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으고 가공하고 내보내는 도시
- BPA, 현지에 지능형 창고 마련
- 부산 수산물 유럽 확산 출발지로
- 바이닝언대 중심 클러스터 구축
- 산·학·연 선순환 푸드밸리 형성
- 부산도 물류·가공 등 자원 충분
- 고부가 ‘K-수산물’ 브랜드 육성
생선을 잡지 않아도 세계 수산물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인구 66만 명의 로테르담은 잡는 도시가 아니라 모으고, 가공하고, 내보내는 도시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부산시·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국립부경대와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북극항로의 서쪽 종점인 이 도시에서, 부산의 미래 청사진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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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BPA 물류창고에 김을 비롯한 K-시푸드가 쌓여 있다. BPA는 냉동물류창고를 추가 개설해 부산발 신선 수산물의 유럽 진출을 본격 지원한다. 부산시 제공 |
■항구가 아닌 플랫폼지난 2일(현지시간) 찾은 BPA(부산항만공사) 로테르담 물류창고에는 부산에서 건너온 김과 해조류 등이 가득했다. 한국 음식 열풍을 타고 K-씨푸드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전, 잠시 머무는 거점이었다. BPA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블루푸드 수출입 물류허브’가 될 냉동창고 구축을 준비한다. 단순 저장시설이 아니다. 사물인터넷(IoT) 센서들이 온도와 습도, 이동 경로를 초 단위로 기록하는 지능형 첨단 창고다. 이 인프라가 갖춰지면 부산에서 잡히거나 가공돼 북극항로를 타고 온 고등어 전복 굴 등을 유럽 전역에 수출할 수 있다.
BPA 신진선 로테르담 물류센터 법인장은 “수산물은 온도에 극도로 민감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는 콜드체인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며 “유럽 소비자들에게 한국 수산물은 믿을 수 있다는 무언의 증명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품이 아니라 데이터와 신뢰를 수출하는 공간으로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BPA가 둥지를 튼 로테르담 항만은 단순 하역 기능을 넘어 북해 연안 가공과 유통, 재수출 출발점이다. 배후단지 공장과 물류기업이 생산하고 가공한 제품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철도와 도로, 내륙수로를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에서 어획된 수산물도 이곳 냉동·냉장 화물을 처리하는 식품 가공·포장 기업과 물류기업으로 모인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품질 관리 기준도 표준화돼 있기 때문이다.
■식품 실리콘밸리의 교훈다음 날 출장단은 네덜란드의 ‘식품 실리콘밸리’ 바이닝언대를 찾았다.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규모의 유리 온실과 첨단 연구동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유니레버 같은 세계 최대 식품기업은 물론 CJ 등 한국 기업까지 이 대학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논문을 쓰는 대학이 아니라, 기업·대학·정부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며 기술을 산업으로 만들어내는 현장이었다. 국립부경대 김영목 수산과학대학장은 “부산 수산식품 산업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혁신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며 “연구진과 학생이 이곳에서 경험한 내용이 지역 산업발전과 정책 혁신의 토대가 된다. 이게 쌓여야 비로소 부산이 블루푸드 분야의 글로벌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동 방식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기업이 대학에 연구를 의뢰하면 대학이 즉각 기술 해답을 내놓고, 정부가 이를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산·학·연 선순환 구조다. 이 구조는 수십 년에 걸쳐 그 효과를 검증해 왔다. 이 대학을 중심으로 주변 8개 도시에 걸쳐 대규모 식품클러스터인 ‘푸드밸리’를 구축했다.
창시자인 로허 반 후설은 “대학과 기업이 서로 끊임없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고 해답을 제시하면서 공고한 네트워크가 구축됐다”며 “부산에는 생산 및 가공시설이 집적됐고 세계적인 항만도 있다. 연구개발(R&D) 역량도 충분하다”며 이미 갖춘 것을 잘 활용하고 연결하면 세계적인 수산식품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산은 이미 준비됐다로테르담에서 확인한 것은 역설적으로 부산이 이미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감천항에는 123개의 냉동창고가 밀집해 있다. 모두 3만 t급 이상 대형 창고다.단일 지역 기준 세계 8위권의 보관 능력이다. 전국 수산물 수입 통관의 80%가 부산을 거치며, 물량의 약 40%는 부산을 거쳐 제3국으로 향하는 환적 수산물이다.
여기에 376개 수산물 가공업체가 더해진다. 노동 집약적 구조에 머물던 신평·장림 산단과 서구 일대의 가공업체들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가정간편식(HMR)과 밀키트 시장에 도전하며 매출 수천억 원대의 강소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부산시 이월라 수산진흥과장은 “부산을 거쳐 가는 수산물에 ‘K-마크’라는 신뢰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브랜드가 된다”며, 수입 원료에 이력 관리와 안전성 검사를 더해 재포장·수출하는 ‘수산물 파운드리 모델’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감천항 동편 종합보세구역은 이 모델의 핵심 거점이다. 보관·가공·전시·판매까지 관세 유예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 특수 공간을 중심으로 금융 인프라와 연계한 ‘글로벌 수산물 거래소’ 설립과 디지털 경매 도입도 검토 중이다.
이미 실험은 진행 중이다. 러시아산 명란이 감천항으로 들어오면 일본 바이어들이 현지 경매를 통해 전량 매입해 가는 방식이다. 부산이 단순 경유지가 아닌 거래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는 모델이 명란을 통해 이미 입증되고 있다. 이제 그 범위를 넓힐 차례다. 명란 하나에서 수산물 전 품목으로, 단일 거래에서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그림이다. 동남아·러시아의 원료를 유치해 AI와 스마트 제조 기술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고, 디지털 물류 플랫폼을 통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부산판 푸드밸리’가 더 이상 구호는 아니다.
로테르담은 단순한 롤모델이 아니었다. 세계 8위의 냉동 보관 능력, 376개의 가공업체, 종합보세구역, 대형 항만, R&D 인프라. 부산에는 이미 퍼즐 조각이 다 있다. 남은 것은 이를 하나의 그림으로 맞추는 일이다. 부산시 김민수 정무기획보좌관은 “수산업은 부산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다. 항만 물류 가공업체 R&D 인프라를 하나의 체계로 융합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로테르담이 항만 배후산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했듯, 부산 역시 감천권역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항만 기반 글로벌 수산식품 허브도시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