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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1> 서역에 빠진 왕

이방의 여인에 마음 뺏긴 목왕 … 실크로드서 ‘러브스토리’ 쓰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22 18:36:23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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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의 세계로 순행 떠나다

- 융적 정벌 후 자신감 하늘 찔러
- 신하가 바친 말 타고 서역 시찰
- 순시 중 여신 보고 홀딱 넘어가

# 곤륜산서 서왕모와 ‘유희’

- 오뚝 선 콧날… 푸른 눈 금발 미녀
- 잘록한 허리 요염한 춤에 넋잃어
- 4년 동안 정분 나눈 끝에 귀국

# 동서 교류 활발했단 증거

- 20세기 초 4000년 전 미라 발굴
- 동서양 유전자 모두 가진 혼혈인
- 당시 누란 왕국 … 교역지로 번성

기원전 976년, 형초 정벌에 나섰다가 한수에 수장되어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한 소왕의 뒤를 아들 만(滿)이 이으니 목왕(穆王)이다. ‘사기’는 당시 그의 나이를 50세라 적었다. 위에 오른 목왕은 아버지 소왕의 남정(南征) 등으로 왕조가 쇠해져 이를 근심하여, 문왕과 무왕의 도를 따를 것을 명하고 내치에 전력을 기울이니 천하가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1934년 스웨덴 발굴단 일원이었던 베르히만이이 타클라마칸사막 타림분지의 소하에서 발견한 167구의 미라 중 하나.
■목왕, 서왕모를 만나다

목왕 12년인 기원전965년, 서쪽 융적이 감히 공물을 바치지 않으니 왕이 정벌에 나설 뜻을 밝혔다. 이에 대신(大臣)인 제공(祭公) 모보(謀父)가 나서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신중하지 않은 무력의 과시는 장난이 되고, 장난처럼 무력을 사용하면 위엄이 없어집니다. 문왕, 무왕 등 선대를 본받아 덕으로 다스리소서.’

   
기원전 960년 전후 주나라 목왕은 서역 정벌에 나섰다가 곤륜산 인근에서 전설의 여인이자 여신으로 알려진 서왕모를 만났다고 전해진다. 서왕모는 실제로는 신비한 깊고 푸른 눈과 오똑한 콧날,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서역의 어느 나라 공주였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목왕과 서왕모의 만남을 그린 상상도.
반드시 정벌에 나서야 할 만큼 크게 탓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목왕은 기어이 정벌에 나선다. 위엄을 과시하고 사방 천지로 세력을 확장하길 원했던 것이다. 안정된 내치와 경제발전에서 얻은 자신감의 발로였으리라.

기원전 961년, 융적 수장 다섯을 포로로 잡고 융의 사람 다수를 태원(太原 : 지금의 감숙성 진원(鎭原) 일대)으로 옮길 만큼 정벌에 성공한 목왕은 여세를 몰아 청해성 동부지역으로 서정(西征)을 감행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조부(造父)라는 말과 마차를 잘 다루는 신하가 있었다. 총애를 받자 더욱 정성을 다하여 각각 색깔이 다른 준마를 훈련시켜 왕에게 바쳤다. 이에 왕은 서로 다른 색깔이 잘 조화되는 여덟 필 준마가 끄는 마차를 조부에게 몰게 했다. 화려함으로 한껏 위엄을 갖춘 목왕은 서쪽으로 가 서왕모(西王母)를 만났다. 서왕모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사는 곳은 곤륜산(崑崙山)이라 전해진다. 서왕모를 만난 목왕은 너무 즐거운 나머지 돌아가는 것을 잊을 지경이었다고도 전한다.

청해성 서쪽, 곤륜산맥 북쪽은 지금의 신강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로 옥의 명산지 호탄(和田)이 있고 누란(樓蘭) 왕국과도 맥이 닿는다. 어쩌면 목왕의 서정은 청해성 동부에 그치지 않고 옥 생산지인 호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중원 사람들과는 다른 이방의 사람들과 그들 왕국의 여왕이나 공주를 만난 것인지 모른다.

