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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지역이 키운 경성대 앞 ‘인디 영토’…획일적 단속에 초토화

풀뿌리 인디 죽이는 규제 <상> 부산 라이브 클럽 흥망사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김태훈 기자
  •  |   입력 : 2026-09-06 19:24:58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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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대연동 시절 클럽 리얼라이즈의 공연 장면. 국제신문DB
- 부산대 앞 시작된 문화, 경성대권 이동
- ‘바이널 언더그라운드’ 등 속속 들어서
- 외국인·청년 모이는 전국적 핫플 부상
- 통제 불가능한 ‘관객 춤’ 이유 영업정지
- 공연 일정도 흔들, 상권 침체로 이어져

부산 라이브 클럽 흥망사(史)는 반복의 역사다. 단속을 계기로 매번 똑같은 흥망의 흐름을 보여왔다. 대략 이런 식이다. 먼저 지역 팬과 음악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다. 인기를 끌며 자리를 잡을라치면, 경찰이나 지자체가 단속을 한다. 영업 정지나 벌금을 먹은 공간은 머지않아 문을 닫는다. 이 모습을 본 다른 공간들이 자신들도 험한 꼴을 볼까 봐 폐업한다.

공간이 사라지면서 음악가는 설 자리를 잃는다. 자연스레 ‘씬(생태계)’ 전반이 약화한다. 자신들이 사랑한 문화가 명맥을 잇길 바라는 이들이 재차 공간을 꾸린다. 또 단속당하고, 공간은 존폐 위기를 맞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지역 인디계가 쌓아 온 문화적 자산도 모래성처럼 스러진다.

■단속에 무너진 부산 인디 메카

부산 라이브 클럽의 ‘첫 메카’는 부산대 앞(금정구 장전동)이었다. 1992년 부산 최초의 재즈클럽 몽크가 생긴 이래 쉬바 인디펜던트 등이 인기를 끌었다. 또 1990년대 인디 록 붐이 불며 수많은 인디 밴드가 결성됐다. 무대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라이브 클럽은 희망이었다.

부산대 앞 라이브 클럽 몽크 허현웅 대표는 “1990년대 인디 록 문화가 퍼지면서 대학로에 동아리와 인디밴드의 야외 공연이 열리기 시작했고, 몽크 이후 전람회의그림 무 인디펜던트 쉬바 퀸 스테레오포닉 인터플레이 썸씽포낫씽 일출 등 다양한 형태의 재즈· 라이브 클럽이 운영됐다”고 기억했다.

라이브 클럽이 없던 시절 공연은 중노동을 동반했다. 밴드가 직접 소극장을 섭외한 후, 용달차에 각종 대형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 음악 장비를 싣고 가 오전 내내 무대를 세팅했다. 공연이 끝나면 서둘러 장비를 철거해 무대를 비워줘야 했다. 반면 라이브 클럽은 음향 장비를 갖춰놨다. 공연 한두 시간 전까지 기타와 드럼 스틱만 챙겨 오면 됐다. 클럽을 찾는 손님 또한 음악을 사랑하는, 코드가 맞는 이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음악적 네트워크가 연결됐다. 부산에 인디 음악을 매개로 ‘문화 영토’가 생겨난 순간이었다.

영토는 1997년을 기점으로 허물어져 갔다. 경찰 단속이 일대를 덮친 것이다. 당시 공연과 주류 판매가 동시에 가능한 업종은 유흥주점뿐이었다. 그러나 공간 대부분은 일반음식점으로 영업돼왔다. 단속으로 라이브 클럽들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일대는 쑥대밭이 됐다. 이후에도 때때로 단속이 벌어졌고, 이듬해엔 IMF까지 터졌다. 결국 수많은 공간이 폐업했다.

영토가 사라지면서 음악가도 지역을 떠나야 했다. 부산 1세대 밴드 ‘앤(Ann)’ 출신 장현정 호밀밭 출판사 대표가 그랬다. 그는 “당시 앨범을 녹음하려면 서울로 가야 해 고민이 컸던 차에 그해 단속 여파로 여러 라이브 클럽이 사라졌다. 부산에는 더 이상 설 무대가 없어 그해 하반기 서울로 갔다”고 회상했다.

■경성대 앞 거점으로 부활 몸짓

공간을 잃은 이들은 경성대 앞에서 영토를 새로 구축했다. 시작은 몽크였다. 1999년 이곳 대표인 김성환 씨가 불의의 일로 생을 마감하면서 몽크는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부산재즈클럽(PJC) 회원들이 공간을 계승하자고 뜻을 모아 새 거처로 삼은 곳이 경성대 앞이었다.

경성대 앞 클럽 거리의 살아 있는 역사로 꼽히는 바이널 언더그라운드 역시 몽크를 비롯한 부산대 앞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곳 김동하 초대 대표는 음악을 계기로 김 씨와 형 동생 사이로 지냈다. 김 대표는 그에게서 라이브 클럽을 권유받은 일을 계기로 부산대 앞에 크로스로드(1997년)와 솔트레인(1999년)을 차렸다고 설명한다.

