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 같던 교사시절 긍지·후회 교차
- 좋아하는 일 하고파 작가로 등단
- 문인협회 부회장 맡아 여러 활동
- 출판 힘든 회원 작품 발간도 도와
- 부산문학상 대상…또 한번 황금기
◇ 이용철의 인생이모작 귀띔
- 학습 역량을 키워서 나만의 창의적인 무기를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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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제인문학공동체 이용철 대표가 ㈔기회의학숙에서 진행된 인문학 토론회에서 ‘청산리대장정 의료인 수기’라는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 |
초장수 시대다. 머지않아 100세 넘긴 이를 만나는 일이 흔해진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현실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초장수의 메가트랜드를 알면서도 정작 자신의 인생을 그 호흡에 맞추지 않는다. 목표는 흐릿하고, 자기관리는 허술하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스스로를 치열하게 단련하며 사는 이가 있어 만났다. ‘언제나 청년 장교의 기백으로 산다’는 좌우명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산단다. 오늘 만나러 간 곳은 부산예술회관 한 문학 행사장이다.
-안녕하세요? 오늘 어떤 행사인가요?
▶저는 오늘 2025년 부산문학상 대상을 수상합니다. 이 상은 ㈔부산광역시문인협회(이사장 박혜숙)가 부산 문단의 발전과 부산 문학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부산시가 후원합니다. 이번에 저의 세 번째 시집 ‘청사포 驛’으로 대상을 받게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자기소개를 좀 해주시겠어요?
▶저는 인문학을 통해 시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길을 안내하는 인문학 길잡이입니다. 문인들이 실비로 출판할 수 있도록 돕고, 시와 에세이 창작 아카데미를 운영해 왔습니다. 2년 전부터는 수영구 생활문화센터에서도 시 창작반을 개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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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표가 교사로 재직할 때의 모습. |
오늘 만난 이는 인생 2막이 오히려 더 왕성한 사람, 이로제인문학공동체 이용철(68) 대표다. 젊은 시절 교사로 재직했던 그는 이로제뿐만 아니라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회장, ‘시가 있는 부산’과 ‘디카시 부산’을 이끌며 시민의 문예 활동을 이끌고 있다.
-이로제인문학공동체는 어떤 일을 하는 조직인가요?
▶인문학이 어떻게 시민의 삶의 질을 고양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실천하는 모임입니다. ‘철사문(哲·史·文)을 열다’는 슬로건으로 2022년도에 발족했어요. 현재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시 창작 아카데미와 독서 모임을 운영합니다. 며칠 전에는 광안리에서 ‘모던 보이 백석이 사랑한 여인과 詩’라는 제목으로 인문학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지난 봄 부산시민공원 미로전시실과 다솜갤러리에서 개최한 ‘시화전’과 더불어 좋은 반응을 받았었죠.
-출판사도 경영하신다고요?
▶맞습니다. 좋은 글을 써도 출판 비용 때문에 어려워하는 회원들을 위해 도서출판 이로제를 세웠고 지금까지 15권을 출간했습니다. 그 외에도 함께 활동하는 문학단체 ‘시가 있는 부산’과 ‘디카시 부산’ 문우들과 함께 동인지 ‘시가 있는 부산, 특별시’와 ‘시로시로(詩路視露)’를 발간했습니다.
-젊은 시절 어떤 일에 종사하셨나요?
▶ROTC 장교로 임관해 조국의 최전선을 지켰습니다. 이후 교직에 투신해 59세까지 영어 교사와 교감으로 근무한 후 명예퇴직했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 저는 ‘칼 선생’ ‘빨간 펜’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엄격한 스타일이었죠. 퇴직 후에는 부산대 사범대학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교직 시절 보람도 많으셨겠군요.
▶제가 한창 활동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고교의 대학입시 성과가 언론에 소개되는 등 학교별로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의 부장 교사와 교감으로서 ‘악역’을 맡으며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교육부의 영어중점학교 영남지역 단장, 부산교육청 학력 신장 프로젝트 모범학교 활동, 교육청의 교육연수원 강사 경력도 보람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밤낮으로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칼 선생’ ‘빨간 펜’의 별명을 훈장으로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오니 제 아이가 나를 몰라보고 울더군요.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입시 성과에 내몰려 학생들의 개성과 인격을 소홀히 한 점은 지금도 반성합니다. 신설 학교를 명문으로 만들기 위해 밤늦게까지 삶을 바쳤지만, 지금 돌아보면 긍지와 함께 후회가 교차합니다.
교육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아저씨가 되어버린 모습은 심각하게 이탈되어 온 우리 교육의 자화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일모작의 삶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퇴직 후 어떤 계기로 현재와 같은 삶을 기획하셨어요?