길고 풍성한 금발, 우물처럼 깊고 큰 푸른 눈, 오뚝 선 콧날에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이 조화된 나풀거리는 옷차림, 처음 맛보는 달고 기이한 음식과 술, 마음이 들뜨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신비한 음악과 잘록한 허리를 버들가지처럼 흔드는 색정 가득한 춤사위…. 목왕이 만났다는 서왕모는 그 낯설어 신비로운 이방의 여인일수도 있지 않을까?

■신비로운 환상의 땅, 서역

   
춤추는 위구르족 무희.
서역은 실크로드라는 이름과 함께 오늘날에도 신비롭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존재한다. 물론 과장된 허상이다.

수만 년 전 아득한 신석기시대부터 거친 티베트 고원이나 청해성에도 인간이 살았으니 조금 더 북쪽 천산산맥(天山山脈) 남쪽 언저리에 사람이 살지 않았을 리 없다. 더구나 그때는 지금 우리가 ‘타클라마칸(塔克拉瑪干)’이라 부르는 사막의 땅도 아니었다. 그곳에는 호수가 있었고 호양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목이 우거졌다. 1600여 년 전, 엄청난 모래폭풍이 천지에 휘몰아치더니 마침내 온 땅이 눈가루처럼 부드럽고 가는 모래로 뒤덮여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변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점점 옛 기억마저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땅은 바람결을 따라 하룻밤 사이에 모래언덕인 사구(砂丘)의 등고선을 바꾸기 일쑤니 두려움은 신비스러움으로 변해간 것이었다.

1934년, 스웨덴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스벤 헤딘(Sven Hedin)의 발굴단 일원으로 중국 신강위구르 지역을 찾은 고고학자 베르히만(Bergman)은 타클라마칸사막 타림분지의 소하(小河)에서 167구의 미라를 발견했다. 약 4000년 전의 사람들로 밝혀진 이들 미라는 그 지역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누란(樓蘭) 왕국의 이름을 따 ‘누란 미라’로 불렸는데, 건조한 사막 환경의 영향으로 머리카락과 눈썹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았다. 금발이었을지 모를 갈색머리카락에 코가 오뚝한,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의 옷차림으로, 호수 위를 떠다녔을 나무배에 실려 발견된 그들은 누구인가?

21세기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마침내 그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다름 아닌 서양과 동양의 유전자를 모두 가진 혼혈인이었다. 놀라운 일이다. 4000년 전 그때 이미 신비한 이미지를 품은 그 땅에 다수의 혼혈인이 터를 잡을 정도로 동서의 교류가 활발했다니. 더구나 우리는 이미 상나라 여장군 부호의 묘에서 호탄 옥으로 만든 옥기를 다수 보았으니 그들과의 교류가 진작부터 있었음이 증명된 바이다.

4000년 전이면 기원전 2000년 경으로 하나라시기에 해당한다. 상을 이어받은 주 역시 그들 지역과의 교류가 있었겠지만 목왕이 신화 속 서왕모를 만났다는 이야기로 처음 전해지는 것은 좀 의외다.

■누란 왕국의 서글픈 운명

   
타클라마칸사막 북동쪽을 흐르는 타림강.
중국의 대표적 상징 중 하나는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만리장성(萬里長城)’이다. 도시나 관문을 지키는 성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하지만 저처럼 길고 지루한 울타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장성을 축조한 직접적 목적은 북방 유목족의 침범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일단 내 땅이 되면 다시 내주지 않겠다는 무의식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참으로 지독한 농경민족적 근성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막힌 것은 중국의 영역을 넓힌 것은 중원의 그들보다 북방의 이민족이었다는 사실이고 누란의 땅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금 앞서 가자면 타클라마칸지역의 고대 왕국에 대한 기록은 사기 ‘흉노열전’에 처음으로 나온다.

