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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53>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윤인숙 공동대표

토지 전문가서 평화·공감의 대화법 알리는 전파자로

  •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   입력 : 2024-06-11 18:59:39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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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 토지주택연구위원 지내다
- 아이와 많은 시간 보내려 퇴사
- 韓사회 평화 조성하는 일 추진

- 33명 전문가와 프로그램 개발
- 공무원 등에 비폭력 대화 교육
- 마을·학교·가정 갈등 중재까지

- “수입 줄었지만 생활 풍요로워
- 은퇴 10년 전 2막 준비하기를”


◇ 윤인숙의 이모작 귀띔

-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윤인숙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공동대표가 2023년 12월 취임하면서 스태프, 전문 트레이너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윤 대표이며, 윤 대표 뒤에 서 있는 이가 캐서린 한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설립자다.
대한민국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절대로 못 당하는 일이 있다. 바로 아이 돌보기이다. 아빠라고 해서 어디 애정이 적을까 마는 현실에서는 늘 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엘리트 워킹맘조차도 아이가 최우선의 본능이다. 공들여 쌓아온 경력마저 육아와 가정을 위해 포기하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이는 아이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선망의 직장을 내던져 버린 여인이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더 가치 있는 생활양식을 찾았다고 한다. 그녀를 만나보자.



-자신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부산에도 인연이 있다고요?

▶네, 둘째 아들이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익숙합니다. 저는 2003년부터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재직하셨다더군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시는 셈이죠?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다가 50세에 조기퇴직을 했습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윤인숙(60) 공동대표다. 서울대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 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젊은 시절 서울주택도시공사와 주택산업연구원을 거쳐 LH 토지주택연구원에서 일했다. 하지만 어느 날 사표를 내고 그 경력과는 다른 쪽에서 이모작을 가꾼다고 한다.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윤인숙(왼쪽 두 번째) 하동군 청년협력가대학장이 지난 4월 제2기 개강식 때 찍은 사진.
▶비폭력대화(NVC)는 미국의 마셜 B. 로젠버그 박사가 주창한 뒤 2003년 캐서린 한(K. Han)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평화의 대화’ ‘공감의 대화’를 말합니다. 우리 교육원은 2006년에 설립됐는데, 비폭력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소통하고 따뜻하게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33명의 전문 강사와 함께 비폭력대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 현장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비폭력대화법을 교육하고 있지요.

-실제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나요?

▶연결단체인 ‘한국비폭력대화센터’가 학교 현장이나 마을, 경찰서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 첨예하죠. 심지어 가족 간에도요. 많은 부분 넓은 의미에서 폭력적인 대화를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설령 서로의 욕구가 첨예할지라도 서로가 연민과 공감의 대화를 한다면 각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좋았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요. 비폭력대화교육원은 강사를 파견해 교육함으로써 갈등을 예방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50세에 퇴직하셨으니 비교적 일찍 그만두셨는데 비폭력대화 활동을 하려고 그랬던 건가요?

▶아닙니다. 좀 자유롭게 살면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팍팍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저의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은 많은 이들의 로망입니다만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리셨어요?

▶저는 LH 연구원에서 국토교통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하고, 2006부터 2010년까지 ‘시민과 도시’라는 정간물의 편집장을 역임했죠.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의 가치를 찾기가 어려워졌고 원치 않는 일을 맡으면서 스트레스가 커졌습니다.



대개 직장인은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억압적 분위기에서 허접하게 대우받을지라도 고단함을 숙명처럼 생각한다. 범생이 출신일수록 때려치운다는 결정을 감히 못 내린다. 그러나 그녀는 내면 갈등을 해결하고 퇴사를 결단했단다.



-과감히 퇴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겠죠?

▶확실한 계기라고 하면 제겐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2014년이었어요. 직장에 회의감이 심하던 어느 날 TV를 보았는데,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의 엄마께서 ‘아이 학원비라도 조금 더 벌려고 애쓰면서 정작 아이하고 밥 한번 같이 못 먹었는데…’라며 울먹이시더군요. 그 소리가 가슴에 팍 박혔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아이는 경남 산청의 대안기숙학교에 다니며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잘 못살고 있다는 각성을 했죠.

