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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종료된 18일 서울서부지법 인근에서 윤 대통령이 탄 법무부 호송차량이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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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비상계엄으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결국 구속됐다. 비상계엄 사태 발생 47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의 체포에 이은 구속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이날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차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공모해 지난달 3일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윤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전날 오후 2시께부터 6시50분께까지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이후 줄곧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조사를 거부한 것과 달리, 이날 심문에는 직접 출석하며 구속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직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것 역시 사상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심문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내란 혐의를 반박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명예 회복’을 노린 윤 대통령의 노력에도 법원은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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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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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실질심사에는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공수처에서 주임 검사인 차정현 부장검사를 비롯해 6명의 검사, 윤 대통령 측에서 김홍일 윤갑근 송해은 석동현 차기환 배진한 이동찬 김계리 등 변호사 8명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정장 차림으로 법정 중앙 자리에 앉았다.
공수처와 변호인단은 윤 대통령이 지난달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진행한 국회 봉쇄 등 후속 조치가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한 폭동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특히 양측은 윤 대통령에게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는지,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 공수처가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이 관할 위반인지 등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놓고도 날을 세웠다.
공수처 검사들이 먼저 오후 2시15분부터 70분간 견해를 밝혔다. 이후 오후 3시25분께부터 70분간 윤 대통령 측 김홍일 송해은 변호사가 각각 준비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활용해 공수처 측 견해를 반박했다.
윤 대통령 역시 오후 4시35분께부터 약 40분간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가 끝나기 전에도 5분간 최종 입장을 재판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실질심사 종료 후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대통령께서는 사실관계나 증거관계, 법리 문제에 대해 성실하게 설명하고 답변하셨다”며 “재판부 결정이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은 양측의 공방 내용과 서면 자료 등을 검토한 뒤 19일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 구속을 결정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따라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쳐 수용된다. 공수처는 체포 기간을 포함해 최장 20일간 윤 대통령을 구속할 수 있다. 공수처의 내란 수사도 예전보다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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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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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 서울서부지법 주변 시위에서 모두 40명이 체포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18일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7명을 현행범 체포했다. 이 중 1명은 차량을 이용해 경찰을 폭행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또 법원 담장을 넘어 청사 부지로 침입한 혐의(건조물 침입)로 22명, 공수처 차량을 공격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로 10명, 취재진을 폭행한 혐의로 1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체포된 이들을 일선 경찰서에 분산해 조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법원 인근에서 종일 시위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