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마을로 다가옵니다. 대피하세요”

24일 새벽 한림면 안곡리 중리마을 주민 김모(72)씨는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보니 벌써 대문밖에서는 선잠을 깬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소방서에서 새벽 2시를 기해 주민 대피령을 내린 것이다. 산불이 마을 꼭대기에 있는 모사찰까지 500ｍ로 접근하면서 이뤄진 조치다.

전날까지 헬기를 동원한 진화로 소강상태를 빚었던 산불은 사흘째인 24일 야음을 틈타 혀를 낼름거리며 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경남도와 김해시 공무원, 이장 김영수(76)씨의 지시에 따라 마을회관으로 차분하게 대피했다.

김해시 한림면 안곡리 중리마을 김영수(76)이장이 24일 산불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박동필 기자

소방본부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살수차 등을 마을주변에 배치했다. 집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장 김 씨는 “3대째 이 마을에서 살아왔는데 20년 전 잔불은 몇번 났지만 이번 처럼 큰 불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 부 녀회장 진영선(72)씨는 “우리 마을은 70대 노인들이 많은데 사흘째 불이 꺼지지 않으면서 잠을 설치거나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속을 태웠다.

주민들은 오전에 헬기가 투입돼 진화가 시작된 후 집으로 귀가했다.

헬기가 24일 오후 김해시 한림면 안곡리 일대 야산에서 기세가 한풀 꺾인 산불을 꺼고 있다. 박동필 기자

이날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주민은 15가구 23명에 달했다.

한림 산불로 인한 대피는 인근 마을에서도 이뤄졌었다. 지난 22일에는 생림면 나전리 주민 98세대 148명이 마을회관으로 긴급대피하기도 했다.

다행히 집이 불타거나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놀란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중리마을 주민들의 걱정은 또 있다.

주민 감기태(75) 씨는 “산불로 인한 우려는 또 있다. 마을에는 소를 키우는 주민이 많은데 마을 옆 저수지에서 물을 퍼기위해 접근하는 헬기의 굉음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24일 오전 김해시 한림면 안곡리 산불현장지휘소에서 박완수 경남지사,홍태용 김해시 장 등이 주민안전 대책과 관련해 논의 중이다. 박동필 기자

우려에도 불구, 마을 부녀회는 김해시,소방대원 등 대원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접하며 ‘시골인심’을 느끼게 했다.

이날 오전 박완수 경남지사가 안곡리 산불종합지휘소를 방문, 대원들을 격려하고 현장을 둘러봤다.

박 지사는 김해시,소방서 등 대원들에게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마을주변에 소방차를 배치하고, 주민들이 안심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홍태용 시장은 “오후에 강풍이 분다고 해서 걱정이다. 잔불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일정 수의 헬기가 유지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남은행 김해시청지점, 경남지역 산립조합장, 진영읍부녀회 등이 현장을 찾아와 구호식량을 제공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돕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