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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견디며 모은 노후자금인데…15년째 못 받은 퇴직금

우리의 노후 안녕할까요…누구나 올드 푸어 <1> 부산어시장 퇴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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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 분류하고 옮기는 작업하며
- 노임 10%씩 약정금 명목 적립
- 항운노조, 초기 퇴직자에 ‘펑펑’
- 결국 기금 고갈…잔액 5억 원 뿐

- 2009년부터 못 받은 이 198명
- 일부는 퇴직금 청구소송 했으나
- 지난달 대법 “노조가 책임” 확정
- 애매한 신분에 법 보호도 못받아

모두가 잠든 밤이면 멀리서 보는 우리나라 수산업의 심장부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는 장관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은은하게 반짝이고, 성인 수십 명 몸무게는 됨직한 생선 무더기가 고깃배 어창에서 끌어올려져 색색의 불빛을 튕겨낸다. 바닥에 와르르 쏟아진 생선이 퍼덕거리면 하늘로 솟구치려 준비하는 듯한 생동감마저 느껴진다.

원경과 다르게 근경은 우악스럽기만 하다. 비린내와 짠 내, 고함과 거친 숨소리가 온 공간을 휘도는 치열한 노동 현장이다. 근해 수산물의 30%가 이곳에서 처음 유통되고, 고등어는 80%가 거쳐 가는 곳으로 성어기면 밤사이에 하역 분류 운반 등의 과정을 거쳐 하루에 생선 1000~2000t이 위판된다. 그럼에도 재래식 어시장인 탓에 1000명이 안 되는 인원이 근육의 힘만으로 이런 거대 물량을 처리해야 해 노동 강도가 세다.
지난 26일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서 부산항운노조 어류지부 조합원이 경매에 앞서 고등어를 크기별로 분류해 상자에 담고 있다. 김채호PD
이곳 노동자들이 퇴직하면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매달 임금의 일부를 떼어 내 퇴직적립금을 준비했으나 이 돈을 언제 받을지 모른다. 퇴직한 선배들이 15년 가까이 못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슷한 시간을 기다려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퇴직 후 목돈, 15년째 무소식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 입구. 김채호PD
28일 부산항운노조에 따르면 어류지부 양륙·배열반 등의 퇴직조합원 198명에게 줘야 할 퇴직약정금 약 100억 원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퇴직자부터 미지급됐다.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근무 중인 조합원은 140명 정도에 그쳐 적립금 통장을 채우는 사람보다 받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더 많은 기형적 구조에 놓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을 마치면 각종 과정이 자동화돼 필요 인력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현재 근무 중인 노동자들 사이에는 ‘자식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돈다.

더는 기다리지 못한 퇴직자 39명은 2020년 5월 부산지방법원에 항운노조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퇴직금 지급 주체인 항운노조는 ‘조합원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부산공동어시장도 사용자’라며 지급 책임을 나누려 했다. 소송 당시 퇴직적립금 계좌에 잔액이 5억3361만 원에 그쳤고 2007년 퇴직자까지만 지급이 이뤄져, 자력 지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공동어시장은 “노조가 전적으로 퇴직금을 관리해 왔는데, 그 과정에 발생한 부실 책임을 어시장에 전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2022년 11월 1심 재판부는 “피고(부산항운노조)는 부산공동어시장과 공동으로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퇴직금관리위원회를 항운노조와 어시장이 함께 운영했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 책임도 두 주체에게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퇴직조합원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듯했다.

지난해 11월 2심 재판부는 “항운노조가 조합원 퇴직금 관리와 지급을 실질적으로 맡아 왔다”며 항운노조에 지급 책임을 한정해 판결이 일부 뒤집어졌다. 지난달 말에는 이를 인용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퇴직조합원과 어류지부 조합원 상당수는 퇴직금을 언제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 부닥쳤다. 법원에서 지급 시기를 정하지는 않았고, 퇴직금관리규정에 ‘지급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기금이 조성될 때까지 유예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소송에 참여한 퇴직조합원은 지연배상금을 받을 수 있으나 미지급 시기가 아닌 소송이 시작된 때(2심 판결이 난 지난해 11월까지는 연 5%, 그 이후부터 모두 갚는 날까지는 연 12%)에 한정된 데다 소송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익을 거두지는 못한 셈이다.

