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의 추가적인 직권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사실상 조사 절차가 끝난 형제복지원 사건을 포함해 과거 지역에 존재한 여러 시설의 수많은 피해자가 속속 확인되는 상황이라 진화위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진화위는 1년여밖에 남지 않은 활동 기간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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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덕성원 피해자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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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위와 시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시는 진화위가 개최한 제7차 시·도실무협의회에서 지역 내 집단수용시설 생존피해자의 직권조사를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시는 형제복지원 사건 추가 피해자와 더불어 덕성원 등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시설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직권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과거 부산에는 부랑인 수용소 등의 집단수용시설이 포진했다. 한국전쟁 직후 도시가 온전히 지켜진 유일한 지역으로 전쟁고아와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이 밀집했고, 항구도시로서 해외 구호물품을 제공받기 수월해서다. 이 무렵 우후죽순 생겨난 민간 시설 중 일부는 관의 비호 아래 시의 지원을 받는 공식 시설로 커나갔다. 시설과 수용 규모도 점차 대형화했다. 수많은 아동을 맡게 된 이들 시설은 이른바 ‘군대식 통제’로 불리는 폭력·강제노역 등을 동원해 수용자를 관리했다. 부산 영화숙·재생원, 형제복지원 등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이 유독 부산에 잦았던 이유다.
사정이 이렇지만 여전히 피해생존자 대다수는 과거 겪은 참혹한 경험을 공인받지 못했다. 부산 최초의 공인 부랑아 시설인 영화숙·재생원의 존속 기간은 시 지원이 이뤄진 공식 기간만 놓고 집계해도 1962년~1971년으로 총 10년이다. 뒤이어 공식 시설이 된 형제복지원도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됐다. 이들 시설이 매년 통제한 수용인은 1000명~3000명 규모였다. 누적 피해생존자는 수천,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부산지역 사건 중 진화위의 진상규명이 이뤄진 건 형제복지원뿐이다. 이마저 세 차례에 걸쳐 490명의 피해 사실만이 확인됐다. 미처 진상규명 신청을 하지 못한 피해생존자나 기록을 확보하지 못해 피해생존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영화숙·재생원 사건은 지난해 8월부터 직권 조사가 진행 중이며, 덕성원 등 직권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사건 또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여러 시설에 걸쳐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도 추가되는 상황이라 진화위의 직권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못할 전망이다. 2기 진화위의 활동이 내년으로 끝나 추가 조사 여력이 부족한 탓이다. 현재까지 진화위 상설화 등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날 협의회에서도 진화위는 시에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