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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8> 하, 조밀한 지배체제의 타락

방탕했던 걸왕 나랏일 팽개치자, 등 돌린 제후들 상으로 도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7 18:52:14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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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임금 폭군 정치

- 체격이 장대하고 완력도 대단
- 상 부락 수령인 탕이 거슬리자
- 감옥에 가뒀다가 이내 풀어줘

# 형사법률 ‘우형’ 시행

- 탐관·살인자 등 죄와 벌 만들어
- 피지배자에 집요한 옥죄기 돌입
- 고대 中 형벌 ‘오형’ 원류되기도

# 주변 간청 모두 무시

- 미인 말희에 빠져 연일 호화잔치
- 신하들 바른 정사 청해도 콧방귀
- 제후국 곤오씨 폭군 정치에 반란
- 탕왕이 직접 정벌해 걸왕 돕지만
- 하나라 권력 찬탈 위한 ‘빅픽처’

유목의 삶은 자연에 의지하고 순응한다. 푸른 초원을 만나면 게르와 같은 이동식 주거공간을 설치하고 가축을 방목한다. 가축의 젖으로 차를 끓이고, 발효시켜 음용할 것과 버터 등의 먹거리를 만든다. 기르던 가축을 잡아 배를 채우고 지방과 단백질을 보충하지만 가족처럼 보살핀다. 제멋대로 발길을 내딛는 가축이니 한 무리로 지키려면 걸음 빠른 말과 한 몸이 돼야 한다. 야생의 사나운 짐승을 경계하고 습격을 막아내기 위해 맹견을 식구로 보살펴 일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초원의 풀이 듬성해지거나 계절이 바뀌면 가축을 앞세워 미련 없이 떠난다. 다른 초원을 찾았다가 계절이 바뀌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더 넓고 푸른 초원을 만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바람처럼 떠도는 삶이니 고정된 것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 무리의 규모도 적당해야 하고 조밀한 조직이나 규율은 가당치 않다. 계절을 다스리고 초원에 푸름을 주는 신의 뜻에 수긍할 뿐이다.
   
중국의 농경 민족과 달리 동이 등 북방의 유목민들은 말을 타고 가축, 개와 함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안정을 위해 복종을 택한 농경인

이제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던 길에 주저앉았을 수도 있고 멀리 갔다가 되돌아와 자리 잡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떠날 수 없는 터전이다. 아버지도,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도 모두 이 땅에서 살아왔으니.

육신은 고달프다. 해가 솟으면 들로 나가 어둠이 내릴 때까지 땀을 흘려야 한다. 주식으로 삼는 것은 대부분 곡물이거나 땅에서 얻은 식물이다. 가축을 기르기는 하지만 아무 때고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지 않다. 가끔 어류나 짐승의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하지만 입맛이나 다시는 정도다. 예전의 선조들은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는 것이 삶 그 자체였다고 들었다. 쉽고 편할 것 같은데 며칠 동안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 굶주리기도 하고 여기저기 떠돌아야 하는 불안정한 삶이었다. 현명한 사람이 계절이 돌아오면 변함없이 다시 싹을 틔우는 곡물을 찾아내고 농경의 문을 열었다. 그로써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와 삶에 가장 위협적인 춥고 메마른 겨울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농경은 수확조차 고단하지만 웃음이 머금어진다.
농경은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 수확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겨울이 매서워도 수확한 곡물이 있으니 떠날 수 없다. 나무와 흙과 돌로 눈보라를 막을 집을 짓자 떠도는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정적이다.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농경을 하며 정착하는 인류가 된다. 홍수가 나면 모든 것이 뒤집어지지만 땅은 새 땅이 되어 씨앗을 뿌리면 더욱 잘 자란다. 계절의 변화를 읽어 절기를 파악하고 홍수를 대비해 둑을 쌓는다. 하늘은 읽을 수 있고, 자연은 대비하면 이겨낼 수 있다. 신은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읽는 사람이다. 자연을 이겨내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사람은 핏줄이 아니라도 모여 살아야 한다. 무리가 커지니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가 현명하면 대부분 사람은 복종하는 것이 옳다는 데 동의한다. 그가 임금이든 왕이든 천자이든 무슨 상관이랴. 이미 이탈은 염두에 없고 복종에 길들여진 것을.

