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해·의료진 과실 등 평가 절차
- 의사들 공문 회신에만 수개월
- 낮은 감정비·인력부족 등 원인
- 의료사건 종결까지 4~6년 추산
- 앞으로 두 병원 우선 감정 촉탁

의료 분쟁 사건 등이 장기화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혀 온 ‘의료감정’ 절차를 신속히 만들고자 부산고법과 지역 대학병원이 손을 맞잡았다. 의료감정은 전문가의 판단을 바탕으로 충실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돕는 중요 절차이지만, 결과를 받아보는 데 너무 긴 시간이 소요돼 피해자의 진을 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5일 부산법원종합청사에서 부산고법과 동아대병원, 인제대 부산백병원이 ‘의료감정 업무 협약식’을 열었다. 부산고법 제공

부산고법은 25일 동아대병원·인제대 부산백병원과 의료감정 업무 협약식을 맺었다고 밝혔다. 두 병원 소속 전문의를 ‘전문분야 의료감정인’으로 추천해 전문감정단을 꾸리는 것이 협약 취지다. 앞으로 부산지역 법원은 의료감정이 필요할 때 이들 병원에 우선적으로 감정을 촉탁할 예정이다. 두 병원은 감정 결과가 신속하게 회신될 수 있도록 전문감정단을 확충하고 적합한 감정인 추천과 감정 절차 독려 등에 나선다.

의료감정은 신체감정·진료기록감정으로 나뉜다. 신체감정은 피해자 신체의 손상 정도를 확인해 장애평가 등을 판단하는 절차다. 진료기록감정은 의료진 과실의 여부나 인과관계를 밝히는 용도다. 민사·가사·행정사건에서 활용되며, 주로 의료 분쟁 등 손해배상 사건에서 의사의 판단이 필요할 때 쓰인다. 산업·공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부상 정도를 파악하는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문제는 감정 처리에 하세월이 걸린다는 점이다. 의사에게서 감정 의사(意思) 확인 공문을 회신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그마저 ‘자신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는 식으로 거부당하기 일쑤다. 이런 까닭에 감정 처리에만 1~2년을 빼앗긴다. 사정이 이러니 의료사건은 통상 종결까지 4~6년이 걸린다는 추산도 나왔다. 지난해엔 의료대란까지 겹쳐 감정 절차가 사실상 멈췄다.

그렇다고 의료감정 절차를 빠트리기도 어렵다. 감정은 재판부 판단에 따르는 임의적 절차지만, 경미한 사건이 아니고선 사실상 필수적으로 진행된다. 실제 전국 법원이 신청하는 의료감정 건수는 매해 2만 건 수준으로 적지 않다. 이에 견줘 최근 5년(2020~2024년) 처리가 끝난 의료감정은 한 해 평균 1440여 건에 그친다.

의료감정이 늦어지는 원인으로는 ▷낮은 의료감정비 ▷전문의 무관심 ▷인력 부족 등이 꼽힌다. 이런 어려움을 풀고자 법원행정처는 지난 1월부터 신체감정은 과목당 40만 원에서 80만 원, 진료기록감정은 6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감정비를 올렸다. 또 지역 고법에 ‘감정관리센터’를 만들어 감정 속도를 높이도록 했다.

부산고법은 의료감정 전문 병원을 공식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해 지난 4월 부산 울산 경남 소재 의료기관에 협약 요청 공문을 보낸 후 두 병원을 최종 선정했다. 두 병원은 신체감정 3개월, 진료기록감정 2개월 내 제출이 이뤄지도록 하고, 기한 내 제출이 어려우면 법원에 예상 회신일을 알리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수원·대구고법도 의료감정을 중점 촉탁하는 병원을 뒀지만, 공식적으로 전문병원을 지정한 건 부산고법이 처음이다.

법원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의료감정 처리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법원 관계자는 “적어도 의사 개인에게 감정을 촉탁하면서 공문이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크게 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