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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반짝반짝 문화현장 <38>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박송이의 새로운 시작

보이지 않아도 문제없어… 피아노는 내 운명

  •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  |   입력 : 2017-11-30 18:50:4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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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에 시력 잃고 우연히 접한 피아노
- 콩쿠르 입상으로 생의 전환점 맞다

- 부산예고 졸업 후 홀로 독일 유학길
- 자립하길 원했던 엄마의 깊은 사랑

- 점자악보 보고 소리로 곡 외우며 한예종 합격 이뤄
- “내가 느낀 감정 관객에 전달하는 연주자 되고싶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로 지역에서 크고 작은 연주를 보여줬던 박송이(26) 씨는 지난달 한국예술종합학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부산예고를 졸업하고 3년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공부하다 돌아온 송이 씨는 연주자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국제 콩쿠르 입상이 꿈인 송이 씨에게 손열음 김선욱 등 젊고 유망한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한예종은 꼭 입학하고 싶은 학교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편함’은 그에게 그리 큰 장벽이 되지 못했다. 내년 3월 입학식 이후 서울 생활을 해나갈 송이 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4세 때 장애… 피아노를 만나다

피아니스트 박송이 씨가 입시에서 치렀던 곡을 연주하고 있다. 송이 씨는 3월 한예종 입학을 앞두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송이 씨는 네 살 되던 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력을 잃었다. 의학계는 5세 미만에 발생한 시각장애는 선천성으로 간주한다. 송이 씨의 시력은 지금 빛과 어둠만 분간하는 정도이다.

피아노는 일곱 살 때 처음 만났다. 동네 학원에서는 거절당했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던 어머니 이경선 씨의 친구가 “가르쳐보겠다” 나서면서 피아노와 인연이 시작됐다. 시각은 잃은 대신 청각이 예민해진 덕인지 송이 씨는 레슨을 곧잘 받아들이고, 악보 없이 곡을 금세 외웠다. 흥미를 갖는 모습에 어머니는 딸을 충청도의 시각장애인 학교인 청주맹학교에 보냈다. 음악교사가 클래식 음악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송이 씨는 중학교 과정까지 맹학교를 다니며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다 음악이 ‘운명’이 된 건 우연히 나간 부산예고 콩쿠르에서 2등에 입상하면서다. 입상자에게 입학추천서가 날아왔고, 일반전형으로 당당히 부산예고에 입학해 과정을 우수하게 마쳤다. 송이 씨는 예고 생활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했다. 기초를 풍성하게 다졌고, 피아니스트의 삶을 거기서 결심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도움도 고마웠다. “생의 전환점”이었다.

■씩씩하고 당찬 연주자

시각장애인용 점자 키보드로 학습하는 모습.
비장애인보다 훨씬 어렵게 음악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은 그를 만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송이 씨는 거침없이 의견과 계획을 말했다. 건반을 정확히 짚어내는 건 “연습하면 다 된다”고 시원하게 답했다. “씩씩하다”는 말에 “너무 대차서 문제”라는 어머니의 농담이 돌아왔다. 좋아하는 연주곡 중 하나도 ‘리스트 에튀드’다. 테크닉이 뛰어나야 소화하는 난곡이지만, 화려하게, 휘몰아치듯 표현할 수 있는 곡들이 즐겁다고 그는 말했다.

씩씩한 송이 씨, 예고 졸업 후 홀로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로 유학길을 떠나 3년가량 공부하다 돌아왔다. 음악이 삶 그 자체인 환경에서, 앞으로 지녀야 할 태도와 자세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연주가 생활이 되는 분위기와 순수하고 학구적인 친구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졸업하진 못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장애를 갖고도 홀로 유학길에 오른 ‘강심장’은 독일 한인사회에서 소문이 났다.

“사람들이 저보고 계모라고 했다니까요.” 어머니 이경선 씨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혼자 독일로 유학 온 시각장애인 음대생이 있다는 소식은 현지에서 그 정도로 화제였다. 송이 씨의 당찬 성격은 어머니의 교육방식 덕분이다. 4세 때 시력을 잃어 충격이 컸지만, 이 씨는 그저 품에 안고만 있지 않기로 했다.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고 싶었다. 부산에 살면서도 초등학교부터 충청도의 학교에 보냈고, 일반 학생과 함께 다니는 예고에 보낼 땐 장애인 부모 사이에 ‘독한 엄마’로 통했다.

“지금은 장애인 학생도 일반학교에 진학시키려 하는 부모가 많지만, 송이가 어릴 때만 해도 장애인은 그들 사회에서 안전하게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이 힘들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든 해주려 하지만, 조금은 더 자식을 믿고 뒤에서 응원해 주는 방법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송이도 눈이 불편하지만,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한다. 그 모습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작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감정 움직이는 연주 꿈꿔

어머니 이경선(뒤) 씨와 함께 한 모습.
내년 3월 입학을 앞둔 송이 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목표는 국제콩쿠르 입상이다. 세계를 무대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연주자가 꿈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연주 테크닉에 무리는 없을까. 송이 씨는 “건반 도약은 연습을 반복하면 감각이 생긴다. 점자악보가 있고, 음악을 몇 번 듣고 나면 대강 음이 잡혀 새로운 곡을 소화하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다. 처음 보는 악보를 곧바로 쳐내야 하는 앙상블 같은 상황은 어려운데, 몇 번 들으면 적응한다”고 말했다. 레슨도 음악적 교감만 있으면 충분하다. 송이 씨를 오랫동안 가르친 진용재 피아니스트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음악적 표현을 설명하면 송이가 금세 알아듣는다. 예쁜 소리를 갖고 있고 음악적 감각도 좋아 앞으로 더 기대된다.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깊고 풍부한 음악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평했다.

도전하고 싶은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테크닉과 음악적 깊이가 엄청난 ‘꿈의 곡’이라며 송이 씨는 환하게 웃는다. “인생의 모든 감정을 노래하는 것 같아 꼭 쳐보고 싶어요. 고뇌, 기쁨, 슬픔, 아픔 등 내면을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표현하도록 작곡했을까 싶어요. 앞으로 꼭 제대로 연주할 날이 오면 좋겠어요.”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피아노가 언제나 새롭고 즐거워 그만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감정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제가 느꼈던 그런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장애인 예술교육 ‘좋은 선배’로

이번 한예종 입시에서 장애인 시험 배려 는 힘이 됐다. 시험 과정에서 점자 악보와 시험문제지가 제공됐고, 관련 규정 범위 내에서 시간도 적절히 배정됐다. 당연한 것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곳이 여전히 많다. 편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렀다.

송이 씨는 예술활동을 하는 장애인 후배의 멘토,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송이 씨는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나설 생각이 있다”며 “장애인 친구들에게 예술 활동은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될 거라 본다. 정책 면에서도 장애인 예술교육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밝혔다.

송이 씨를 늘 지원하는 하사가장애인상담넷 김진 이사는 “서울만 해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예술 단체가 많고, 조금 노력하면 찾을 수 있지만 부산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재능 있는 장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섬세한 맞춤형 복지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사회의 관심을 당부한다”고 전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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