■조밀한 관제 권력, 주지육림의 타락

   
농경은 수확조차 고단하지만 웃음이 머금어진다.
천문의 일을 게을리한 희(羲)와 화(和)를 벌하기 위해 육군을 관장하는 윤(胤)이 ‘윤정’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전회에 했다. 원문은 ‘육군’을 ‘육사(六師)’로 기록한다. ‘師’는 수장을 뜻하니 당시 군사는 여섯(六)으로 편제됐고 그것을 통할하는 수장이 있었음이다. 천문의 일을 관장하는 이가 있었으니 다른 행정을 나누는 관제도 정비되었을 것이다.

일단 ‘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서(史書)가 전하는 하의 마지막 임금 걸의 행태부터 보자.

“걸은 본디 체격이 장대하고 완력도 대단했다. 갈고리 모양의 구(鉤)라는 무기를 맨손으로 펴기도 하고, 쇠막대기를 새끼처럼 꼬기도 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나 곰과 싸우기도 했다. 동쪽의 유시(有施)씨 부락을 정벌했을 때 말희(妺喜)라는 빼어난 미인을 얻었다. 말희를 얻은 걸은 요대(瑤臺)라는 호화로운 궁을 짓고 연못을 파 술로 채웠으며, 정원의 나뭇가지에는 말린 고기를 걸어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환락에 빠졌다. 그럴 때 상(商) 부락의 탕(湯)이라는 수령이 눈에 거슬리자 소환해 하대(夏臺)에 가두었다. 그러나 덕(德)보다는 자신의 힘을 믿어 걸은 곧 탕을 풀어줬다.” 뇌물을 받고 풀어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또한 자신의 힘에 대한 과신이 밑바탕이었을 것이다.

“이윤(伊尹)이라는 신하가 여러 차례 정사를 바로 살필 것을 간하며 멸망을 경고했다. 그러나 걸은 ‘하늘에는 태양이 있고 인간 세상에는 군왕이 있다. 그러니 태양이 없어져야 군왕인 나도 없어지는 것이다’라며 코웃음 쳤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백성들은 ‘태양아, 네가 없어져야겠다. 우리도 너와 함께 멸망하리라’하며 울부짖었다. 이윤은 궁을 빠져나가 상으로 도망갔다.”

■잔혹한 형벌, 오형의 등장

   
메마르고 버석한 황토고원의 농경이 문명의 원동력이었다. 사진은 간수(감숙)성 일대.
‘탕을 소환해 하대에 가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하대’는 감옥임을 알 수 있다. 감옥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불문(不文)이었겠지만 일정한 법이 있었다는 뜻이다. 또 색부(穡夫)라는 감옥을 관리하는 관원의 명칭도 보인다.

사서에는 ‘하의 정치가 문란해져 우형(禹刑)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우형에는 ‘악하여 아름다운 것을 빼앗은 자’에게는 혼(昏), ‘탐욕스러운 관리’에게는 묵(墨), ‘살인을 일삼은 자’에게는 적(賊) 등의 죄와 벌이 있었다고 전한다. 살인이나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 등은 자연법적 범죄에 해당하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리의 탐욕, 즉 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죄와 벌을 정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랍고 태생적인가 싶어 서글프다. 고대 중국 오형(五刑)의 원류가 되는 머리를 자르는 대벽(大壁), 코를 자르는 의(劓), 생식기를 자르는 궁(宮), 발을 자르는 비(剕), 이마에 글자를 써넣는 묵(墨) 등의 형벌은 하 나라가 기원인 셈이다.

