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항소심을 진행 중이던 부랑인 집단 강제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또다시 세상을 떠났다. 최근 형제복지원 관련 손해배상 소송이 처음으로 항소심에서 승소했으나 국가가 상고(국제신문 지난달 29일 자 6면 보도)하면서 법정 공방이 연장된 가운데, 국가 사과를 기다리다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속출하면서 피해자들의 울분이 터져 나온다.

형제복지원 옛 모습. 국제신문 DB

13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자 신영준(62) 씨가 사망했다. 부산에 거주했던 신 씨는 식도암으로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빈소는 이날 동래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오는 15일 발인 예정이다.

신 씨가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를 보면 그는 1975년 9월 26일 오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으로부터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당시 친구들과 운동하고 부산역 화장실에서 세면 후 나오던 신 씨는 박 원장에 의해 차로 끌려가 형제복지원으로 수용됐다.

감금을 당한 그는 밤늦게까지 일하며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한겨울에도 양말도 없이 낡은 고무신을 신고 나일론 소재 이불 하나를 10명이 함께 덮고 잤다는 게 신 씨의 설명이다. 그렇게 형제복지원에서 7년을 보낸 그는 함께 갇혔던 동료 5명과 겨우 탈출해 시설을 벗어날 수 있었다.

2021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신 씨는 1심 일부 승소 후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그는 지난달 제출한 탄원서를 통해 “어린 시절 강제 구금으로 노역과 영양결핍으로 인한 발육 부진,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 40여 년간 고통 속에 살았다”며 “열악한 삶과 취약한 환경으로 많은 피해 생존자가 중병을 얻어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소송은 전국에서 40건 이상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으나, 국가는 위자료 산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는 3만8000명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28일 항소심에서 피해자가 처음 승소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국가가 상고하면서 피해자들이 울분을 쏟기도 했다. 지난 17일 피해자 김의수(52) 씨는 국가가 상고할 것이라는 불안과 절망에 연제구 부산시청 근처 길거리에서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고 쓰러졌다가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다.

이처럼 법정 공방이 길어지자 국가배상을 애타게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는 피해자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강제수용 시설에서 학대받으며 자라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동구에서 피해자 김대우(53) 씨와 서모(64) 씨가 잇따라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