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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베를린 리포트 <중> 통일로 이끈 ‘정치’의 힘

승전국 눈높이에 맞춘 외교… 獨 스스로 통일 능력 증명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07 19:46:30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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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獨 분할 관리하던 美·英·佛·소련
- 장벽붕괴 후 동독 급변사태 우려
- “동의 없이는 통일 불가” 못박아

- 설득 나선 유능한 獨 정치인들
- 나토잔류·일부영토 포기 등 결단
- 주권 회복·동서독 통일 받아내
- 외교전·사회안정 조치 동시추진
- 329일 만에 국가 통합 이끌어

- 28년 분단이 부른 판이한 경험
- 고실업·이등국민 등 문제 야기
- 여전한 제도·정치·심리적 갈등
- 한반도 통일 여정 반면교사로

베를린 장벽 붕괴는 ‘포츠담 체제’를 뒤흔들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은 혼돈에 휩싸였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 독일을 분할해서 관리해왔다. 이것이 이른바 포츠담 체제다. 1945년 포츠담 선언 뒤 미·영·프·소 전승 4개국은 “4개국 동의 없이는 독일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1949년 이후 동독에 소련이 주둔하고, 서독에 미국 영국 프랑스가 분할하여 주둔했다.
   
지난달 말 찾은 베를린의 독일연방의회.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하태영 교수 제공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 구축 사태’는 자유 진영을 나토(NATO) 군대로, 공산 진영을 바르샤바조약 군대로 양분했다. 이것이 냉전체제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냉전 종식과 승전국 결단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전승 4개국은 동독에서 통제 불능 급변사태가 오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서독과 동독은 히틀러 전쟁 멍에 탓에 자기들 운명에 관한 결정권이 없었다.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꺼낼 수도 없었다. 이것이 전후 독일 현대사다.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는 이때 “승전국들과 협의 없이 통일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발칵 뒤집혔다.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수상 대처는 분노했고,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은 주시했으며, 소련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냉담했다. 미국 부시 대통령도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독일 문제’를 유럽 재편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독일 정치가들은 유능했다. 이 복잡한 ‘2+4’(서독·동독+전승 4개국) 난관을 돌파해나갔다. 3인방은 콜·겐셔·텔치크이다. 각각 수상·외무부장관·국가안보수석이었다. 소련은 크렘린이 명령만 하면, 베를린 브란덴부어그 문까지 탱크를 밀고 갈 수 있었다. 콜은 고르바초프 설득에 공을 들였다. 미테랑은 휴가지까지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대처는 부시를 징검다리로 설득해나갔다. 독일 정치인들은 기회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대처는 “독일은 항상 위험한 나라다”라며 독일의 자체 통일 시도를 절대 반대했고, 고르바초프는 동독에 주둔해 있던 소련군 철군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서독은 미국과 한 덩어리가 돼 기존 ‘승전국 패권질서’를 ‘신유럽질서’로 재편하려고 노력했다. 콜, 겐셔, 부시의 인간관계는 더욱 깊어갔다.

서독 정부는 역사적 기로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제안했다. “독일은 범유럽안보질서 속에 편입할 것이다. 통일 후 나토에 머물 것이다. 중립국은 안 한다. 독일-폴란드-오더-나이세 경계선 인정한다. 옛 동독 영토 일부 포기한다. ABC(원자력·생물·화학) 무기 포기한다. 독일 통합군대 병력을 37만으로 동결한다. 소련 주도로 이뤄진 옛 동독의 1945-1946년 토지개혁 수용한다.”

독일은 그 대신 다른 것을 확실히 받아내고자 했다. 독일 내 연합군 권한 종식, 2차 세계대전 패전 배상금 면제, 완전한 독일 주권 회복과 동·서독 통일이었다. 1994년 소련군의 동독 철군도 받아냈다. 그러나 역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후 소련에서 보수파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나 고르바초프가 감금되는 사태가 터졌다. 소련 내부가 그만큼 혼돈스러웠다. 쿠데타에 저항하던 소련의 옐친이 쿠데타 군대의 탱크 위로 올라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보수파 쿠데타는 좌절된다.

독일은 과거사를 돈으로 해결했고, 외교로 헤쳐나갔다. 소련군이 동독에서 철군하는 비용과 동독 군인 가족 이사 비용도 전액 냈다. 당시 서독 경제는 전후 최대 호황이었다. 결국 통일은 돈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엄청난 지형 변화가 일어났다. ‘2+4’는 전승 4개국과 동·서독이 평화적으로 맺은 협약이다. 평화조약 성격이 깊다. 그래서 베를린 장벽 붕괴는 역사적인 것이다. 유럽 현대사를 다시 쓴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이 이날 축제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슬에서 해방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외교 문제고, 동·서독 내부는 더 복잡했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45년 포츠담 체제’에서 독일은 통일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독일 분단 과정과 장벽 붕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나라 통일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와는 분단의 상황이 전혀 다르다. 독일 정치인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만 해도, 통일 과정이 최소 5~10년 소요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현실은 329일 만에 끝났다.

329일 동안 그 복잡한 외교전쟁을 하면서 동독 사회를 안정시키는 조치를 취해 나갔다. 옛 동독 지역 자유선거 후 새로운 동독·서독 정부가 통일협상을 하는 것부터 ▷수도이전 협상 ▷동독 화폐 교환 ▷경제·환경·행정·법원·경찰·철도·교통망·정보·교육 통합을 논의했다. 이것이 쉬운 일이었겠는가. 1990년 10월 3일 통일한 뒤에는 통일비용 논쟁, 과거체제 청산, 슈타지(옛 동독 비밀경찰)-불법 가해자 처리, 정권 피해자 명예 회복과 보상, 옛 동독 국유자산 처리를 위한 신탁청 발족, 법제도 통합을 논의했다. 모두 난제였다.

그 이후 29년 동안 독일 한쪽에서는 고실업, 심리 갈등, 가정 해체, 이등 국민의 현실에 분노했고, 한쪽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독일 통일·통합을 위해 2조 EUR(우리 돈 2600조 원)를 쏟아 부었는데, 결과가 이게 뭐냐며 욕을 했다. 제도·정치·심리적 통일이 어찌 쉽겠는가. 우리도 비슷할 것이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끝이 없다.

큰 판에서 독일 통일을 보자. 독일 통일은 우리의 모델(종착역)은 맞지만, 우리는 독일처럼 전범 부채가 없으니, 고리를 잘 풀어 현명하게 통일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보수도 진보도 정신 차려야 한다. 독일을 반면교사 삼고, ‘붕괴보다 평화’에 집중해야 한다. 멀리 보고 길을 가야 한다. 통일의 명암도 정확히 알려야 한다.

   
2030년 남북 공동 올림픽으로 함께 국제행사를 준비하는 것도 멋진 통일 여정이 될 것이다. 내일(9일) ‘베를린 축제’ 잘 보시길 바란다. 위대한 국민의 분단 극복 축제다.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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