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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62> 제주 세계자연유산해설사 고수향

600번 오른 한라산서 영감, 고향 제주 숨은 이야기 전파

  •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   입력 : 2024-10-29 19:19:48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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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킴벌리 35년 재직 후 퇴직
- 제주 4·3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 문득 떠오르며 근원에 대한 생각
- 역사적 아픔 가진 성산일출봉 등
- 비경이 품은 설화·문화 알리기로

- “참된 아름다움은 이면에 존재
- 제주 인문학 여행 더 준비할 것”


◇ 고수향의 이모작 귀띔

- 자기와 대화하며 자기 인생에 진정 보람 있는 일을 하라
가을비 내리는 날,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해외여행객들에게 성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세계자연유산해설사 고수향(오른쪽 모자쓴 이).
인생의 절반을 지나다 보면 삶이 달리 보인다. 아무래도 외적 성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된다. 직업 목표보다 인생 목적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유한한 세월 속에서 어떻게 살면 좋을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는 인생 전반기를 살아온 고향에서 다시 고향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실 퇴직 후 고향을 공부하고 고향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를 만나러 간 제주에는 가을이 가득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이곳은 제주의 제1경 성산일출봉 홍보관입니다. 성산일출봉을 방문하시는 여행객들에게 5000년 전 수성화산으로 분출한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저는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UNESCO에 등재된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세계자연유산해설사’입니다. 이 성산일출봉 홍보관에 전시된 시 글 그림 사진 영상 등은 3년 여 성산일출봉이 제게 들려준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여행자의 관점’에서 제주 섬의 비경이 품은 신화 설화 역사 문화를 유튜브 블로그 페이스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이는 고수향(65) 제주 세계자연유산해설사다. 그를 만난 40여 평 규모의 홍보관에는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보이는 제주 본섬의 광경 등 다양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는 빼어난 자연유산과 특별한 역사를 가진 제주를 너무나 사랑해 이 일을 하고 있다 한다.



-여행자의 관점에서 안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자의 관점이란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사진만 찍고서 휑 가버리는 관광객 관점과는 다른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누리면서도, 이 비경이 품고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함께 알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제주에는 화산활동 후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만들어낸 독특한 자연풍광이 있지만 이 땅 위에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도 있지요. 이를 함께 알면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여행자의 관점에서 성산일출봉을 간단히 해설해 주시겠어요?

▶제주 성산봉은 산의 모습이 성(城)을 닮았기에 성산(城山)이라고 합니다. 정상에 오르면 봉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분화구의 모습만 보이는 세계적인 비경이죠. 일출이나 낙조를 보노라면 숨이 멎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산보다 높고 분화구보다 깊은 신화 설화 역사가 있습니다. 하룻밤 머무르며 낙조와 일출을 보시고, 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도 느껴보시면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되죠.

-성산은 어떤 설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나요?

▶이번에 소설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재가 되었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제주 4·3사건을 겪은 아픔이 있습니다. 성산과 연결된 광치기해변에는 이를 증명하는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위령비’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일제 강점기의 성산은 제주 트라우마의 원형이었습니다. 성산의 남쪽 해안 절벽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갱도 진지가 18개나 있습니다. 광치기해변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일제가 제국주의 야욕을 위해 섬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알 수 있죠. 세계적인 비경의 이면에 인간의 역사가 이토록 참혹할 수 있는지 놀라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육감을 활용한 여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안이비설신의라는 육감을 동원하는 여행을 더 설명해 주세요.

▶이름 그대로 육감을 다 사용하는 여행입니다. 사람들은 요란하게 와서 사진 찍고 떠나는 관광을 합니다. 그보다는 천천히 머무르며 바람 소리도 듣고, 땅의 냄새도 맡고, 이곳에서 나는 음식도 맛보실 뿐만 아니라, 지식도 얻고 성찰도 하시라는 뜻입니다.



그가 말하는 안이비설신의 여행은 인간적 성숙함을 지향하는 인문 여행인 것 같았다. 조선 정조시대 학자 유한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그러니 안이비설신의 여행은 앎을 통해 대상을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더 알며 또한 스스로 더욱 성장하는 여행이다.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본 성산 낙조. 백록담 속으로 해가 모습을 감춘다.

