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려 유족회를 꾸렸다는 이유로 구속돼 옥사한 고 문대현 씨가 64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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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경남 진주서 6·25전쟁때 보도연맹사건으로 학살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는 모습. 국제신문DB |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7부(신헌기 부장판사)는 특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사건 재심 소송에서 문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 측 역시 문 씨의 무죄를 구형했다. 재심은 문 씨의 아들인 형순(80대) 씨가 고인을 대신해 지난해 2월 청구했다.
문 씨는 1960년 8월 ‘전국피학살자유족회’ 결성을 주도했다. 6·25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 등으로 군경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으로 구성된 단체다. 학살의 진상규명과 가족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위령제를 지내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문 씨의 장남도 사건에 연루됐다가 형무소에서 희생됐다.
유족회는 4·19혁명 직후 영남지역에서 처음 불씨를 틔웠다. 당시 문 씨는 ‘동래유족회’ 회장을 지냈고, 이후 발족한 전국유족회의 회장도 지냈다.
그런데 이듬해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쥔 박정희 정부는 유족회가 반국가단체(북한)의 이익이 되는 활동을 벌인다며 임원들을 혁명재판소에 넘겼다. 북한이 유족회를 이용해 사회혼란을 유발한다는 거짓말이 동원됐다. 문 씨는 결국 1961년 12월 징역 10년형에 처하게 됐다. 영남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생활하거나 고무공장을 운영하는 등 건실한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하며 그저 아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던 문 씨는 투옥 중 유명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유족회 활동이 북한의 찬양·고무·동조 행위와 연관돼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출돼있지 않고, 이미 국회에서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진행된 점, 5·16 군사쿠데타 이전에는 유족회 활동이 적법한 것으로 여겨진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