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선 경남 양산 출신 의병장 김병희·김교상 부자에 대한 서훈이 신청됐다. 2017년 이후 4번째 서훈신청이다.
이번에는 경남도가 양산시와 함께 전담TF를 구성하는 등 철저한 준비끝에 신청해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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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6월 27일자 기록. 붉은 선에 1908년 6월 전투로 의병 14명 사살과 김교상 등 2명 체포 기록이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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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김병희·김교상 부자 의병장 추모·선양 추진위 발족식 장면. 광복회 경남지부 동부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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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경남도와 양산시에 따르면 도는 최근 국가보훈부에 김병희·김교상 부자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서를 제출했다.
도의 서훈 신청서에 따르면 김병희·김교상 부자 의병장이 이끌던 양산 상삼 의병대는 1908년 6월 26일 오전 11시 상북면 상삼리 황산역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로 의병대원 14명이 사망하고 일본군도 타격을 입었다.
상삼 무장항쟁 기록은 조선총독부가 1913년에 발행한 ‘폭도에 관한 편책’에 이들 부자의 체포사실이 기록돼 있다.
일본육군보병 제14연대가 작성한 진중일지(1907~1909)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이들 부자가 1907년 국채보상운동, 대한학회, 부산육영학교, 일본유학생 단지연맹 등에 의연금을 보낸 사실도 당시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보도를 통해 확인된다.
김교상 의병장은 1908년 5월 민족정신 고취를 위해 양산에 사립 양정학교를 설립한 사실도 황성신문 1908년 5월 6일자 기사를 통해 입증됐다.
특히 당시 경남 전역에서 무장의병투쟁을 벌인 양산 출신 서병희 의병장에게 거금(5000엔)을 군자금으로 지원하고 집안의 사병을 의병부대로 전환해 항일투쟁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김병희·김교상 의병장 부자에 대한 서훈은 2017년과 2020년, 2021년 등 모두 3차례 신청했지만 증거 불충분 등 이유로 반려됐다.
이번에는 경남도와 김 의병장 부자 후손 등을 중심으로 추모·선양추진위를 구성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쳐 신청했다.
도는 양산시와 함께 독립운동가 발굴·서훈 신청 전담팀을 구성하고 경남연구원에 관련 용역을 발주해 김 의병장 부자 관련 자료를 발굴, 조사하는 등 서훈신청에 심혈을 기울였다.
광복회 경남지부 동부연합회와 김병희·김교상 부자 후손들도 지난해 8월 상북 상삼리 의병항쟁 추모·선양 추진위를 발족하는 등 등 김 의병장 부자 서훈 신청 준비에 힘을 보탰다.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면서 전국적 유통망을 가진 양산 오경농장 김준영 대표는 김병희·김교상 의병장 부자의 직계 후손이다.
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