당시 손님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세계화가 화두라 대학마다 원어민 강사를 대거 채용하던 무렵이다. 이들은 라이브 공연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간단히 술을 마시는 문화에 익숙했다. 원어민 강사는 대학이 밀집한 남구(경성대 동명대 부경대 부산예대 부산외대)에 특히 많았다. 이들이 ‘경성대 앞에도 가게를 내주면 거리가 가까워 좋겠다’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김 대표는 2003년 바이널 언더그라운드를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인 많은 곳이 ‘핫플’처럼 여겨진다. 공간은 금세 청년층의 인기를 끌었다.

2010년 하드록 중심의 라이브 클럽인 리얼라이즈가 나타난 뒤론 공간 차원의 공연 기획도 본격화했다. 무대를 원하는 음악가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넘어, 공간이 직접 콘셉트를 잡고 음악가를 섭외해 무대를 만들었다. 공간에서의 문화 기획이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부터 일대 라이브 클럽도 늘었다. 경성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인디 문화를 체화해 온 이들이 주축이었다. 바이널 언더그라운드 매니저로 일한 고혜진 대표는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세웠다. 15피트언더 대표였던 조완준 대표는 남구 대연동의 ‘음악 식당’이었던 째즈사치모에서 일하며 공연 기획 역량을 키운 바 있다. 전국적 인디 성지로 거듭난 오방가르드의 이승철 공동대표 역시 바이널 언더그라운드에서 일했다.

기획 역량이 쌓이고 공간이 늘면서 공간 간 연대 기획도 이뤄졌다. 2013년 ‘경성대·부경대 라이브 뮤직 클럽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티켓 한 장으로 여러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즐기도록 한 것이다.

■“단속에 문 닫는 역사 반복 안 된다”

이들 공간은 여러 악조건을 버티며 거리를 지켜왔다.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청년인구의 감소로 인디 문화에 새로 유입되는 이가 큰 폭으로 줄었다. 록 음악 등의 시들해진 인기, 청년 취향의 다양화도 영향을 줬다. 그래도 공연을 멈출 수는 없었다. 새로운 이들에게 끊임없이 문화가 소개돼야 한다, 그래서 ‘씬’이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2019년 무렵만 해도 7곳 이상의 공간이 인디계의 사랑방으로 기능했다.

이들의 믿음은 또 한 번 단속을 계기로 시험받았다. 2019년 일렉트로니카 클럽 15피트언더는 관객이 춤췄다는 이유로 1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 소음 민원으로 출동한 경찰이 내민 진술서에 ‘손님 2, 3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고 기재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역에 좋은 음악을 소개해 왔다는 자부심이 컸던 조 씨는 크게 상심했다. 이듬해 코로나19 이중고까지 겪자 영업 11년 만인 2021년 문을 닫았다. 이때부터 공간들은 ‘단속 위협’을 실감했다. 그런 와중에 터진 ‘오방가르드 사태’는 문화 영토 존속에 치명타가 됐다. 전국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오방가르드지만, 차후 영업 재개가 가능할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리얼라이즈도 비슷한 이유로 2020년 일반음식점을 그만뒀다. 이곳 배진수 대표는 “록 공연 특성상 모쉬핏(관객이 무대 중앙에 원 모양으로 서로 밀치듯 뛰는 공연 문화)을 통제한다는 게 불가능한데, ‘그런 거 하시면 안 되는 거 알죠’ 같은 협박 비슷한 말을 듣곤 했다”며 “힘들게 공연을 꾸려봐야 스트레스만 더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리얼라이즈는 폐업 2년 뒤 수영구에서 다시 문을 열어 공연기획·녹음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한 차례 폐업 뒤 대표를 바꿔 재개한 바이널 그라운드 역시 같은 피로감에 2020년 일반음식점을 떼고 공연장으로만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을 동안에도 낡은 규제가 인디 문화를 잠식하는 현실에 문화계는 경악한다. 장 대표는 “부산대 앞 라이브 클럽들이 단속에 무너지고 30년이 흘렀는데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현실을 도저히 믿기 힘들다. 전국적인 망신이다”고 말했다.

문화 영토의 축소는 상권 침체로도 이어진다. 조 씨는 “경성대 상권을 살려보려 올해 지역 상인과 문화예술 종사자가 모여 ‘경성대·부경대 문화상권 협의회’를 조직했다. 다음 달 10일 이곳 일대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었으나, 오방가르드가 영업 정지되며 난관에 빠졌다”며 “광안리나 전포 상권과 비교해 이곳 상권이 가진 장점은 우리가 오랜 기간 쌓아온 문화 기획 경험이다. 이번 일로 그마저도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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