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강생 쏠린 교과 수업 6개까지 개설
- 학생들 “진로 바뀔 경우 부담될 수도”
- 부산교육청 지원센터 열어 소통 나서
“저는 역사 분야를 가르치는데, 이번 학기에 학생 수가 적어 세계사 과목이 결국 폐지됐습니다.”(부산 기장군 정관고 이정열 교사)
“‘에이스’ 학생이 있는 과목은 1등급을 받기 힘드니까 기피 현상이 심해요.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한 학생 간 눈치싸움이 더 치열해졌습니다.”(부산 고3 학생 A 군)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난 24일 부산지역 고교 교사와 학생은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이수하도록 함으로써 학생 성장 중심의 교육을 실현한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모든 학생은 3년간 총 192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1학년은 공통과목 위주로, 2· 3학년은 진로에 맞는 선택과목 중심으로 수업을 듣는다.
고교학점제가 실제 현장에 전면 도입된 현재 교사들은 업무 과중에 내몰리고, 학생들은 내신 유불리를 따져 과목을 선택하기에 급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불만이 속출한다. 정관고의 경우 현재 고1 학생이 2, 3학년이 되면 학기별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교과군 기준으로 학기마다 5개 과목을 선택하게 된다. 이 교사는 “국영수는 대체로 기본적인 수요가 있어 안정적으로 개설되지만, 사회·과학 교과 중 일부는 내신 유불리에 따라 버림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적성을 고려해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실제로 거의 없다”고 전했다.
현재 이 학교의 경우 이번 1학기 사회 교과 중 인기 과목인 ‘사회문화’는 6개의 수업이 개설됐으나, 세계사 과목은 없어졌다. 초반 수요 조사에서 16명이 세계사 수업을 희망했으나, 수강생 현황을 확인한 학생들이 1등급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 다른 과목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있는 과목을 기피하는 현상은 확산하고, ‘사회문화’처럼 수강생이 많아 상대적으로 1등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교과는 학생 선호가 높다.
A 군은 “고교학점제로 일부 선택과목 교과에 학생이 몰리는 것도 문제지만, 도중에 진로가 바뀔 경우 대학을 지원할 때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이미 시범운영 기간에 고교학점제를 경험한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부산시교육청은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3월 교육청 별관 5층에 고교학점제지원센터를 개관, 학교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또 부산지역 일반고 99개교를 대상으로 지난해와 올해 각각 27억6800만 원, 28억300만 원의 고교학점제 운영 예산을 지원했다. 다음 달부터는 순차적으로 99개교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가 2017년 고교학점제 추진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2018년부터 제도 안착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며 “교사들이 출결 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만큼 다른 지역 시·도교육청과 함께 교육부에 ‘나이스 시스템’ 개선 요청을 적극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나 부산교사노조 위원장은 “담임체제 기반의 학교 운영 시스템은 고교학점제와 공존할 수 없다. 고교학점제는 상대평가 병폐를 증폭시켜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며 “학생의 정서적 안정과 관계 중심의 학교생활을 보장하는 ‘학생 중심 교육’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