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호 작가와 내달 1일부터
- 스케치·데생원본·메모 등 전시
- 종이 위에서의 고뇌과정 담겨

- “내 대표작은 음식만화 ‘식객’
- 배낭 메고 전국 누비며 취재
- 인터넷보다 현장 자료 찾아야

- 부산 웹툰작가 창작환경 훌륭
- 시장 가능성 무궁무진한 지금
- 후배들 초조해 말고 걸어가길”

“부산이 웹툰작가들의 창작 환경을 크게 신경 쓰고 배려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와서 보니 정말 훌륭하더라고요. 고마웠죠. 작가들이 보통 집에서 눈 뜨면 이부자리 깔아놓은 채 책상에 앉아 작업하기도 하는 형편이니까요. 후배 작가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이제 창작 환경이 나쁘다는 핑계는 안 통할 것 같으니 열심히 하라고요.(웃음) 나는 1966년부터 만화를 그려 1974년 데뷔했는데, 당시엔 만화가 저급 문화 취급을 당해 만화 그린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시장도 커지고 기술 발달로 웹툰 성장 가능성도 무한하니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일찍 태어난 게 억울하단 생각도 듭니다. 하하”

거장 허영만 화백이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글로벌웹툰센터(오는 31일 개관)에서 자신의 만화 인생과 후배 작가를 위한 당부를 들려주고 있다. 서정빈 기자

‘일흔살의 현역’ 허영만 화백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 화백이 오는 31일 개관하는 ‘부산글로벌웹툰센터(해운대구 우동)’를 찾았다. ‘부산 웹툰’(B웹툰) 도약의 전진기지가 될 글로벌웹툰센터는 작가 창작 공간과 웹툰 전시·체험공간을 갖춘 국내 최초의 웹툰 지원 공간이다. 센터는 다음 달 1일부터 11월 12일까지 개관 기념 전시로 ‘허영만X윤태호전’을 연다. ‘ART IN SKETCH-예술이 된 만화 그리고 웹툰’이라는 이름의 전시는 만화의 위상을 예술로 끌어올린 두 거장의 고뇌와 사색을 담은 스케치와 데생 원본, 비하인드 스토리, 메모를 담아낸다.

전시는 서울·여수(2015년)에 이어 부산이 세 번째다. 허 화백이 44년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도 꾸준히 해온 선 긋기 연습의 흔적, 창작 리듬 유지를 위해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틈틈이 자신을 다잡고자 기록했던 결심과 메모,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수정과 반복을 거듭했던 과정이 그대로 전시될 예정이다. 웹툰이 주류 만화로 자리잡은 오늘날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전시일 수 있다. 요즘처럼 컴퓨터에 바로 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에서는 과정의 흔적이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배경이나 반복되는 인물을 그리는 일이 키보드 단축키로 간단하게 해결되는 요즘 웹툰에서는 불필요한 스케치도 그때는 많았을 것이다.

출판만화에서 웹툰까지 모든 변화를 겪은 허 화백도 현재 연재 중인 ‘3천만 원’은 펜마우스로 작업하고 있지만, 종이에 그려 스캔하는 방식 등도 고민 중이다. 허 화백은 “어느 것이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종이에 그리던 당시 커트나 공백 사이의 긴장도 유지, 압축된 장면에서 오는 리듬과 호흡 등이 웹툰에서는 아쉽다. 나는 여전히 종이에 그리는 것이 익숙해 이 방법을 이어갈 것이다. 최근 펴낸 ‘만화일기’도 종이에 그렸다”고 했다.

‘식객’‘타짜’‘비트’‘각시탈’‘날아라 슈퍼보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등 218편의 작품을 그려온 허영만 화백 스스로 꼽는 대표작은 무엇일까. 그는 ‘식객’을 꼽았다. 소재를 선택할 때 무조건 ‘재미’가 중요하다는 허 화백은, 음식이라는 소재만큼 남녀노소 친근하고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봤다. 연재만 13년인 ‘식객’을 위해 직접 배낭을 메고 전국을 취재했고, 치밀하고 탄탄한 음식만화를 내놓았다. 요즘은 주식투자만화를 그리느라 투자자문단 취재에 열심이다.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한번 실패하면 만회할 시간이 없다. 열심히 조사하고 그린다”고 웃으며 “인터넷 검색이 활발해 후배들이 자료 수집을 따로 하질 않던데, 그건 자신만의 자료가 되기 어렵다. 현장 취재와 꼼꼼한 자료수집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전시에선 부산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허 화백은 “무조건 책상에서 승부가 난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끈질기고 꾸준하게 했으면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이어 “동료들이 먼저 데뷔하거나 앞서가는 것에 초조해 말고 충분히 다지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 나도 문하생만 7년을 했다. 장거리 레이스인 만큼 충전하는 데 집중해 달라”고 덧붙였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