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 24일 일본 도쿄 시부야 공유 업무 공간 ‘츠타야 북스토어 셰어 라운지’에서 프리랜서와 단기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창가에서 밤늦게까지 작업에 열중하는 사람들 옆 1인석에서는 한 이용객이 노트북을 켜 둔 채 잠들어 있다. 권용휘 기자 |
- 2024년 1인 사업자 보호 법제화
- 고용 20시간 넘기면 자격 잃어
- 일자리 플랫폼이 재위탁 등 지원
- 작년 회원 등록 3800만 명 달해
- 노동단체, 불안정 고용 ILO 제소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법 제도가 디지털 플랫폼 기술과 맞물려 초단시간 일자리를 양산한다. 한국에서 주 15시간 경계선이 쪼개기 계약을 부추겼다면 일본에서는 주 20시간 기준선이 새로운 편법 고용을 낳았다. 일본 정부가 2024년 11월 시행한 프리랜서 보호법은 종업원 기준을 주 20시간 이상 근무자로 한정했다. 법적 보호 자격을 유지하거나 고용 책임을 피하려는 수요가 겹치면서 주 20시간 미만 초단시간 구인과 단발성 플랫폼 노동, 다단계 재위탁이 빠르게 늘고 있다. 법이 그은 시간 경계선이 오히려 고용 파편화를 재촉하는 역설이다.
■디지털이 가속한 비정규직화일본 단기 일자리 중개 시장인 스폿워크(Spot Work) 규모는 최근 수년 사이 급팽창했다. 26일 일본 최대 스폿워크 중개업체 타이미 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말 기준 누적 등록 노동자 수는 1470만 명에 달한다. 2021년 12월 200만 명 수준에서 4년 반 만에 7배 넘게 불어났다. 스폿워크협회가 지난해 10월 집계한 대형 중개업체 5곳 합산 등록자 수도 3800만 명에 이른다. 2024년 3월 출범한 한 후발 서비스는 출시 석 달이 채 안 돼 등록자 500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일본 노동시장 불안정은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추진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됐다. 당시 경영계 요구로 파견과 도급 노동이 전 산업에 대폭 허용됐다. 이후 스마트폰 보급과 디지털 플랫폼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비정규직 확산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우버이츠 음식 배달이나 아마존 택배 개인 도급처럼 필요한 시간만 인력을 호출해 쓰는 고용 형태가 일터 전반에 퍼졌다. 한국에서도 지역 중고거래 플랫폼이 동네 단기 구인 창구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열악한 개인 사업자를 보호하고자 2024년 11월 이른바 프리랜서 보호법(특정수탁사업자 관련 거래 적정화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발주자는 업무 내용과 보수액, 지급 기한을 서면이나 전자 문서로 즉시 명시해야 한다. 대금 지급 기한은 성과물을 넘겨받은 날부터 60일 이내로 제한했다. 일정 기간 이상 이어지는 거래에서는 일방적인 수령 거부나 보수 감액, 부당한 재작업 요구, 물품 구매 강제 같은 불공정 행위 일곱 가지를 엄격히 금지했다.
그러나 시행 2년을 앞둔 노동 현장에서는 이 법이 오히려 변종 고용 구조를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보호 대상인 특정수탁사업자는 종업원을 두지 않는 1인 개인 사업자나 1인 법인으로 한정된다. 후생노동성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하위 지침을 보면 법상 종업원 기준은 주 소정근로시간 20시간 이상이면서 31일 이상 계속 고용이 예상되는 인력뿐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주 20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종업원 수 산정에서 빠진다. 타이미나 셰어풀 같은 단기 구인 앱으로 부르는 일용직 스폿워커도 종업원으로 치지 않는다. 프리랜서가 대량 수주 물량을 처리하려고 초단시간 근로자나 단발성 플랫폼 노동자를 여럿 써도 법적 1인 사업자 자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현지 노무·법률 업계는 주 20시간 미만 인력을 활용해 보호 자격을 지키는 동시에 사업 규모를 키우는 방식을 합법적 위험 관리 전략으로 해석한다. 인구 감소와 만성적 구인난 속에서 단기 노동력을 원하는 시장 수요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쪼개기 외주 확산…위장고용 우려일부 스폿워크 중개업체는 프리랜서가 보호 자격을 유지한 채 업무를 재위탁하거나 초단시간 인력을 구인할 수 있도록 법률 검토 양식까지 제공한다. 초단시간 근로자나 재위탁 인력에게 출퇴근 시간을 강제하거나 업무 지휘·감독을 과도하게 행사하면 노동기준법상 고용 관계가 성립해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법령 경계선을 활용한 쪼개기 구인과 재위탁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도쿄에서 일하는 웹개발자 사토 씨는 대형 정보기술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단순 코딩과 데이터 입력 업무를 단시간 아르바이트생 5명에게 나눠 맡겼다. 개별 주당 근무 시간을 15시간 안팎으로 제한해 법률상 1인 사업자 지위를 유지했다.
그는 “아르바이트생 근무 시간을 주 20시간 밑으로 맞추면 법적 1인 사업자 자격이 유지돼 대금 지급 보호 혜택을 그대로 받는다”고 말했다.
영상 제작 총괄 프리랜서 다나카 씨는 법이 정한 재위탁 제도를 활용한다. 수주한 물량을 자막 편집자와 음향 담당 프리랜서에게 외주로 넘기는 구조다. 중간 발주자가 된 다나카 씨는 재위탁 사실과 원발주자 대금 지급기일을 사전에 서면으로 명시한다. 이어 원발주자에게 대금을 받기로 한 날부터 30일 안에 하청 보수를 지급하는 특례 규정을 지켜 분쟁 소지를 차단한다. 그는 “직원을 직접 채용하면 노무 부담이 크지만 재위탁 규정만 지키면 1인 사업자 신분으로 큰 물량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고 전했다.
종합서포트유니온과 비정규노동자 권리실현 전국회의 등 일본 노동단체도 지난달 후생노동성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폿워크 확산 문제를 국제노동기구(ILO)에 공식 제소했다. 이들 단체는 “사회보험과 고용보험 적용에서 제외된 초단시간 쪼개기 고용은 비공식 불안정 고용에 해당하며 정부 고용정책 의무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제소를 지원한 무라타 고지 변호사는 “앱으로 실질적인 노무 관리를 하는데도 사용자가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유료 직업소개 방식을 허용한 정부 판단이 잘못됐다”며 “법적 공백에 대응할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관한 지역신문 기획취재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기사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실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