본식 한자어에서 온 우리말도 있다. 양치(養齒)이건 양지(楊枝)이건 한자어에서 온 우리말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노다지(No touch)처럼 영어에서 왔다는 우리말도 있다. 가스등(Gaslight)이라는 1944년 작 미국영화에서 온 가스라이팅이라는 외래어도 우리말처럼 유행되고 있다.

인간은 말을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종달새나 고래와 같은 동물도 언어가 있다지만 단순한 소리일 것이다. 초기의 인류도 그런 언어를 썼을 것이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인간만이 추상적 의미와 조직적 문법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니 언어적 인간(Homo linguistic)이다. 언어는 말들의 무리인 어휘(語彙), 즉 여러 낱말들의 문법적 조합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시각적 기호체계 문자를 가진 문자적 인간(Homo character)은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다. 언어(言語)가 입으로 하는 말에 가깝다면, 언론(言論)은 문자로 쓰인 기록물에 가깝다. 한자 논(論) 오른쪽 아래 책(冊)이 들어있어서다. 최초의 언론은 대나무나 진흙 등에 적힌 책이었다. 나중에 글자가 적힌 종이를 실로 묶어 책을 만들며 차원 높은 언론이 가능해졌다. 드디어 인쇄기로 눌러(press) 찍어내는 신문 잡지가 나오며 본격적 언론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언론은 매체(media)와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전파를 통해 소리를 내보내는 라디오와 영상까지 송출하는 TV가 발명되며 방송 언론이 나왔다. 이제 인터넷 언론, 유튜브 언론까지 나오며 언론의 홍수 속에 산다. 홍수가 나면 식수가 부족하듯이 언론의 홍수 속에 정론이 희박해졌다. 편향된 언론사들에 의해 가짜(fake) 뉴스가 범람한다. 목소리나 생김새까지 진짜처럼 위조할 수 있는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된다. 말 소리 이미지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세상이다. 언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퓰리처(Joseph Pulitzer 1847~1911)는 저승에서 뭐랄까? 정작 그마저도 선정적 옐로 저널리즘의 장본인이었다. 이승의 우리는 분별력을 키워야겠다. 낱말의 의미부터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과도하게 풍요로운 언론을 살펴 가릴 수 있다. 비난(非難) 아닌 비판(批判)적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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