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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부산시내 주요 번화가 외벽에 한글 표기가 빠진 영어와 일본어 간판들이 내걸려 있다. 장동혁 기자 jdh4320@kookje.co.kr |
- 옥외광고법상 ‘한글 병기’ 의무
- 어르신 “무슨 가게인지도 몰라”
- 부산 구·군 한글 슬로건 5곳뿐
부산 부산진구 전포사잇길 2층 건물 전면에는 한글 표기가 없다. 1층 의류 매장 간판은 영어, 2층 음식점 간판은 일본어 문자로 채워졌다. 취재진이 150m를 이동하며 조사한 결과 외국어 전용 간판 업소는 15곳을 넘겼다. 외국어와 한글을 함께 표기한 매장은 없었다. 부산진구 서면 만취길,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해운대구 해리단길 등 대표 번화가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하루 앞둔 8일 부산 시내 주요 번화가 풍경이다. 한글 표기를 빠뜨린 외국어 간판으로 채워졌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외국어 간판에 한글 병기를 의무로 규정한다. 그러나 단속 사각지대와 행정당국의 소극적 대응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외국어 간판이 늘면서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부 어르신은 길을 찾는 데도 애를 먹는다. 전포동에서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는 박모(여·70대) 씨는 “예전에는 이렇게 외국어 간판이 많지 않았다”며 “특히 일본어 간판이 너무 많아 무슨 가게인지도 모르겠고 약속을 위해 장소를 특정할 때도 위치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한글 병기를 빠뜨린 외국어 간판은 옥외광고물법 위반에 해당한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광고물 문자를 한글로 표기하도록 명시한다. 외국 문자를 쓸 때도 한글 병기를 병행해야 한다. 상표 등록 등 특별 사유만 예외 적용을 받는다. 다만 3층 이하, 면적 5㎡ 미만 벽면 간판은 신고 의무에서 제외된다. 각 구·군 단속 활동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다.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한글 병기 요청 공문을 발송한 자치구는 지난해와 올해 부산진구와 연제구뿐이다. 수영구 역시 접수에 따른 계도 조치에 그쳤다.
업주들은 가게의 분위기 등을 고려했을 때 외국어가 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전포동에서 차 음료를 파는 가게를 개업했다는 김모(40대) 씨는 “가게 특성에 맞는 적절한 이름을 고민하다 보니 영어 명칭이 적절해 이렇게 (간판명을) 정했다”며 “관련 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상징 문구 표기도 영어 편중 현상이 뚜렷하다. 부산시는 2023년 공식 브랜드 슬로건으로 ‘Busan is good’을 채택했다.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한글 문구를 쓰는 곳은 서구·영도구·동래구·연제구·기장군 5곳에 그친다. 사상구는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다. 나머지 자치구 브랜드 슬로건은 전부 영문 표기로 일률 적용됐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이 문화적 기반을 흔든다고 지적한다. 이근열 부산한글학회장은 “우리말의 멸시와 외국어 선호 현상의 저변에는 몰이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언어 서열 의식과 열등감이 있다”며 “‘부산이즈굿’ 사용 역시 부산이 고유성 기반의 정체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