■‘폰지’ 형태로 운용…먼저 퇴직한 사람만 ‘두둑’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본지 취재 결과 퇴직금관리위원회가 적립금으로 이윤을 거의 창출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퇴직자가 낸 금액보다도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수십 년 동안 퇴직약정금으로 지급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어류지부 조합원은 주로 선사가 생선을 어시장에 부려 경매하는 과정에서 생선을 분류하고 옮기는 작업을 맡는다. 항운노조는 공동어시장과 ‘퇴직금 관리 위원회’를 조직해 이들 노임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어획물 판매대금에서 별도로 공제·적립해 퇴직충당금으로 적립한 후 조합원의 퇴직금 형태로 사용한다.

그런데 위원회가 조항을 만들 때 산정 기준을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으로 삼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어시장 하역 작업은 수산물이 많이 잡히는 성어기(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에 몰린다. 당연히 이 시기 어류지부 하역 조합원 임금도 가장 높아 연봉은 4000만 원 언저리지만 성어기 월 평균 임금은 600만~700만 원까지 치솟는다. 단순 계산하면 1억2000만 원~1억6000만 원을 적립한 30~40년 근무 어류지부 조합원이 성어기를 마친 후 은퇴하면 2억~3억 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한 퇴직 조합원은 “1979년 퇴직금관리규정이 제정됐다. 당시만 해도 고기가 계속해서 더 많이 잡히고, 조합원 역시 많이 늘어날 거라 보고 퇴직금을 넉넉히 줘도 고갈될 거로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노조가 적립금을 펀드나 채권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금액을 불리는 방법도 있었으나 손실을 우려해 은행에 예금하는 형태로만 운영했다. 모자란 적립금을 채울 추가 재원 역시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는 형태로 적립금을 관리한 셈으로, 퇴직조합원 입장에 일종의 ‘폰지 사기’를 당한 셈이다.

■대지급금도 못 받아 “노동 사각지대 방치 탓”

보통 근로자는 퇴직 후 회사가 파산하거나 경영이 어려워 퇴직금을 받지 못하면 ‘대지급금 제도’를 통해 퇴직금을 일부 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국가가 회사를 대신해 근로자에게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주고 나중에 회사에 받거나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체당금’으로 불리다가 2021년 10월 14일부터 ‘대지급금’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어류지부 조합원은 이런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소속은 항운노조지만 노동력은 공동어시장과 선사에 제공하는 등 개인사업자와 일용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의 성격이 섞여있다. 그러나 고된 육체 노동을 하는 근로자로 일반 사무직 노동자보다 퇴직 시기가 이르다. 퇴직약정금은 국민연금 등이 개시되기 전까지 생계를 이어갈 생명줄이었지만 이마저도 사라진 셈이다.

추가 재원 투입이 없다면 퇴직금 미지급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항운노조는 2000년부터 산정기준을 ‘퇴직 직전 1년 평균임금’으로 바꿨으나 이전 가입 조합원은 여전히 기존 기준을 적용받는다. 현재 노임 10%에 해당하는 적립률을 더 높이는 방안도 고민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항운노조 관계자는 “지급 시기를 앞당길 방법이 현재로서는 별로 없다. 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던 시기에 약정금을 일시 지급할 기회가 잠시 있었으나 무산됐다”며 “적립금이 모이는 대로 순서대로 지급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에게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선원법과 비슷한 항만 노동자의 처우를 보장할 수 있는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상당수 항만 노동자는 법상으로 노동자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조가 보완책으로 이들의 노후를 설계할 수 있도록 일종의 퇴직금 제도를 만들었는데 문제가 생겼다”며 “항만 노동자를 제도권으로 흡수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상= 김채호 김태훈 김진철 PD

※제작지원 : BNK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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