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직장암 발병 후 삶 변화
- 불행 뒤집어 일상서 ‘기쁨’ 발견
- 오늘을 남은 날의 첫날로 살고파
- 수도자로서 어느덧 60년이 훌쩍
- ‘한결같이 있어 고맙다’ 편지 감사
- 詩가 삶이 된 수녀로 기억해주길
◇ 이해인의 인생이모작 귀띔
- 넓어져라, 깊어져라, 순해져라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있는 해인글방의 오후는 ‘조용한 일’로 채워져 있다. 찻물을 올리고, 창밖의 빛을 바라본다. 기도를 하고 묵상을 한다. 편지봉투를 가지런히 놓는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이 고요 속에서, 누군가는 오늘을 다시 살아낼 힘을 얻어 간다. 우리는 상편에서 이 수녀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묻고자 했다. 이제 하편에서는, 이 삶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녀님의 암 투병 소식에 많은 분들이 걱정합니다. 요즘은 건강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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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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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암이 2008년에 발병했으니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그동안 방사선 치료를 계속 받아 왔어요. 대략 28번 이상이었지요. 항암 주사도 30번 정도 맞았어요. 사실은 지금도 몇 가지 알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보입니다만, 처음엔 놀라고 힘드셨겠군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저도 그때 제 스스로 의아할 정도로 너무 담담했거든요. 심지어 명랑하기까지 했어요. 아름다운 음악이나 그림을 접하면 눈물을 흘리던 저였는데 말이죠. 어떤 시인은 제가 수녀라는 체면 때문에 그런다 생각하고, 혼자 있을 때는 울기도 하라고 권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는 병을 그냥 받아들이고 친구로 삼자는 생각이, 특별한 결심 이전에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들어오더군요.
-‘명랑투병’을 하셨다던데, 그래서 만들어진 용어인가요.
▶병원에서 제가 밝은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의사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표현하셨어요. 그래서 이왕 그렇게 된 김에 저는 “아픔이여 오라”고 말하며, 저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진짜 명랑투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병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명랑하게, 속으로는 겸손하게 그렇게 17년을 보내온 셈입니다. (웃음)
암을 선고받은 뒤의 그 담담함을 수녀님은 강인한 어머니의 유전자 덕분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평온의 깊이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병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기도의 결과에 가까웠다. 오랜 수도원 생활 속에서 길러진 절제의 힘, 자신의 아픔을 한발 물러서 바라보는 내적 거리두기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암 투병은 수녀님의 삶을 많이 바꾸기도 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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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더 데레사의 삶과 영성을 닮고 싶어 한 이해인 수녀는 1994년 인도의 캘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와 며칠간 머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1997년에는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 2010년에는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라는 책을 번역했다. 사진은 마더 데레사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든 이해인 수녀를 김홍희 사진작가가 찍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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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단순해졌습니다. 복잡한 약속과 번거로운 말이 많이 줄었어요.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이렇게 인정하게 되자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졌어요. 병은 나를 작게 만들었지만, 삶은 오히려 더 분명하게 보이더군요.
-‘기쁨발견연구소’도 그러한 통찰의 결과인가요.
▶엘리너 H. 포터의 ‘파레아나의 편지’라는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기쁨 발견이란 일상에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오히려 기뻐할 이유를 찾는 일종의 기쁨 게임입니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지 않으면 불편해하기보다, ‘이 시간에 기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쁘다’고 생각하는 식이지요. 불행과 악조건을 뒤집어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래서 농담처럼 ‘기쁨발견연구소’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어요.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회원이지요. (웃음)
-어린 시절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숙명여대를 다니던 언니가 재학 중 수녀의 길로 들어가면서 수도 생활의 아름다움을 제게 정말 세뇌하듯 말했어요. 그것이 계기였어요. 수녀회 첫 면담 자리에서 저는 “많은 사람이 수도 생활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기에, 좋은 글을 써서 그 아름다움을 증언하고 싶다”고 말했죠. 마침 인류애와 큰 사랑을 생각하던 사춘기 시절이었고, 그렇게 한 걸음씩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해인 수녀는 1964년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했고, 1968년 첫 서원을 했다. 1976년에는 종신서원을 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기도하고, 읽고, 쓰는 수도자로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60년을 훌쩍 넘었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한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지금 소회는 어떠신가요.
