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세 때 실직… 인생 깊이 고민
- ‘진짜 좋아하는 일’ 탐색 후 실천
- 부경대서 30여 년간 인재 양성
- 산학 현장서 두 번째 삶 준비
- 퇴직 전 로봇용접 기술로 창업
- 멘토 덕 자금난·건강문제 극복
- ‘건축+금속 용접비드’ 무궁무진
- 90대 땐 후학 양성 힘쓸 생각
◇ 조상명의 인생이모작 귀띔
- 진짜 좋아하는 일을 깊이 탐색하고, 미리 미리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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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명 ㈜스타웰즈 대표이사가 2024년 10월 15일 미국용접학회(마이애미)에서 용접공정 설계 분야 최우수 논문상을 받은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교수님들의 인생이모작은 어떨까. 전문성이 탁월한 분들이지만 좋은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술을 가진 공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조상명(71) ㈜스타웰즈 대표이사를 보며 눈이 번쩍 뜨였다. 은퇴한 지 6년이 넘은 지금도 교수 시절보다 더 이른 시간에 출근해 현장을 돌며 진도를 점검한다. 경륜과 활력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에게는 과연 어떤 비법이 있는 것일까.
-사장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대학에 있을 때보다 두 시간쯤 빨리 시작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직원들과 미팅을 하며 진행 중인 과제들을 점검합니다. 우리 회사는 용접로봇을 제작·판매하거나 용접을 대행하고, 금속 3D 프린팅도 하는데 주로 과제 수주형으로 일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언제 창업하셨나요.
▶저는 2020년 2월, 65세로 정년퇴직을 했으니 벌써 6년이 지났군요. 하지만 이 회사는 제가 59세이던 2014년, 교수로 재직 중일 때 창업했습니다.
조 대표는 부경대에서 30여 년간 용접 전공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직을 한 분이다. 재직 중 관련 학회의 학술상과 논문상을 여러 차례 받았고, 80여 명의 석박사를 배출한 용접 분야의 공인된 공학자다. 그런 그가 지금은 용접 전문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활동하는 친구분들은 별로 없지요? 올해 71세인데 어떠십니까.
▶현역으로 활동하는 저 또래 교수 출신은 찾기 힘들지요. 저 역시 힘든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큰 틀에서는 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 풀리던 문제가 어느 순간 풀리거나, 직원들과 함께 해법을 찾아내는 창의의 순간에는 가장 즐겁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나아가고 있지요.
-부경대 교수 시절의 조상명과 지금의 조상명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가장 달라졌습니까.
▶같은 것은 용접이라는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태도와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점입니다. 달라진 것은 가치의 중심입니다. 교수 시절에는 인재를 키우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고객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교수 시절에는 어떤 교수였습니까.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단순한 기술 전달보다는 온 세상을 용접이라는 관점에서 보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제자들 중에는 지금도 “교수님 덕분에 용접으로 먹고삽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교수 시절에 산업현장 문제 해결에 치중하셨지요.
▶저는 전문성을 쌓기 시작한 젊은 시절부터 늘 현장이 좋았습니다. 연구 논문에 집중할 때조차 실제 산업현장과 이어지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업 과제에 더 관심이 갔지요.
조 대표는 제자들에게 산업현장에서 잘 통하는 전문성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동시에 ‘용접인’의 자부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용접이 단지 조각난 철강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잇는 방식임을 알려주려 했던 것. 세계적 규모의 조선·방산·플랜트·자동차 및 원자력 회사들이 밀집한 부울경 산업벨트에서 활동하는 용접인은 곧 세계를 움직인다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인생이모작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언제부터 준비하신 건가요.
▶저는 매우 빨랐습니다. 39세 때 실업자가 되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그 시절 ‘정년퇴직 후의 준비는 20년 전부터’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저를 강하게 때리더군요. 특히 “네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10년이 걸려도 꼭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만 인생의 후반이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는 문구는 제 인생을 붙잡아 주었죠. 그래서 교수가 된 뒤에도 기술을 통한 자아실현, 즉 발명이라는 명제를 계속 다듬어 왔지요.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인생이모작은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느냐고.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정년 무렵이 아니다. 실패와 공백이 찾아왔을 때나 정말 좋아하는 일을 절실하게 묻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 걱정만 하며 이모작 준비를 미루고 있는 이들에게 경종이 되는 사례다.
-지금 돌아보면, 이모작 준비에서 가장 먹혀든 것은 무엇입니까.