-퇴직 전에 준비한 일이 있었나요?

▶사실 제가 2010년부터 비폭력대화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아이를 경남 산청의 생태마을에 있는 ‘산청간디어린이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었어요. 학교에 지각했다고 오리걸음을 시키거나 경쟁에 살아남는 법만 가리키는 정규학교에는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직장이 대전에 있던 저는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2013년부터 마을에 집을 얻어 주말에 산청을 오가는 오도이촌(五都二村) 생활을 하며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항상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일과 삶이 일치되니까 글도 잘 쓰여지더군요. 다른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사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물론 저마다 처지와 생계의 책임감이 다르긴 하지만 이 땅의 남자는 감행하지 못할 일이다.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였다. 지금도 그녀는 ‘일’과 ‘아이’가 겹치면 과감히 아이를 택한단다.



-그렇게 결단하면서 비폭력대화 지도자로 삶의 목표를 재설정하신 거군요.

▶회사를 그만두던 그해에 둘째가 다니던 학교에서 갈등이 있었는데, 문제해결 과정에서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캐서린 한 대표님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고도원 아침편지 이사장께서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체험을 하면서 비폭력대화는 우리 사회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 대표님이 권하셔서 비폭력대화 강사로, 그리고 그 후에는 교육원(https://www.krnvcedu.com:5011/index.aspx)의 공동대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입이 과거보다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 마음속에 갈등은 없었나요?

▶수입은 적어졌어요. 하지만 생활은 더 풍요로워졌어요. 놀라운 일이죠. 퇴사를 고민할 때 제게는 두 가지 욕구가 있었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자유’와 ‘경제적 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양식을 바꾸니 모순적으로 보이던 두 가치가 동시에 충족되더군요. 도시인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너무 많이 쓰죠. 그 돈을 벌려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삶을 포기해 버려요. 도시에선 소비행위가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죠. 하지만 시골에서는 많은 부분 자급자족하기에 적은 수입으로도 풍족할 수 있지요.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하지 않아요. 그러니 시간도 더 많아지고 삶의 여유도 제곱이 되더군요. 이렇게 저의 반농반X(半農半X)’는 저의 본성을 따르면서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양식이 되더군요.

-다른 일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인가요?

▶제 전공과 관련해 농촌에서도 하는 일이 있어요. 하동군 청년협력가대학 학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대학은 농촌을 역동시킬 젊은 활동가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하동군에서 설립했습니다. 저는 2020년부터 3년간 경남도의 ‘경남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장으로 활동했는데 그 인연 덕이었습니다. 초고령화로 치닫는 농촌에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전국 농촌에 모델이 되기를 바라며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실까 궁금합니다. 후배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비폭력대화법을 확산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수평적 문명으로 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수직적 의사소통이 많아서 갈등이 많습니다. 상처 주는 말들이 난무합니다. 또 한국인에게는 분노와 우울이 많죠. 내면에 평화를 주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대화법을 널리 알려 나갈 겁니다. 후배님들에게는 적정 소비와 삶의 기술을 익히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자기 내면의 소리에 관심을 가져 보시기를 권합니다. 은퇴 10년 전부터 인생 2막을 조금씩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가능한 귀촌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러듯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더 많은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윤인숙과 대화하면서 필자는 ‘조화로운 삶’의 저자 헬렌 니어링이 생각났다. 니어링 부부는 일 년 중 반은 자급자족을 위해 노동하면서, 나머지 반은 삶을 즐겼다 한다. 하루 네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책을 읽거나 취미생활을 하며 삶을 즐겼다. 한편 윤인숙은 20년 전 나이 60에 비폭력대화를 한국에 전하려 온 캐서린 한 선생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한다. 결국 그녀의 ‘반농반X’의 생활은 반은 농업에 종사하고 반은 또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인데, 소박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면서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공감적 소통문화도 확산하고 있으니, 더 나아갈수록 삶이 알차고 조화로울 것 같다.

※특별후원: BNK 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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