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가을날이다. 이 가을날에 국제신문은 경영난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매각’되기를 고대한다. 신문사를 팔아 신문을 살린다는 기막힌 현실이다. 현 대주주(능인선원)가 경영 책임을 떠넘기며 버티고 있어 매각도 쉽지 않다고 한다.
국제신문이 어떤 신문인가? 한때는 한수 이남 최대의 지역 일간지였고, 부울경의 대표적 정론지로서 여전히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신문엔 다른 신문에 없는 ‘국제 정신’이란 게 면면히 흘렀다. 시대정신을 담아 사자후를 토하던 필봉(筆鋒)이 있었고, 분권·자치·민주 정신을 올곧게 세우려한 문사들이 활동했다. 이들은 지역문단을 선도하며 한국문단을 다채롭게 했다.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의 족적이 밟힌다. 웅혼한 필치로 한국소설의 금자탑을 세운 나림 이병주와 영혼을 울리는 시를 쓴 이형기, 동시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최계락 등이 그들이다. 이병주는 조국보다 산하(지리산)를 더 사랑한 국제신문의 편집국장·주필이었고, 최계락은 국제신문 문화부장으로 근무했다. 최계락은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연애 편지를 책으로 엮은 전설의 기자다.
국제신문은 1947년 산업신문 창간 때부터 기자 문인을 키웠다. 초창기 국제신보 사장을 지낸 김형두는 청년기부터 국제 지면의 단골 문청이었다. 1950년대 전쟁기에는 피란 내려온 송지영·설의식 등이 문인 기자로 활동했고, 1960년대에는 수필가 오종식·허종두, 소설가 이병주, 시인 최계락·이형기가 기자 문인의 계보를 이었다.
1970년대 이후에도 김규태(시인) 조갑제(조갑제닷컴 대표) 최화수(소설가) 임수생(시인) 조해훈(시인) 강동수(소설가) 권영갑(방송작가) 등이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문명을 떨쳤다. 이들은 사실상 국제신문의 정신을 세운 대기자들이다.
이들이 남긴 글과 작품은 한국문학과 언론계의 굳건한 자산이다. 진주 태생인 이형기는 시인 이전에 기자였다. 그의 시에는 기자정신이 번뜩인다. 20여 년간 국제신문 논설위원·편집국장·서울지사장 등으로 일한 이형기는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시 ‘낙화’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2005년 별세할 때까지 그는 투병 와중에도 한시도 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서 도저한 시정신, 기자정신을 보게 된다.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아집과 탐욕에 젖어 진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무너져야,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가.
이쯤에서 내려놓을 것을 정중하게 요청 드린다. 국제신문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대주주 능인선원이 ‘가야할 때’를 알고 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게 능인선원과 국제신문, 지역언론을 함께 살리는 길이다. 77년간 이어져 온 ‘국제 정신’, 우리는 그것을 빼앗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