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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베를린 리포트 <상> 벽이 헐리자 ‘자유’가 흘렀다

30년전 동·서독 총구 겨누던 브란덴부어그 문…화합의 축제 준비 한창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06 19:39:25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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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오후 9시. 베를린 장벽은 붕괴됐다. 공산주의 동독은 산산조각 났다. 그 뒤 329일 여정을 거쳐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 당시 독일 유학생으로서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영 교수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그 현장을 다녀왔다. 하태영 교수의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그 현장을 가다’ 특별기고를 3회에 걸쳐 싣는다.


# 베를린 장벽의 과거

- 1961년 8월 두동강 났던 독일
- 자유 찾아 월담하다 200명 희생
- 소련의 붕괴 목격한 동독 주민
- 헝가리·체코 국경 넘어 서독행
- 벽 허물어지고 329일 만에 통일
- 하나된 국민 장벽에 올라 만세

# 베를린 장벽의 오늘

- 냉전 상징 ‘브란덴부어그 문’
- 구 동독지역에 조성된 광장엔
- 관광객 사이로 악단들 연주
- 중앙통로 지나 보이는 개선문
- 30주년 기념행사 무대 세워져

출장 승인이 났다. 장롱 속에 넣어 둔 어머님 유품인 노란 보자기에 속옷을 담아 묶었다. 생전 여행 한 번 같이 못 했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모시고 가기로 결심했다. 아침저녁으로 인사하면서 다닐 생각이었다. 새벽 4시 집을 나섰다. 열차로 광명역까지 가서 짐을 부치고, 인천공항으로 50분을 달렸다. 부산에 더 크고, 지역 규모에도 걸맞은 국제공항이 있었다면, 아침은 집에서 먹었을 것이다.
   
지난달 28일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어그 문(Brandenburger Tor) 광경. 많은 관광객이 몰린 가운데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하태영 교수 제공
낮 12시에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떠나니 점심을 든든히 먹고, 이번 일정을 점검해 보았다. 1996년 9월 학위를 마친 할레로 가서 1박 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독일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특히 할레는 유대인 교회당 총기 난사로 2명이 희생당한 곳이다. 그 소식에 당황하고 놀랐다. 내가 공부한 이곳은 조용한 대학도시이기 때문이다.

할레에서 열리는 지도교수 70세 행사를 마치고, 독일 중부와 북부지역을 돌기로 했다. 부산역에서 독일 철도 1개월 7회 이용권을 구입해 두었다. 먼저 루터 도시를 방문하고 싶었다. 그의 종교개혁정신과 문체혁명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루터가 공부한 에어푸르트를 방문하고, 바이마르로 가기로 했다. 1919년 바이마르헌법 100주년 행사와 헌법이 선포된 건물을 보고 싶었다.

이후 할레로 돌아와 작별인사를 하고 라이프치히를 방문하기로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된 니콜라이교회에 가고 싶었다. 만약 살아 계신다면, 피셔 목사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젊은 스포츠머리에 눈이 맑은 분이었다. 유학 시절 이곳에서 한인들이 예배를 올렸다. 그때 주말마다 인사를 드렸던 분이다.

■동독 친구들, 인생역전 이뤘을까

   
베를린에 남아 있는 장벽의 모습.
그리고 베를린으로 갈 것이다. 라이프치히에서 베를린까지 ICE(고속전철)로 1시간 조금 더 걸리니, 늦게 출발하여 베를린에서 1박 하고, 다음날 베를린 장벽을 둘러보고 싶었다. 얼마나 변했을까?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이동해 독일 양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것이다. 유학 시절 빌레펠트에 사셨는데, 고령(94·92세)으로 둘째 아들이 사는 함부르크 옆 뤼벡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얼마나 반가워하실지 가슴이 설렜다.마지막으로 뮌스터로 갈 것이다. 유학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다. 어학을 배우고, 석사과정을 마친 곳이다. 여기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를 보았고, 329일 후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맞았다. 당시 동숭동 대학로 대강당에서 반공교육을 이수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부모님 최대 걱정이 꼬임에 빠져 혹시 좌익에 물들거나,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곳을 간다니, 마음이 떨렸다.

이번에 가면, 첫날 방이 없어 머물렀던 유스호스텔과 기숙사 그리고 아제 호수 산책로를 걷고 싶었다. 이 모든 여행에 동행한 노란 보자기, 어머님 영혼도 함께 할 것이다.

