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결혼이민자 21%만 일자리
- 이 중 78%는 월소득 50만 원↓
- 통역·육아관련 단기직이 대다수
- 대졸자 갈 곳 없어 유흥업 전전
- 다양한 직업훈련·취업연계 절실
#“외출하기 전 피부톤은 가능하면 하얗게 보이게 화장합니다. 코 양쪽에 명암을 줘 코가 오똑하게 보이게 만듭니다. 그러면 한국인이랑 비슷한 얼굴이 됩니다.”
2일 만난 이가람(20대·가명) 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가 한국인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모를 법했다. 그가 매일 밤 출근하는 곳은 부산 유흥가 일대 노래방이다. 그녀도 이런 직업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1년 전 매일 폭력을 가하는 남편과 더 살 수 없어서 이혼했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세 살 난 아이와 영영 생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출신이 아니고 직업도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빼앗겼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이와 만나려면 이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직업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전화통화를 하는 순간 거절당하기 일쑤. 어쩌다 면접을 가면 담당자 눈에서 당황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연락조차 없었다. 그 흔하다던 편의점 점원 자리도 언감생심이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태국 출신 윤샘(20대·가명) 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인 유학생으로 부산에 왔고, 한국인 학생과 사랑에 빠져 어렵게 결혼했다. 결혼보다 더 어려운 건 생활고였다. 남편 직업이 변변치 않았고, 윤 씨라도 돈을 벌어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대부분 채용이 끝났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한참 뒤에 본 공고문에는 ‘채용 중’ 이라는 머릿말이 붙어있었다. 그러다 경력이나 자격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고수익 일자리라고 해서 연락했더니 어눌한 한국 말투도 반갑게 맞아줬다. 당일 면접을 하고 채용이 결정됐다. 윤 씨는 “사장을 따라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니 나와 비슷한 여자들이 모여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전화로 반갑게 맞아줄 때부터 어떤 곳인지 감이 왔다”며 “식당 아르바이트도 고민해 봤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고 추방당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겠다 싶었다”고 떠올렸다.
■30년 넘게 자리 못 잡는 잉여인력결혼이주여성은 199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 기준(법무부 통계 월보) 부산 등록 외국인은 5만5805명으로 여성이 2만3914명, 남성 31891명이다. 이는 부산 주민등록인구의 1.7%에 해당한다. 2019년 4만5999명에 비해 21% 증가한 수치이다.
이 중 유학생 1만3136명, 외국인 근로자(E-9· H-2 비자) 1만87명, 결혼이민자 6429명 등의 순서로 많다. 결혼이민자 중 여성이 대부분(5125명)을 차지한다. 결혼이주여성은 결혼 후 3년이 지나고 1년 이상 거주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199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누적된 한국 국적 취득 결혼이주여성이 최소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관련 기관은 추산한다. 결혼이주여성은 부산에서 일정 기간 머물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근로자와 달리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어엿한 한국인’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리를 잡지 못한다.
만약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생활에 실패하거나 생계가 어려워져도 본국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만 얼굴이 다르다는 이유, 혹은 말투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한다.
결국 이들이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상황이 늘어간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일할 내국인 여성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이 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다.
시민단체 ‘이주민과 함께’에서 일하는 결혼이주여성 기수하(중국 출신) 활동가는 “결혼에 실패하거나 생계가 어려운 이주여성이 노래방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일하다 성매매를 강요당하거나 성폭행 등의 피해를 보는 일도 있지만,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어 “결혼이민자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초기에는 여성 대부분이 저학력자였고, 한국어가 매우 서툴러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요즘 대다수의 결혼이주여성은 고학력자에 한국어도 유창하지만 취업하기가 정말 어렵다”며 “나 역시 중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내 항공사와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춘 결혼이주여성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21%만 일해… 월소득 50만원 미만”이주여성의 저조한 경제활동 수치는 부산시 출연기관의 관련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여성가족과평생교육진흥원의 ‘2023년 부산 외국인주민(결혼이민자) 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자 204명 중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21.6%에 그쳤다. 이들 중 38.6%만이 상시 고용 상태로 대부분의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월 평균 소득 역시 78.4%가 50만 원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결혼이민자 대다수가 통·번역 업무, 공동육아나눔터 업무 등 단기 근무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채용 주체가 다문화센터 등 공공기관이 대부분이어서 단기간이라도 최대한 많은 수의 결혼이민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보고 계약 연장에 소극적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결혼이민자의 취업은 통역과 관련된 업무에 한정된 경향이 있다. 결혼이주자들이 더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 있게 관련 훈련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전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공동기획=국제신문, BNK부산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