▶젊은 시절에는 거룩한 뜻에 이끌렸고, 문서선교를 하며 늘 하느님께 기도해 왔어요. 60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더 단순해지고 싶고, 평상심을 꾸준히 갈고 닦은 데서 오는 환희심 같은 걸 체험하는 요즘입니다. 수도자의 삶은 어느 날 완성되는 길이 아니라, 매일 다시 시작하는 여정입니다. 독자들이 ‘이렇게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어 주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누군가에게는 응원이 되는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시집과 산문집을 합하여 30여 권을 통해 대중을 다독여 오셨으니 큰 응원이죠.
▶독자들의 직업은 정말 다양해요. 어떤 분은 ‘두레박’이라는 제 책을 읽고 천주교로 세례를 받은 분도 계세요. 저는 수녀원에 온 1960년대 중반부터 매일 무언가를 기록해 왔습니다. 일기 아닌 일기지요. 지금은 189번째 노트를 쓰고 있어요. 50년 전, 착한 수녀로 살아보려고 너무 안간힘을 쓰던 기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제 영혼의 자취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요즘은 다시 국어사전을 펼쳐 들고 글을 씁니다.
대담 중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본 10여 평 남짓한 한 방은 감동적이었다. 벽면을 따라 놓인 책장에는 수십 년 동안 독자들과 오간 편지들이 서류철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누군가의 고백과 절망, 또 누군가의 감사가 숨 쉬고 있었다. 대신 울어주고, 대신 견뎌온 시간의 저장고였다. 이 길을 60년 넘게 걸어온 수도자의 끝까지 머무는 자세가 언어로 남아 있었다.
-노트의 기록들은 수녀님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겠군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저만의 기도 방식이었어요. 마침 올해가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하며 대중과 대화를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라, ‘영혼의 일기, 해인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4월에는 명동성당에서 ‘민들레의 영토’ 50주년 기념 북 토크도 열 예정이에요.
-수녀님은 “오늘을 남은 날들의 첫날처럼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머무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일을 방해하더군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어요. 오늘을 남은 날들의 첫날로 살자고요. 아침에는 “또 하루를 받았네” 하고, 밤에는 “또 한 번 살아냈네” 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요즘은 사람들 간에 훈훈한 정이 약해지고 있어요. 그런 걸 느끼시나요.
▶그렇기도 하지요. 우리는 삶의 결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한 번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 보니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라는 분이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삶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구분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매일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삶에 성숙한 에너지가 채워진다고 믿어요.
-초장수 시대인데 어떻게 나이 들면 좋을까요.
▶죽음은 위독할 때 침대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바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애덕을 실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때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애덕이야말로 가장 아름답지요.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놓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넓어져라, 깊어져라, 순해져라.”
-수녀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부산 광안리에 문학거리나 시비가 조성된다면 어떤 글이 남겨지면 좋을까요.
▶저는 그저 평범한 수도자로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를 쓰고, 그 시가 삶이 되고, 다시 삶이 시가 되었던 수녀로 기억해 준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지요. 광안리는 제 마음의 친구 교사 엄마와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은 아픔이 많은 시대이고, 위로가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니 기도서를 따로 펼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한 송이의 그리움과 격려, 치유의 기도 꽃이 되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수녀원에서 광안리로 내려가는 길이 모두 개울이었다. 젊은 시절, 이해인 수녀는 해수욕장에서 다른 수녀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조가비를 주웠다. 광안리는 그에게 마음의 어머니이자 수도 생활에 영감을 준 고향이었다. 이곳에서 길어 올린 시어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하루를 견딜 힘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되었다. 이해인 수녀는 아픔을 숨기지 않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나이 들수록 누군가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이 모습은 시가 되어 흐르고, 기도가 되어 머물며,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온다. 이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시간을 품위 있게 살아내는 법이 아닌가 싶다. 고요한 해인글방에서 시작된 이 가르침은 오늘도 우리 삶을 향해 건너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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