12시 정각.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해 16시 20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11시간 20분 걸렸다. 기차역 창구에서 독일 철도표에 도장을 받아 할레행 ICE에 몸을 실었다. 1등석은 100EU(13만 원) 정도 더 비싸지만, 예약이 필요 없고, 좌석이 넓어 장거리 여행에 도움이 됐다. 저녁 6시 6분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3시간 30분을 달려 청춘을 보낸 할레역에 도착했다. 시꺼멓던 주변은 새롭게 단장돼 있었다. 총기난사사건 영향인지, 늦은 시간임에도 철도경찰과 일반 행정경찰이 서 있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은 시작되었다. 내일은 1992년 10월에 만났던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모두 동독 아이들이었는데. 인생역전을 이루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3일간 공식행사를 마치고, 계획대로 여행하고, 보고, 찍고, 인터뷰하면서 옛 동독 지역을 돌아다녔다. 여행 온 노부부도 만나고, 선거포스터도 보면서, 아직도 사회통합은 진행 중이구나 느꼈다.

옛 동독 지역은 좌파연대가 득세하고, 독일 통일을 이룬 보수정당들은 고전하고 있었다. 서독 좌파정당이 동독 좌파세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사통당(SED) 잔재가 제1당으로 부상했고, 서독 우파정당은 분열하여 극우파정당(AfD)이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때 브란덴부어그 문 현장. 연합뉴스
■“지금 바로!(sofort)”

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드디어 베를린에 입성했다. 베를린중앙역 사물함에 여행가방을 넣고, 배낭만 메기로 했다. 베를린 중앙역은 지하 3층으로 독일 전역과 동구권 철도망이 연결돼 있다. 지붕 위로 다니는 전철까지 있어 웅장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설계됐을까?

냉전의 상징 브란덴부어그 문(Brandenburger Tor)에 도착하니 음악소리가 경쾌하다. 이 문에서 옛 동독지역은 지금 광장으로 조성돼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여기서 한판 벌리고 있었다. 20인조 청년 악단이었다.

30년 전 같으면 장벽이 있고, 동독군이 망원경으로 훑으면서 경비를 선 곳이다. 문의 중앙통로를 건너니 서독 쪽 광장이 나왔다. 개선문이 보이는데, 11월 9일 30주년 행사로 무대 설치가 한창이었다. 11월 9일 토요일이면 엄청난 인파가 개선문 앞 도로를 전부 메울 것이다. 이때 어떤 연설이 나올지 나는 궁금했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세워진 것이다. 1961년은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장벽 설치 징조를 알고 서독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해 1월에서 8월 12일까지 동독인 15만9753명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장벽 설치 4일 뒤 8월 17일 베를린 장벽을 넘어가려던 페터 페히터(당시 18세)의 총기사망사건은 당시 전 세계에 냉전 시작을 알리며,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희생자는 200명에 달한다. 이 장벽이 30년 전 붕괴된 것이다. 베를린 시민이 장벽 위로 올라가 만세를 부르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벽 붕괴 전 동독은 파산 상태였다. ‘지상공산주의 낙원’은 모두 허구였음을 시민이 깨달았다. 경제 악화, 개혁조치 부재, 모스크바 붉은 광장 개혁 개방, 바웬사가 폴란드 대통령이 되는 장면을 서독 TV 방송으로 모두 시청하였다. 1989년 여름, 체코와 헝가리로 휴가 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고 서독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서독 외교전쟁에서 서독이 이김으로써 동독 사람들은 전용 기차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왔다. 모두 전문직 종사자였다. 의사 간호사 건축사 변호사 기술자들이었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는 월요일마다 평화기도회가 열렸다. 통제도 한계가 있었다.

무력 충돌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동독 정치권은 손을 들고 말았다. 동독 정치인이 결국 “장벽을 개방한다” 했다. 한 기자가 물었다. “언제부터인가?” “지금 바로!(sofort)” 역사는 이 한마디로 새 페이지를 넘겼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공산주의 동독은 산산조각 났다.

   
나는 베를린 슈프레(Spree) 강변에서 지뢰가 터져 죽은 사람, 장벽을 넘으려다 사살된 사람 그리고 슈프레강을 헤엄쳐 건너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정중히 묵념을 올렸다. 나는 등 뒤에 넣어 둔 노란 보자기를 들고 흔들었다. “어머님! 보이십니까.” 저기가 베를린입니다.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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