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 개원가 취직 나서거나
- 미국 의사면허 취득 등 눈 돌려
- 의대생 과외 등으로 시간 보내
- 증원 백지화 없인 미복귀 의사
- 환자·가족 물론 일반 시민 불안
- “아프면 안되는 국가, 정부 책임”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떠난 지도 200일이 지났지만 이에 맞춰 학업 현장을 이탈한 의대생 대부분도 강의실로 복귀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전공의는 개원가에 취직하거나 외국 의사 면허 취득 등 새로운 길을 찾는데 분주했고, 의대생은 의사단체나 정부 등에 불신만 더 커져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복귀 의사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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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조기 출산 위험 산모 고모(30) 씨가 지난 9일 의료 인력 부족 탓에 제주도에서 인천까지 헬기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
부산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A 씨는 11일 국제신문 취재진에게 “현재 상황에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우선 일반의로 일을 하면서 정부의 변화가 있으면 상황을 보고 수련을 이어갈 계획”이라면서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힘들고 고된 수련 생활에도 지쳤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은 당연히 안 될뿐더러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도 꼭 필요하다”며 “주변에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전공의가 적지 않다. 다만 미국 의사 면허를 취득하러 한국을 떠나거나 아예 일반의로 정착하려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사직한 전공의 중 고연차의 레지던트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낫다. 개원가에서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취업도 저연차 레지던트나 인턴보다 수월한 편이다. 인턴으로 전공의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의대 본과 졸업생은 한마디로 공중에 붕 뜬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의 한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려 했던 B 씨는 취직도 못 하고 하염없이 이 사태가 끝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B 씨는 “인턴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에 선배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제대로 병원 문턱을 넘어 보지도 못했다. 한두 달 내 끝날 것 같았던 게 벌써 7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상당히 지친 상태”라면서 “개원가에 취직하기 위해 몇 번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고연차 전공의를 선호했고 보수 등도 잘 맞지 않아 이제 포기한 상태다. 차라리 미국으로 떠나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거나 더 공부하는 게 현실적으로 맞는 선택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의 의대 증원이 무리한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병원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주변의 눈치가 보여 쉽게 가기 어렵다.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기 위해서는 개혁안을 꺼내든 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의 장기화로 전공의가 새로운 길을 찾는데 분주하다면, 의대생은 의사단체나 정부 등에 불신만 더 크게 느끼는 상황이다. 의대생 C 씨는 “의대생 사이에서는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이다. 의사단체나 정부 언론 정치권 등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며 “별로 할 말도 없다. 정부가 이 사태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면 강의실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대생 D 씨는 과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D 씨는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가 모두 백지화되지 않는다면 학업 중단으로 계속 투쟁할 것”이라면서 “이는 한두 명의 의대생이 가진 생각이라기보다 대다수의 뜻이다. 의료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 정부의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전공의협회(이하 대전협)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이하 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들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대전협 박단 비대위원장은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임현택 의협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임 회장과 의협 집행부는 전공의와 의대생 언급을 삼가시길 바란다. 임 회장의 조속한 사퇴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의정갈등 장기화에 환자·가족은 물론 일반 시민도 점점 지쳐간다. 추석을 앞두고 ‘응급실 뺑뺑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민의 불안감도 증폭된다. 60대 퇴직 공무원 D 씨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는데, 이제는 정부 정책 방향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제아무리 좋은 정책이고 옳은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을 관철하려면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국민의 지지를 모으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어린 자녀를 둔 30대 직장인 E 씨는 “의사단체들만 욕할 게 아니다. 정부가 과연 절실함을 갖고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나섰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선진 의료국가인 대한민국이 ‘아프면 안 되는 국가’가 된 데 정부는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