▶현장을 중시하며 활동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늘 기업 경영자들과 가까이 지내고, 기술교류회와 산학세미나를 많이 주도했습니다. 중소기업 현장에 기술 지도를 나가면서 오히려 더 많이 배우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결국 창업의 바탕이 되더군요.
듣고 보니, 현장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이모작 준비는 간단치 않았다. 용접 기술교류회와 해외전시회 참관단을 모집하여 안내하고, 현장 중심의 대한용접접합학회 동남지회를 창립했으며, 부경대에 용접기술센터를 설립했다. 삼성 LG 두산 볼보 등 여러 기업과 30년 넘게 100여 개 산학과제를 수행하며 현장 한복판에서 두 번째 삶을 준비해 온 것이다.
-퇴직 뒤 기술 경영자로 역할을 바꾸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고객이나 직원들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제가 늘 조심하는 부분입니다. 또 기업은 경제적 가치가 중요한데, 저는 기술의 본질과 철학에 더 의미를 두는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는 장점일 수 있지만 최고경영책임자(CEO)로서는 곤란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람과 자금 관리 문제는 없던가요.
▶아주 컸습니다. 2022년에 회사를 하나 인수합병(M&A) 했는데, 재무 상태를 너무 허술하게 본 겁니다. 결국 빚을 떠안고 실질적 이익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뒤로 엄청 고생했고, 건강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스텐트 시술도 받았습니다. 기술 하나 안다고 경영이 저절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더군요. 사람을 다루는 일도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요.
인생이모작의 진짜 표정은 실패와 적응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는 교수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창업가의 욕심과 현실의 자금난, 몸의 신호를 통과하며 두 번째 현역을 살아내었던 것 같다.
-그처럼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한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꿈과 멘토입니다. 멀리 보는 꿈을 놓지 않으려 했고, 곁에서 도와준 멘토의 힘도 컸습니다. 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과거에만 붙들려 있으면 운도 잘 안 붙는다고 생각합니다. 기대와 희망이 있어야 노력할 힘도 생기니까요. 용접의 매력도 큽니다. 용접은 금속과 금속을 연결하는 기술이지만, 결국 사람과 기술, 산업과 미래를 연결합니다. 스마트폰만 해도 용접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사람들은 용접을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로봇용접 기술을 통해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한 일로 바꾸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술이기도 하지요.
-용접이 예술이라고요?
▶용접 비드의 다양한 질감과 색을 활용한다면 엄청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일본의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가 유명한데, 그 표면에 용접기술을 넣어 변화를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저는 80세부터 금속에 용접비드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미술관이나 알루미늄 선박 조립현장에서 다양한 인사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건축과 연결되는 금속의 용접예술은 무궁무진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입니다.
-건축과 결부되는 금속의 용접예술은 이해할 수 있으나, 80세에 시작하신다니 놀랍군요.
▶용접을 활용한 예술 활동은 용접의 오묘한 기술을 알아야 만들 수 있지요. 저는 80대에 그 새로운 경지를 보여드리고, 90대가 되면 후학 양성에 힘쓸 생각입니다. 그렇게 120세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그의 답을 들으며 나는 왜 어떤 사람은 퇴직 후 흐려지고, 어떤 사람은 더 또렷해지는지 다시 생각했다. 스탠퍼드대학의 로라 카스텐슨 교수가 말했듯, 사람은 나이보다는 삶의 목적을 놓칠 때 급격히 빛을 잃는다. 결국 사람을 젊게 하는 것은, 끝내 자신이 몰입할 문제를 붙들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 후반기를 앞둔 후배 공대 교수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자기 분야의 가치 변화를 보는 안목을 가지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기술에서도 중요한 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용접 후 그라인딩 작업의 인건비가 비싸지면, 그라인딩하지 않는 용접의 가치가 올라가죠. 이런 변화를 미리 읽고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용접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미래학을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퇴직 후에도 다시 쓰임이 생깁니다.
정년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같지 않다. 어떤 이에게 정년은 명함이 지워지는 날이고, 어떤 이에게는 오래 준비한 꿈이 비로소 시작되는 날이다. 조 대표를 보며 다시 확인했다.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미래를 잃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교수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뒤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자기 안의 꿈을 더 크게 키웠다. 그래서 그의 정년은 퇴장이 아니라 재등장이었다. 인생이모작이란 결국 다른 삶을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오래 품어온 자기 본색으로 다시 불붙이는 일이다. 정년은 끝이 아니다. 준비한 사람에게 그것은, 인생이 가장 뜨겁게 점화되는 순간임을 조상명은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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