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인권실현 위한 ‘노노모’ 활동
- ‘돈 안되는’ 사건으로 사무실 꾸려
- 노조 없는 노동자 기댈 언덕 역할

드라마 속 노무사는 대부분 힘 없는 노동자의 편에서 사측 횡포에 맞서는 뜻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노무사의 주된 수입은 사측 사건에서 나온다. 노동자 대리 사건은 성공보수도 적고, 때로는 아예 떼먹힌다. 그런데도 드라마처럼 오로지 노동자를 위해서만 일하는 노무사들이 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의 노무사들이다. 올해 초까지 이곳 부산울산지부장을 지낸 윤대원(55) 노무사도 그 중 한 명이다.

윤대원 노무사가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사명에 관해 말하고 있다.

‘노무법인 나래’ 대표이자 23년 경력의 노무사인 그는 막 사무실 문을 연 2002년 노노모(같은 해 7월 창립)에 들어갔다. 당시 부산 회원은 그를 포함해 두 명에 불과했고 현재도 5명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게 노노모 회원은 사측 사건을 수임할 때 징계를 받는다. 간단한 컨설팅 정도가 아니고서야 사측과 통할 일이 없다. ‘돈 안 되는’ 노동자 사건만으로 사무실을 꾸리는 셈이다. 이런 사건의 통상 수임료는 의뢰인의 한 달치 월급이다.

생활인이 이런 ‘고행’을 감내하는 이유는 하나다. 노동 현장의 변화가 곧 한국 사회의 진일보라 믿기 때문이다. 윤 노무사도 마찬가지였다. 학창시절 학보사 기자로 일할 만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노동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노동자와 함께 호흡하며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고픈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윤 노무사는 “과거에는 노무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소위 ‘사용자의 편’이란 말이 많았다. 그러다 부산에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노무사들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노무사를 준비한 이들이 많다. 나도 그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물론, 드라마처럼 매번 노동자의 승리를 담보해줄 순 없다. 최근에는 양산에서 일하다 대전으로 일방적으로 전보 발령이 난 여성 노동자를 대리해 싸웠으나 ‘인사는 사용자의 고유 권한’이란 이유로 지고 말았다. 그는 “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 측 사건의 승률은 60% 정도다. 사용자는 충분한 자금력과 인력,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노동자는 거의 구두로만 진행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낸 답변서를 보고 반박하면서 증거를 찾는 식으로 흘러간다. 싸움에서 불리한 구도다. 정말 억울한 노동자 외엔 실제 아예 싸움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 침체로 노동자의 위세가 크게 줄어든 부산에선 노무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부산의 경우 영세 사업장이 많다. 노조가 없는 작은 공장의 노동자는 달리 기댈 언덕이 없는 처지다. 이런 분들의 상담이 많다. 그러다 보니 노무사들이 언덕이 돼주고 있다”고 전했다.

윤 노무사는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한 결과를 받아보는 일이라 때론 ‘나 때문에 졌나’ 하는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며 “그래도 노동자의 권익이 조금이나마 향상되는 데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힘써 온 이들과의 의리가 있으니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