▶학교를 무리하게 이끄는 재단과 갈등할 때 은퇴를 결심했죠. 그리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까를 자문했습니다.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 저는 청년 시절 육군 장교로 복무할 때 정립했던 문무일체(文武一體) 정신이 좋았어요. 그래서 책을 읽고 정리하며 글쓰기를 좋아하고 태극권 무술과 달리기를 좋아하니 문무가 하나 되는 삶을 살자고 결심했죠. 그리고 남을 도우며 함께 살기를 잘하니, 결국 읽고 쓰는 일을 함께하며 공부하는 삶을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청년 장교의 기백으로 시민에게 인문학 길잡이로 살자고 결심한 거죠.
-퇴직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꼭 퇴직 준비라기보다는 교사로서 충실하고자, 교감 자격증, 1급 영어교사 자격증 외 문학심리상담 독서지도교사 논술지도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죠. 글쓰기 책과 논문을 수백 권 읽고 독서노트와 저만의 창의적인 노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며 문학석사 교육학박사와 철학박사 과정도 이수했죠. 2011년 수필가로 등단해 ‘바람 난 무지개’ 등 2권을, 2013년에는 시인으로 등단해 ‘학여울 풍경’ 등 3권의 시집을 냈고 2013년에는 ‘학교경영컨설팅’ 등 대학 교재를 2권 냈죠. 인생 전 주기에 걸쳐 변화를 읽고 수용하는 학습역량이 중요합니다. 저는 교직에 필요한 지식 외에도 사진 찍는 법과 팝송 공부, 영시 낭송, 독서법, 컴퓨터활용능력, 도서 편집 등 배우는 일을 즐겁게 해왔습니다. 돌아보니 이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그는 은퇴 이후 오히려 삶의 황금기를 살고 있다. 문학행사와 봉사활동, 지역 문화사업까지 숨가쁘게 이어진다.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말했다. “희망은 기다림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의 삶은 꼭 이 말의 증거인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군요.
▶저는 65세, 대학 강사에서 은퇴한 2022년부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의 시간이 곧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설레는 순간들입니다.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회장으로서 1600여 명 회원들의 역량을 높이는 일에 힘쓰고 있고, 수영구 문인회 회장으로서는 광안리 차 없는 거리 문화행사와 어방축제, 지하철 수영역 시화 전시 등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수영문예’ 발간과 문우들과 함께하는 노인시설 봉사활동까지, 그 모든 일이 제겐 큰 기쁨이자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인생 2막은 저에게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아니라, 또 한 번의 황금기이자 창조의 무대입니다.
-어떻게 하시기에 그렇게 보람된 삶이 가능한가요?
▶인생 2막에 들어서며 저는 분명한 자기 정립을 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심신 관리였습니다. 체력이 약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매일 산행과 달리기, 태극권으로 몸을 단련해왔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10㎞, 하프, 풀코스, 울트라 마라톤까지 꾸준히 도전하며 심력 또한 다져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혼의 힘을 기르고 삶의 철학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은퇴 후 설정한 비전을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관리하며 실천하는 일입니다. 남은 인생은 길고도 멉니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한 자루의 칼, 곧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 저는 남은 40년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미리 설계했습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중심으로, 즐겁고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조직 이끄는 어려움은 없나요?
▶관계 형성을 잘하려 늘 노력합니다. 퇴직하고 나면 과거의 직장과 직위에 매인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군대에 입대하는 이등병의 자세가 필요하죠. 대학 총장 출신은 배관 수리공보다 집 배관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역량과 경험을 존중한다는 자세, 그리고 오늘 누리는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잊지 않고 있죠.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이 나의 발전이란 생각으로 생활하죠.
-인생2막을 준비하는 교직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 주세요.
▶교사는 정글 같은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 연금으로 살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남은 40년을 그렇게만 살기는 너무 무료합니다. 심신에 병이 오게 되죠. 인생 2막의 비전을 세울 것을 권합니다. 물론 사업에 투자하거나 모르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만, 알고 보면 하루하루는 늘 도전과 창조의 미개척지입니다. 먼저 인근 도서관에 가십시오. 책을 읽고 강좌를 들으며 작은 도전부터 시작하십시오. 거기서 자기만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 2막을 맞이한다. 그러나 모두가 진정한 2막을 살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은퇴를 쉼표로 착각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소모시키며 세월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오늘 만난 이는 귀한 예외였다. 청년 장교의 기백, 교사의 엄정함, 그리고 인문학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인생을 재설계했다. 두 번째의 인생을 끝이 아니라 서막으로 바꾸고 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붙들고, 남을 돕는 일을 기쁨으로 삼는 태도. 그의 철학은 단순하지만 흔들림 없는 진실이었다. 그의 2막은 소모가 아니라 성숙이며, 소일이 아니라 창조의 전형이다.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지혜를 건네는 따뜻한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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