타클라마칸지역은 중국 타림분지 중앙의 위치로 북쪽으로는 천산산맥, 남쪽에는 곤륜산맥, 서쪽에는 파미르고원이 버티고 있어 동서 간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중요한 요충지가 된다. 고원이나 산맥을 넘어온 서역 상인도, 넘어야 하는 동쪽의 상인도 모두 그곳에서 숨을 돌리고 재정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막 동쪽에는 ‘떠도는 호수’라는 신비스런 이름으로 전해진 ‘로프노르(羅布泊)’라는 소금호수가 있었고, 그 주변의 여러 왕국이 교역의 중심도시로 막대한 이권을 누리고 있었다.

기원전 176년, 흉노의 수장 묵돌선우는 한(漢)나라 문제(文帝)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로프노르호수 서안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고대 중앙아시아 국가 월씨(月氏 : 또는 대월지(大月支))에 승리해 ‘누란’ 등 인근 26개 나라를 평정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흉노와 우호적 관계였던 한나라에 무제(武帝)가 즉위하며 사정이 바뀌었다. 누란 등 교역로 도시국가는 물론 서역 일부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던 흉노로부터 서역 교통로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벌에 나선 것이었다.

누란은 한과 흉노 양쪽에 인질을 보내는 등 양다리를 걸치고 명맥을 지키려 애썼지만 한에 의해 선선국(歚善國)으로 이름을 바꾸고 군사의 주둔까지 허용하는 수모를 당하다가 서기446년 경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의 북위(北魏)에 의해 멸망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아무튼 목왕은 서왕모에 빠져 무려 4년 동안이나 머물다가 귀국했다고 전해지니 서역의 신비는 더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 타클라마칸 사막 유전, 축복일까 재앙일까

- 사우디 두 배인 700억 톤 매장
- 원유 개발하려 운송 도로 개설
- 외곽 도시선 정부 압박에 분노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지도에 나오지 않는 도시를 만나기도 한다, 대부분 서쪽의 황량한 지역이다. 포장된 4차선 이상의 도로가 있고 번듯한 아파트와 집, 사람들로 마을을 이루는데 아예 이정표조차 없기도 한다. 지도가 허술해서도 행정이 엉망이어서도 아니다. 군사와 관련된 기밀지역이기 때문이다.
   
원래 위구르족의 땅이었던 타클라마칸사막의 석유 시추공.
타클라마칸, 그 오랜 불모의 땅에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누란공주 미라가 발견된 소하묘(小河墓)와 누란왕국 유적지였다. 그러나 당국의 허가가 간단치 않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출입금을 요구했다.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 당국의 규정이었다. 무엇보다 안내인의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고 길도 없는 사막에서의 안전을 위한 배려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해당 구역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을 통제하려는 것이었다. 핵무기 시험장이 있고 일급정치범수용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타클라마칸에 1995년, 사막 한복판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552킬로미터의 공식 도로가 생겼다. 여름 한낮에는 섭씨 70도까지 오르기도 하고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환경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3년이나 땀 흘린 결과였다. 사막도로 중간 지점에는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주유소와 식사를 파는 휴게소 격인 식당도 있다. 남북 어느 쪽에서 출발하든 오직 그곳에서 연료를 보충하고 요기를 할 수 있다. 입구 아치에는 ―정전(征戰) “사망(死亡)” 지해(之海)―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죽음의 바다를 정벌하는 전쟁’이라는 뜻이다. ‘황량한 사막밖에 없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격문도 있다. 왜?

타클라마칸에는 많게는 700억 t으로 추정되는 석유가 묻혀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매장량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 많은 양의 기름을 모두 차량으로 실어낼 수는 없다. 시추할 자재와 내륙으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한 자재 운송이 주된 목적이다. 부럽기보다는 두려웠지만 덕분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죽음의 사막을 종단했다.

   
그런데 성도(省都) 우루무치(鳥魯木齊)를 비롯한 사막 외곽 도시의 위구르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이권은 모두 가져가고 억압만 하는 정부에 분노하고, 그 분노만큼 가혹해지는 감시와 핍박에 전전긍긍했다. 사막의 정치범수용소가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한쪽에는 축복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재앙이 되기도 하는 타클라마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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