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극 리뷰
- 긴 런웨이처럼 자갈 깐 무대
- 고향 향한 그리움·고난 표현
- 韓가곡·바로크 오페라의 조화
- 동·서양 악기 양식 경계도 지워
# 연출가 루트거 엥겔스 인터뷰
- “고향·정체성 의미 묻고 싶었다
- 내년 1월 베를린 공연 확정돼”
지난달 30일 밤 10시, 경남 통영시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의 가변 극장 ‘블랙박스’ 한가운데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케 하는 긴 무대가 놓이고 양 끝에 서양 악기와 우리 전통 악기가 자리했다. 300석 좌석은 무대 옆에 나란히 배치됐다. 긴 여정 속 고난을 표현한 듯한 자갈이 무대를 뒤덮었고, 그 위로 20년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해 괴로워하는 율리시스가 고통의 아리아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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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TIMF) 개막작 ‘귀향’. 작품 한 장면. TIMF 제공 |
동서양의 언어, 악기, 음악, 인물이 점차 섞이며 만들어 낸 이질적이고도 묘한 어울림은 마침내 양식의 경계를 완전히 지워냈다. 독특한 어우러짐이 탁월한 연출에 힘입어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장르와 의미로 거듭난 것이다. 2013년 통영에서 헨델의 오페라와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의상을 결합한 ‘세멜레 워크’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 루트거 엥겔스(독일)의 두 번째 작품 ‘귀향’ 초연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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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시스 역 바리톤 이응광. |
‘귀향’은 ‘2018 통영국제음악제(TIMF)’의 주제를 ‘귀향’으로 결정한 통영국제음악재단이 루트거 엥겔스에 의뢰해 탄생했다. 고 윤이상 선생이 유해로나마 귀향(국제신문 지난 31일 자 2면 등 보도)한 것에 맞춰 발표된 만큼 올해 축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루트거 엥겔스는 조금은 낯선 바로크 오페라인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귀환(1640 초연)’을 갖고 온다. 트로이 전쟁 10년과 이후 10년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율리시스의 여정에 전통 가곡을 교차시켜 자연스레 고향에 오고 싶지만 올 수 없었던 윤이상의 여정을 떠올리게끔 했다. 루트거 엥겔스는 “고향과 근원은 언제나 나를 사로잡은 주제였다. 나의 나라 독일 역시 분단의 경험이 있고, 이에 따른 고향과 정체성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향과 귀향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극은 흥미로운 요소를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파격적이고도 세련된 연출이 빛을 발한다. 17세기에 사용되던 건반악기 하프시코드, 기타를 닮은 테오르보, 첼로를 닮은 비올라 다 감바 같은 악기를 연주자들이 이동하며 연주했다. 이 악기들은 오늘날엔 볼 수 없는 고악기로,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현을 만들 때 짐승의 내장을 활용했던 전통 방식도 적용한 것이다. 이어지는 아리아 사이엔 우리 전통가곡인 계면조의 ‘사랑거즛말이’ ‘뒷메에’ 등이 이탈리아어 가사와 전통 가곡 창법으로 불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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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기와 서양 악기의 합주. |
대중가요인 김민우의 ‘사랑일 뿐이야’가 상황을 담아 읊조리듯 나오는 것도 독특하다. 남편을 그토록 기다렸지만, 20년이 지나 변해버린 채 나타난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율리시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갈등과 비로소 귀향했지만 진정한 안정과 평화는 찾지 못한 율리시스의 모습은 ‘귀향’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메조소프라노 안나 라지에예프스카가 페넬로페를, 유럽 오페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바리톤 이응광이 율리시스를 맡았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여창가객 박민희가 작품 속 우리 소리를, 유홍(대금) 김웅식(타악) 김준영(거문고) 강지은(해금)이 전통 악기를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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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거 엥겔스 |
개막일 첫 공연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고 즐거웠다”는 루트거 엥겔스는 “관객도 공연의 일부가 되길 원했고, 패션쇼와 같은 무대 배치 또한 그 의도에 따른 것이다. 반응이 즉각적이고 무대와의 소통이 훨씬 긴밀하기 때문인데 의도가 이뤄진 것 같아 좋았다. 바로크 악기와 한국 국악기의 조화도 매우 훌륭한 시도였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며 “내년 1월 베를린 공연이 확정됐고, 벨기에와 영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작품은 꾸준히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