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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역할은 혁신하는 학자이자 세상 바꾸는 사업가”

댄 허 美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연구 내용과 미래 과학도 조언

  • 강지원 기자 g1kang@kookje.co.kr
  •  |   입력 : 2026-10-06 18:59:1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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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칩 실험 데이터로 AI 학습
- AI는 대세… 효과적 활용 익혀야
- 더 중요한 건 호기심과 창의성

- 미국 랩 연계 부산 연구소 추진
- 실험 참여하면 차원 다른 경험
- 지역 학생에게 기회 제공할 것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댄 허 교수가 지난 1일 경남 김해 인제대학교 백인제기념관에서 장기칩 기술의 미래와 과학도에게 전하는 조언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동혁 기자
“누군가 흥미로운 걸 보여줄 때 관심이 시작된다. 학부 시절 우연히 만난 인공심장이 미래를 바꿔놓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댄 허(허동은·바이오공학) 교수의 삶은 이채롭고 도전적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훌쩍 미국으로 떠나 미시간대에서 바이오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반도체 미세공정을 생물학에 접목한 장기칩을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부산에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허 교수를 만나 장기칩 기술의 미래와 미래 과학도를 향한 조언을 들었다.

-대학에서는 무슨 연구를 하고 있나.

▶‘장기칩’을 통해 사람의 조직을 실험실에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인체 조직의 아바타를 만드는 일이다. 실험실에서 사람 세포를 이용해 폐 태반 피부 같은 인체 조직 모델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약물 테스트나 질병 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

-장기칩이라는 어감에서는 초소형 인공장기가 연상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인공장기라기보다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칩’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컴퓨터를 제작하는 미세공정 기술을 써서 지우개만 한 의료 디바이스를 만들기 때문이다. 디바이스 안에는 세포가 자랄 수 있는 배양실이 있어 몸속에 있는 조직과 비슷한 환경을 체외에서 재현할 수 있다. 폐 칩의 경우는 폐 조직 세포를 배양하고 팽창과 수축이 가능한 물리적인 힘을 가한다. 모양만 흉내내는 게 아니라 몸속의 동적인 환경까지 모사하는 세포 배양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학부 전공은 의학이 아니라 기계공학이었는데.

▶학생들에게도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들은 멀게 느껴지지만 누군가 흥미로운 걸 보여줄 때 관심이 시작되곤 한다. 저 역시 학부 때 인공심장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학부 연구생을 하며 바이오공학이라는 신세계를 만났다. 공학의 기술과 원리로 의학의 난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에 매료돼 유학길에 전공을 바꿨다.

-AI가 생명공학 분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가 AI로 인체를 시뮬레이션해 약의 효능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데 AI 모델을 훈련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다. 현재 의료계가 가진 환자 데이터는 많은 부분이 동물이나 정적인 배양접시에서 나왔다. 인체는 3차원이고 동적인데 데이터의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이다. AI를 제대로 훈련하려면 사람 세포가 살아 있는 동적 환경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대량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장기칩이다. 장기칩으로 수천 번의 실험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것으로 AI를 학습시킨다면 정교한 가상 인체 모델이 완성될 수 있다.

-‘비보다인’의 창업은 현재 프로토타입 단계인 장기칩을 대량생산으로 이행하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 지난 15년 동안 학계에서 장기칩 연구는 성공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공정을 수작업에 의존하다 보니 재현성이 떨어지고 실험 규모를 키우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비보다인이 추구하는 것은 자동화다. 로봇을 통해 공정을 전자동화해 24시간 수천, 수만 개의 인체 조직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비보다인이 주력하는 부분이다.

-그런 바이오 기업이나 연구소가 부산에도 설립될 가능성이 있나.

▶부산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고 대학병원들이 밀집해 있어 병원과의 연계 기회가 많다. 특히 장기칩 연구에는 실제 환자의 샘플과 세포를 받아 질병 모델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부산은 대학병원이 여럿 있어 협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산업통상부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추진하는 외국 연구소 유치 사업 등을 통해 미국 랩과 연계된 연구소를 부산에 설립하려고 한다.

-부산은 바이오를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업이나 클러스터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보스턴에서 5년을 지내며 느낀 클러스터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밀도였다. 부산은 훌륭한 대학병원과 제조산업 기반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공 사례가 필요하다. 선두 주자로 나선 기업이나 연구소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사람과 기업은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되어 있다. 비보다인이 그 구심점 역할을 하려 한다.

-과학자가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다방면으로 진출하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것 같다.

▶공학의 본질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혁신적인 발견을 했다면 그것이 상품으로 사람들에게 쓰여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기업이다. 혁신을 일으키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파급효과를 만들어내는 사업가로 변신하는 것이 현대 과학자가 가질 수 있는 역할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현장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책에서만 보던 과학은 학생들에게 멀게 느껴지기 쉽다. 학생들이 연구실에 와서 연구자들이 치열하게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실험에 참여해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준다. 미국에서 주변 도시나 한국에서 오는 학생들을 초대해 실험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부산의 학생들에게도 미국 랩이나 부산에 세워질 연구소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AI 시대에 발 맞춰 나아가는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호기심과 창의적인 생각이다. 한국 학생들은 성숙하고 똑똑하지만 스스로 가능과 불가능의 한계를 미리 정해두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연구는 남이 만든 방법을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단계를 거쳐 아직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의문을 품고 예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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