-이와 같은 제주 여행 철학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저는 30대 중반부터 산을 다녔습니다. 한라산을 600여 회, 백록담을 300여 회 올랐죠. 한라산이 품고 있는 수백 개의 오름을 오르면서 자연이 가진 선(線)의 아름다움도 보았습니다. 2018년 은퇴를 한 후 한라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을 10여 차례 완주하며 제주 섬의 모든 이야기는 섬의 생긴 모습에 오롯이 있지만, 한편 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에 있음도 알았죠.

-관광지가 아닌 여행지로서 제주는 잘 갖추어지고 있나요?

▶성산일출봉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외국인이 55%, 내국인이 45%입니다. 대중들의 여행 니즈가 많이 변화되고 있어요. 이들이 제주 인문학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더 준비해야 합니다.

-본래 제주가 고향이었나요?

▶네, 그래요. 해병대를 전역한 후 유한킴벌리에 입사했어요. 제주대리점에서 줄곧 35년을 재직했습니다. 유통업은 치열한 분야입니다. 대리점을 경영할 때는 월 매출을 6개월 만에 2배로 성장시킬 정도로 성과를 내기도 했지요.

-퇴직하시고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되었어요?

▶퇴직 후 처음부터 해설사 일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2018년 6월 18일, 평생 지고 오던 업의 지게를 내려놓고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엔 내가 다시 지고 갈 지게(業)가 금방 다시 제게 주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길을 걷고 걷다 보니 길이 제게 다른 길을 알려주더군요.

-어떤 뜻인가요?

▶내리는 비도 자연이고, 해를 가린 구름도 자연이고, 구름을 옮기는 바람도 자연입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투정 부리지 않습니다. 그 투정을 내려놓으니, 제가 걸어갈 길이 보입디다. 홀로 한라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한라산 숲속에서 제주 4·3에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와 삼촌 생각이 났습니다. 할아버지와 동생의 장례를 치른 아버지는 당신이 살기 위해 섬을 떠나 대한민국 군인이 되었습니다. 저의 근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어요. 사실 제주의 사람들은 제주 4·3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라산은 참으로 많은 생명을 품었는데, 참 아름다움은 눈(目)에 보이지 않아요. 섬이 품고 있는 고려시대 탐라의 역사, 조선시대 제주의 역사, 일제 강점기의 고통, 제주 4·3의 아픔을 만나야 제주 섬이 눈(眼)에 들어옵니다. 제주의 비경뿐만 아니라 이 비경이 속으로 품고 있는 설화 역사 문화도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걷고 걸었던 그 숱한 걸음을 통해 제주의 자연과 역사로부터 어떤 소명 같은 것을 받은 것이다. 어떤 이에게 인생이모작의 좌표는 이렇게 부름을 받는 것처럼 온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공부를 했죠. 그래서 ‘걸어 다니는 제주인문학’이라는 콘셉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이야기로 4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요레왕 건불령 갑서’라는 블로그도 운영하고요. 또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로 알렸어요. ‘하르방TV’인데, 현재 247개의 동영상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 섬의 아름다움을 태블릿 PC로 그림을 그리는 모바일 화가가 되었죠. 이제까지 단체전 3회, 개인전 3회를 열었습니다.

-해설사님에게 인생후반기는 전반기와 어떻게 다를까요?

▶인생 전반기에는 직장에서 목표를 향해 달렸습니다. 경쟁했습니다. 유통과 영업이란 게 매번 목표 목표 목표였습니다. 숫자하고 살았습니다. 남과 경쟁하느라 인생의 꿈은 생각조차 못 했었죠. 물론 그 덕분에 아이들을 유학까지 보내 공부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젠 천천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 일을 한 지 6년이 되었습니다. 남과 경쟁하기보다는 저 자신과 대화하는 삶입니다. 마침 제게는 제주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알리는 소명이 주어졌습니다. 제주의 본모습을 알리니 즐겁습니다. 보람찹니다.



제주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알면 알수록 우리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어떻게 이토록 간난한 삶이 있을 수 있었던지. 그 삶을 외면한다면 참다운 여행이 될 수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제주의 그 아픈 삶에 대해 ‘작별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차마 보내주지 못할 만큼 시린 제주의 땅과 인문을 사랑하는 남자, 고수향은 한라산을 600여 회 오르면서 이 제주의 섬과 제주 사람의 무늬를 함께 해설하고 있다. 그는 인생이모작을 통해 비로소 고향에 제대로 안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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