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 동부지원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리는 등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산 중견 건설사 ‘일동’의 사주 일가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일동 일가와 연루돼 뇌물 혐의를 받는 지자체 공무원들, 증재 등 혐의를 받은 지역은행 직원들은 대거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일동과 이들 사이의 유착 관계 등 일부 정황이 있다고 봤으나,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적용한 혐의를 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이동기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동의 장남 김모 대표와 차남 김모 씨, 임직원 1명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 대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25억 원을 선고받았다. 김 씨와 임직원 1명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다른 임직원 1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일동 법인은 벌금 5억 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애초 아버지인 김 회장을 포함해 세 명의 부자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나란히 재판에 넘겨졌으나, 김 회장이 재판 도중 사망해 공소가 기각됐다.

공소사실을 보면 김 대표는 2014년 8월부터 2022년부터 6월까지 82억 원 상당의 비자금 조성을 위해 회삿돈을 횡령하고,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협력업체와 허위 계약을 체결하거나 증액 계약을 체결해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수법을 썼다. 김 씨는 일동 관련 자금 50억 원을 자신이 대표인 회사에 사적으로 대여한 혐의 등을 받았다. 전직 임직원들은 비자금 조성에 가담하거나 묵인한 혐의, 법인은 허위 계산서 등을 발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김 대표는 횡령 금액 중 어느 정도는 이익을 누린 것으로 보여 본인의 주장과 달리 김 회장의 범행에 소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김 대표가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고 김 회장 사후 횡령 금액 대부분을 변제하는 등 실질적으로 피해 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진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씨는 배임 행위에 가담한 액수가 적지 않으나 상속재산 협의를 통해 상당 부분 피해 회복이 이뤄졌다”며 “임직원의 경우 가담 금액이 적지 않으나 단순히 직원으로서 오너 일가의 지시에 따라서 범행에 가담한 경위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일동 일가와 관련한 다른 사건의 선고 2건도 함께 진행됐다. 일동 일가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자체 공무원 3명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200~3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뒤 공동주택 신축사업, 인허가 절차 등에 있어 편의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특경법상 배임 등 혐의를 받은 지역은행 간부들과 특경법상 수재 혐의를 받은 은행 직원들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23년 7월 김 대표 등으로부터 지역은행에 담보로 제공한 신탁계좌에서 70억 원을 인출할 수 있도록 부당하게 대출 조건을 변경해 은행에 손해 발생 위험을 초래하거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판단, 이에 따라 해당 증거로 인정된 혐의는 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무원들의 뇌물공여와 수수는 기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한 혐의와 명확히 다른 것으로 보여 관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며 “은행 직원들은 일동과 유착 관계가 의심되나 실제 은행의 피해손해액이 미미하고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대표의 횡령 혐의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으며, 별개로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는 은행 간부 2명에게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앞서 2015년부터 시작된 일동 부자 간의 분쟁은 2022년 일동이 김 대표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 회장의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가 드러났고, 김 대표가 동생인 김 씨가 회삿돈을 빼돌렸다며 고소해 3명 부자가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