나라의 근간은 다스리는 체제의 행정, 재판과 형벌 외에도 재정의 바탕인 세금이 있어야 한다. ‘사기’는 우 임금이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각각 부세와 공물을 정했다고 기록한다. 하의 역사를 시작하며 말했지만 우 임금의 구주는 온전한 지배의 행정구역이 아닌 느슨하고 우호적인 연합이었을 것은 여러 차례 나타난 지역 수령의 반란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중 강한 무력과 하력을 만드는 것과 같은 주도적인 지위였으니 부세보다는 후대의 조공과 유사한 형태로 공물을 걷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행정, 사법, 재정 등에서 동시대 북방 지역에서 유목을 주로 하던 족(族)과는 달리 조밀하고 집요하게 피지배자를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왕조를 교체하는 반란의 시작

   
하 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이 주지육림의 환락에 빠진 모습을 그린 상상도.
자, 이제 ‘사기’를 통해 주변 세력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도 ‘國’의 체제를 굳혀가던 하가 무너지고, 더 강력하여 새롭게 나타날 왕조의 탄생을 위한 비장한 종곡(終曲)을 들어보자!

“걸의 포악한 정치에 마침내 제후국인 곤오(昆吾)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탕이 자신을 따르는 제후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키니 이윤도 따라 나갔다. 탕은 직접 도끼를 들고 곤오를 정벌한 뒤 걸까지 정벌하고자 하였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반란을 일으킨 곤오를 정벌했지만 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혹한 폭정이 반란에 이를 정도로 절박했다면 탕은 곤오씨와 힘을 합해야 옳지 않은가. 결국 폭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빌미였을 뿐 실제는 권력의 찬탈을 위한 또 다른 ‘반란’이었다. 다만 탕에게는 걸보다도 곤오씨가 더 먼저 제압해야 할 적수였을 뿐.


# 곡식 가공 쉽게 만든 ‘갈판’ ‘갈돌’…식문화 획기적 변화 불러

- 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석판 등
- 껍질 벗겨내고 가루 만들기 용이
- 국수 등 면종류 음식발달에 기여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갈판과 작은 몽둥이 석봉.
황허 유역 서부지역은 대부분 황토의 고원이다. 물살 사나운 탁류와 메마르고 퍼석한 땅에서 중국 문명이 씨앗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는 것은 인간의 강인함을 실감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기장 피 조 수수 등의 생명력 강한 작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는 그것들을 보며 농경의 눈을 떴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알곡들은 먹기에 불편했다. 딱딱한 데다 특히 거친 껍질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현대인의 눈에 갈돌과 갈판은 그저 그런 석기 중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의 인류에게는 문화, 특히 식문화 발전의 획기적 계기였다. 처음에는 돌 위에 알곡을 놓고 다른 돌로 비벼 껍질을 벗기는 정도였을 것이다. 어느 날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널찍한 석판과 작은 몽둥이 같은 석봉을 찾아내자 손쉽고, 한꺼번에 많은 알곡의 껍질을 벗겨낼 수 있었다. 그것들이 갈판과 갈돌이다. 껍질만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알곡이 부서져 작은 알갱이나 가루가 되기도 했다. 토기에 알갱이와 가루를 담아 물을 부으면 오래지 않아 걸쭉하게 되었고, 열을 가하면 먹기 좋은 죽이 되니 소화도 잘되었다.

   
굵은 국수에 토마토 등 야채와 고기 소스를 얹은 반면(拌面).
그들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즉 ‘매우 슬기로운 사람’들이다. 지혜가 있는 그들은 곧 물의 양과 열을 조절하여 질거나 되기가 다른 여러 먹거리를 만들었고, 흙으로 ‘시루’를 빚어 끓는 물의 증기로 찌는 조리법을 생각해 한 단계 더 진보했다. 며칠씩 보존이 가능하고 휴대에도 편리한 먹거리가 있자 경작 반경이 넓어지고 먼 곳까지 사냥에 나설 수도 있었다. 어쩌면 원정 전쟁도 그로부터 구상하고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하 나라가 건국되던 그 무렵에는 이미 서쪽으로부터 밀도 전래되었다. 밀알을 수확해 가루로 만들어 물을 붓자 높은 점성으로 쫄깃했다. 마침내 국수를 만들게 되자 여러 채소와 고기를 넣어 다양한 음식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서북지역은 국수음식이 다양하지만 2007년 칭하이(청해)성에서 4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면발이 발견되자 스파게티의 원조가 중국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어쨌거나 요리에 눈을 뜬 것이고 권력에 순종하는 이들의 노력은 ‘주지육림’을 가능하게 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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