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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라노] 피해자가 원치 않는 사적제재… 누구를 위한 폭로인가

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최근 신상 폭로되며 '사적 제재' 논란 불붙어

'정의 구현' 명분 내세우며 폭로 이어가지만

정작 피해자의 피해 호소는 안중에도 없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범죄 행위라고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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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넷플릭스를 끼고 사는 라노는 얼마 전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목록에 영화 ‘한공주’가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어요. ‘멈춤’ 버튼을 한 번도 누르지 않고는 끝까지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한공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2004년 밀양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죠. 이 영화를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이유가 있어요. 최근 밀양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며 사람들이 가해자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죠.

밀양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 국제신문DB
밀양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남학생 44명이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가해자들은 범행 장면을 촬영해 피해자를 협박하기도 했죠. 가해자 44명 중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10명은 기소되고, 나머지 34명에 대해서는 소년부 송치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기소된 10명 중 5명은 장·단기 소년원 송치(7·6호), 5명은 8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받으며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듯 보였던 밀양 사건은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N이 가해자 44명 중 3명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20년 만에 다시 소환됐습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에는 가해자의 얼굴, 이름, 나이, 직장 등 개인정보가 구체적으로 담겼죠. 들끓는 비판 여론 속에 사적 제재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로 지목된 가해자가 일하던 가게는 ‘별점 테러’ 등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개명한 뒤 수입차 딜러로 일하고 있던 가해자는 해고됐고, 대기업에 다니던 가해자는 임시대기발령조치 됐습니다.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다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로 인해 날벼락 맞듯 ‘처벌’을 받는 가해자의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가해자들의 신상 폭로가 이어지자 N채널의 구독자 수는 급격하게 불어났습니다. 영상 조회수는 100만~300만 회를 넘나들었죠. 그러자 유튜버들이 너도나도 폭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P는 피해자의 음성과 함께 사건 피해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판결문까지 공개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적 제재가 피해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진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N채널은 “피해자 가족 측과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밝혔지만,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전면 부인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N채널은 “피해자분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어 관련 영상을 전부 내린다”고 했으나 이조차도 거짓말이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와 해당 유튜버가 소통한 적 없다. 마치 피해자와 긴밀한 소통 끝에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해 영상을 내린 것처럼 사실과 다른 공지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P채널 또한 “당시 판단력이 없는 상태에서 응한 통화 내용이 노출돼 피해자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피해자 동생의 호소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정의 구현’ 등 사적 제재의 명분을 내세우며 폭로를 이어가지만 정작 피해자의 피해 호소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여기에 ‘가해자들을 어떻게든 사회적으로 말살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공분은 피해자를 의식하지 않는 막무가내식 폭로에 명분을 실어주는 모양새입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음에도 폭로를 이어나가는 이유는 당연히 ‘돈’입니다. 가해자들이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대중의 호응은 그들의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죠.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일방적 폭로를 ‘정의 구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정의’의 탈을 쓴 ‘영리행위’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범죄를 탄생시켰습니다. 경기대 한영선(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조회수와 수익금을 의식한 유튜버들의 폭로전을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범죄 피해가 일어난 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경찰, 검찰 등이 ‘피해자가 잘못해서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며 피해자를 몰아가는 행위를 ‘2차 가해’라고 합니다. 이 사건처럼 제3자가 돈벌이를 위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피해자와 관련된 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2차 가해라고 말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범죄예요. 사적 제재가 만연해지면 국가 공권력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 사회는 불안해질 겁니다. 통제할 필요가 있어요.”

목적이 돈벌이인 사적 제재의 부작용은 만만찮습니다. 눈앞의 수익에 눈이 멀어 무분별한 폭로전으로 이어지기 쉽죠.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의 의사와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폭로 경쟁에 뛰어든 유튜버들이 또 다른 형태의 가해를 양산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은’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폭로 경쟁을 하다 보면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국가의 사법체계처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 여자친구로 엉뚱한 인물이 지목돼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범죄 사건을 보고 있으면 뭔가 부족합니다. 가해자는 잘 살고, 피해자는 고통받죠. 하지만 가해자를 말살 시키는 건 복수의 달성일 뿐이에요. 진짜 중요한 건 피해자입니다. 피해자는 범죄 피해 이후 그대로 유기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해요. ‘살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찾아 회복을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습니다.” 한 교수는 국가가 한층 더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는 피해자가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에 우선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밀양 사건 피해자로 여기저기 재소환돼 소비되고 있는 이 상황을 멈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13일 한국성폭력 상담소는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자매의 입장문을 대신 전했습니다. 피해자 자매는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다.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받게 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란다.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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