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보호할 목적에 성폭행범의 혀를 깨문 것인데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쟁취했다. 과거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정당방위 또한 인정됐다.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10일 최 씨의 중상해 등 혐의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최 씨)의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인정이 돼서 상해죄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성폭행 관련 사건의 오판을 재심으로 바로 잡은 첫 사례다.

그는 만 18세 때인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 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한 혐의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 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시대의 법원은 최 씨가 생면부지의 남성이었던 노 씨와 거리에서 20분간 말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대담하게도 키스하려는 충동을 (노 씨가)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의 보탬은 됐을 것이라는 도의적 책임도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 씨에게는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 최 씨보다 가벼운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반면 재심 재판부는 노 씨가 ‘일생 말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됐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가 없어 중상해라 보기 어렵고, 일반 상해죄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므로 범죄성립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고 뒤 부산변호사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 씨는 “오늘의 영광은 여러분들의 힘과 노력 덕분이다”며 재심을 도운 여성단체와 변호인단 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61년 전 18세 소년이었던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동돼 나의 운명은 죄인이 됐다. 주변에서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만류를 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가 없었다”며 “역사와 기록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최 씨는 결심공판 때 사과의 뜻을 밝힌 검찰과 달리 별다른 사과를 전하지 않는 재판부에게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무죄가 선고된 순간에도 시원섭섭한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최 씨는 피해 56년 만인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부산지·고법은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불법 구금을 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최 씨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3년 이상 심리한 끝에 최 씨 주장이 옳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고, 당시 재심 대상 판결문·신문 기사·재소자 인명부·형사 사건부·집행원부 등 법원 사실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부산고법은 지난 2월 최 씨의 중상해 사건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인용했다.

부산지검은 지난 7월 23일 재심 결심에서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라며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최 씨를 ‘피고인’이 아닌 ‘최말자 님’으로 부르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 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며 사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