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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적응 어렵고 대인기피증까지…부산 노숙인 셋 중 1명 노인

우리의 노후 안녕할까요…올드 푸어 다이어리 <4> 부산역 광장의 노령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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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노숙인 점점 줄어드는데
- 노인층 비중 36%로 급증 추세

- 쪽방 석달 살면 영구임대 기회
- 사업 실패·가족 배신 등 요인
- 급작스런 환경변화 적응 못 해

- 다가구주택서 함께 사는 그룹홈
- 노인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대안

햇살은 밝게 비치고 따뜻했다. 깨끗한 거리도 보기는 좋았다. 코를 막고 찡그린 표정으로 걷던 사람들도 이제는 무심한 표정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난 18일 부산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벤치에 앉아있다. 부산역은 지역 노숙인 집결지였으나 방역을 이유로 2021년 심야 대합실이 폐쇄되면서 노숙인 대다수가 사라졌다. 김진철PD
평일인 지난 18일 오후 부산역 앞 광장은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 노숙인이 싸우거나 절규하는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한때 이곳을 차지하던 노숙인 대부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구석에 드문드문 보이기는 했으나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벤치나 화단에 누워서 잠을 잘 뿐이었다. 사실 언뜻 봐서는 그들이 노숙인이라고 알아차리기 힘들다. 예상보다는 깨끗한 옷을 입은 덕이다. 그러나 묘하게 계절을 비껴간 차림새나 정처를 잃은 발걸음, 그리고 사위어버린 눈빛 등. 몇 분만 관찰하면 그들이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달라진 부산역 앞 광장만 보면 우리 사회가 살기가 좋아져서 노숙인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통계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달 기준 거리 노숙인은 108명(부산시 집계)으로 4년 전 128명과 비교해 15%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달라진 부산역 앞 광장…그리고 노인 노숙인

이날 이곳 근처에서 만난 김종혁(가명·67) 씨도 부산역 일대를 떠도는 거리 노숙인이다. 사업을 했다는 김 씨도 잘 나갈 때는 은퇴한 선배들처럼 태국이나 필리핀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골프도 치고 멋지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지금처럼 아무 곳에서나 웅크리고 누워서 자고, 라면 쪼가리를 끓여 먹을 줄은 몰랐다. 지난 10년 간의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 사업에 실패해서 가족도 잃었고 충격으로 기억도 상당 부분 잃은 듯했다.

거리에서 떠도는 삶은 김 씨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노숙인이 복지사 안내를 받아 흔히 머무는 1.5평짜리 쪽방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몸을 겨우 뉠 수 있는 그 방은 문을 열기만 해도 숨이 ‘턱’하고 막혔고, 어찌 어찌 잠을 자다가도 깨면 숨이 ‘억’하고 멎을 정도로 갑갑했다. 옆방에서 나는 소리와 섞여 환청까지 들리는 듯했다. 우울증과 폐쇄공포증이 함께 밀려오며 자살 충동이 일었다. 월세가 아까워 한달 만 버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급식이 나오는 센터를 향해 종일 걷는다. 그러면서 잠을 잘 만한 곳을 찾는다. 교회나 병원 등 문이 열린 건물 로비에서 잘 수 있는 날은 횡재한 날이다. 대부분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일대 지하도 상가에서 잘 수밖에 없다.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원룸에 살고자 보증금을 마련하려 이를 악물고 거리에서 버티며 나라에서 나오는 돈을 모으는 중이지만 반 포기 상태다. 돈이 쌓이는 속도보다 보증금과 월세 오르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쪽방으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다. 김 씨는 생각한다. “어떻게 살지? 그냥 죽어버릴까?” 대로를 지나는 차에 치이거나 고층빌딩 옥상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한다.
지난 19일 부산 동구 부산희망드림센터 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숙인 노인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김진철PD
■노령 노숙인만 증가

부산지역 노숙인은 정말 줄어든 걸까. 그러나 현장에서 노숙인을 챙기는 복지사들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젓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취재 중에도 김 씨와 비슷한 사연이 있는 노인 노숙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통계도 이를 증명한다. 최근 부산에서는 전체 노숙인 숫자는 줄어드는 반면 노령기에 접어들면서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급증한다.

21일 부산노숙인종합지원센터 희망등대에 따르면 2020년 상담한 신규 노숙인 314명 중 60대 이상 노인은 86명으로 27%를 차지했으나, 지난해는 262명 중 95명(36%)으로 늘었다. 불과 3년 만에 네 명 중 한 명이었던 노인 노숙인이 세 명 중 한 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20~50대가 모두 감소 반면, 60대 이상만 증가 한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센터 관계자는 “60세 이상 신규 상담자 대다수는 사업 실패, 실직, 사기 등 경제적 문제로 노숙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령인구가 급증하지만 이들의 삶을 지탱해 줄 국민연금이나 일자리 등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은 부실하다는 점을 참고하면, 앞으로 노인 노숙인은 계속해서 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거리 노숙인은 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고, 일정 기간 쪽방이나 시설에 거주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형태로 사회에 적응한다. 그러나 노년에 노숙인이 된 경우에는 말년에 워낙 급작스러운 변화를 겪다 보니 거리 노숙 생활에도 쪽방 생활에도 전혀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우선 50대까지 일반적인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생활했던 이들이 수개월 동안 닭장같은 공간에서 버티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여기에 더해 대인기피증도 심각하다. 장년이나 노년에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에게서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설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저런 통제가 있어 이마저도 꺼린다.

■“그룹홈 다시 시도해야”

이 때문에 노년에 노숙인이 된 이들 상당수는 쪽방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거리로 나오고 다시 쪽방에 들어갔다가 거리에 나오길 반복하다 고독사 하거나 객사하는 일을 겪는다. 부산진구쪽방상담소 사랑그루터기 정대진 사무국장은 “쪽방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면 정상적인 거주공간이라 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 등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노숙인이 된 분들은 대인기피증도 없고 쪽방 생활도 잘 견딘다”며 “그러나 늦은 나이에 노숙인 생활을 하신 분들은 배신을 당하신 경우가 많아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일종의 대인기피증 증세를 겪는다. 여기에다 쪽방 생활도 적응하지 못하셔서 쪽방에 있다 거리에 나오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최근 급증하는 데다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는 노인 노숙인을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공동 생활가정 형태의 그룹홈 제도를 제안한다. 비슷한 연령대의 처지가 비슷한 노숙인들이 소규모 주택 등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면 자립심과 사회성을 기를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숙인지원시설인 부산희망드림센터 김나형 운영팀장은 “10년 간 현장에서 활동한 결과 상당수 노숙인이 탈노숙과 재노숙을 반복한다. 세상에 본인 뿐인 사실상 사회적 지지 체계가 없는 상황에 부닥친 노인 노숙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며 “음주 문제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없는 분들이 다가구주택에서 살며 서로가 가족이 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선진국 등에서는 1960년대부터 도입돼 안착이 됐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정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로 남는다. 주거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주민 반대 때문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제도를 좀 더 손볼 필요가 있다. 그룹홈 거주 노인 노숙인이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다른 노숙인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지역사회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상= 김채호 김태훈 김진철 PD

※제작지원 : BNK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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