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경성대 교수로 부임받은 필자는 2025년 2월 정년퇴직했다. 이에 21년 동안 몸담았던 연구실을 나와야 했다. 처음엔 방의 짐들을 비우고 떠나면 그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정든 사람과 이별하는 마음 같았다. 그래서 이삿짐 운반회사에서 오는 4시간 전인 새벽 3시에 1시간가량의 긴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86번째로 올렸다. 나름대로 이별의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이실식(離室式)이라고 이름붙였다. 연구실(室)과 이(離)별하는 식(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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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과 이별하는 이실식과 소락소암 개암식을 거친 자율인. |
그 많던 책들과 물건들로 가득 찬 연구실을 비우니 그야말로 휑했다. 남은 건 학교에서 받은 책장 책상 의자 캐비닛 밖에 없었다. 내 연구실이라는 장소(place)는 사라지고 텅빈 공간(space)만 남았다.
또 남은 게 있었다.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체였다. 화분에 심어진 두 그루의 나무들! 21년 전 내 연구실에 왔을 땐 꼬마나무들이었다. 21년동안 키가 천장에 닿을 만큼 컸다. 내 곁, 내 옆에서 나랑 같이 살던 반려수(伴侶樹)들이었다. 허나 이사가는 곳에 이 두 나무를 놓아 둘 공간이 만만치 않았다.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쓰레기처럼 내다 버리기엔 내 마음이 용납치 않았다. 자주 오르던 산길에 심기로 했다. 두 그루의 나이든 키 큰 나무를 어깨에 메고 낑낑 산으로 올랐다.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원래 있던 나무에 슬쩍 걸쳤다. 연구실 화분에 있던 흙을 가져다 엎었다. 그렇게 위태로운 이별의 식재(植栽)를 하고 나니 마음이 짠해지며 기분이 먹먹해졌다. 내가 센티한 A형이라서가 아니라 20년 넘게 나무들한테도 정이 들면 원래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삿짐이 왔다. 사나흘간 노동 끝에 연구실에 있던 짐들 정리가 끝났다. 분위기는 이실식 전의 연구실과 흡사했다. 두 그루 나무만 없을 뿐 새로운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나는 그 터전의 이름을 진작부터 지어두었다. 내 호인 소락(素樂)의 둥지(巢)이자 초막(菴)인 소락소암(素樂巢菴)이다. 내 머릿속에 키우는 새가 알바트로스이기에 새의 집인 둥지이며 둥지에 주로 있는 것들이 나무를 원료로 만든 책들이기에 초막(草幕)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문 밖에 간판도 떡하니 걸었다. 소락소암 암장으로 취임했다. 소락소암이 완성된 날 나는 1시간가량의 긴 동영상을 찍고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87번째로 올렸다. 제목은 개암식(開菴式)이라고 했다. 나름 오픈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칭구’를 여럿 불러 소락소암 개암기념 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소락소암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다짐했다. 지금껏 지인들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자유인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산에서 사는 자연인이 될 수도 없는 처지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 후 60여 년 만에 맞는 무소속이다. 나는 나를 자율인이라 명명하며 그렇게 살고자 했다.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91번째로 올렸다. 나 스스로의 사유(Reason) 습성(Routine) 율동(Rhythm), 3R 방침으로 살아가는 자율인! 대충 그러려니 하고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