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보다 고발 60배 많은 우리나라
- 저신뢰 사회라 형사처분 만능주의 만연
- 법은 대규모 경제·강력범죄 집중해야
- 지역공동체에 갈등 해소 프로그램 필요
- 공권력보다 시민 권력 잡아야 사회발전
길에서 시비하는 사람이 고함을 지른다. “그래, 법대로 해라.” 법대로 해라는 말은 네 마음대로 해 보라거나 고소하라는 뜻이다. 한국은 경이로운 경제성장만큼 형사 분쟁도 성장해 고소 왕국이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 1만 명 당 한해 평균 고소·고발은 80건에 달한다. 일본이 1만 명 당 1.3건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무려 60배 이상 많은 수치다. 저신뢰 사회가 된 한국은 엄청난 국가 에너지를 수사와 처벌에 쏟고 있으나 과연 사회를 정화하는 효과를 내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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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주요한 활동 장소인 법정 모습.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는 ‘생활형 검사’로서 겪은 온갖 사건과 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제신문 DB |
수사기관의 대표가 검사다. 우리는 검사를 잘 아는 듯하지만 실은 잘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검사 이미지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떵떵대며 음모에 도가 튼 정치검사다. 권력과 정치 검찰은 서로 공생하며 이익을 주고받는다. 한국 검찰을 망쳤다고 평가받는 이들 정치 검사는 극소수다. 검사 대다수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생활형 검사다. 2000년부터 시작해 어느덧 18년 검사 생활을 이어온 저자의 이상형이 ‘생활형 검사’다. 이들 검사는 새벽마다 거리를 깨끗하게 치우는 청소부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보람을 찾는다. 책에는 저자가 생활형 검사로 살면서 겪은 온갖 사건과 법을 바라보는 시각이 색다르게 녹아 있다.
혹시 사기당해본 경험이 있는가? 그 사람이 정말 그럴 줄 몰랐다 라며 펄펄 뛰는 피해자라면 책 첫 장의 ‘사기 공화국 풍경’에서 위로받을 수도 있다. 한국에는 목숨 걸고 뛰는 ‘연쇄 사기마’가 즐비하다. 수십억 원대 어음 사기를 수십 회 태연히 저지르며 지명수배조차 해제해버리는, 사기의 신조차 우러러볼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몇 년 사이 40회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가운데 전치 6주 진단을 받고서도 3일 만에 쌩쌩하게 완치돼 걸어 다니는 초능력자도 있다. 슈퍼맨을 닮은 교통사고 자해 사기꾼에게는 뒤를 든든하게 봐주며 허위 진단서를 끊는 공범 병원과 수리비를 뻥 튀기는 자동차 정비업체가 서 있다. 프랜차이즈 가게를 운영하다 고객 숫자와 매출액을 조작해 높은 가격에 가게를 넘기는 고단수 사기도 있다. 이들 사기꾼은 서민의 삶을 망가뜨리니 생활형 검사가 어찌 열심히 수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법 운용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으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지도 의심스럽다는 주장이다. 회복적 사법 제도와 형사 조정 제도, 지역 공동체 갈등 해소 프로그램 등이 필요한 이유다. 역사를 돌아봐도 최근 들어서야 법이 분쟁 해결에 나서게 됐다. 원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분쟁은 공동체에서 타협과 양보를 통해 해결했다. 소방관, 경찰관, 의사, 교사, 검사 중 가장 최근에 생긴 직업이 검사다. 검사는 서양에서 불과 200여 년 전 생긴 신흥 직업이다. 형사 처분은 사회를 다스리는 만능 수단이 아니며 최후 수단일 따름이다. 저자는 형사 처분은 진통제와 같아 자꾸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하고 강력한 범죄, 계획적 재산 범죄, 대규모 경제 범죄 등에 터무니없이 온정적인 판결이 나온다고 비판한다. 한국에서 법은 늘 가진 자와 권력자의 편이었다. 얼마 전까지 재벌 기업인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정찰제 판결을 받고 1심에서 석방됐다. 그러니 검찰과 법원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저자는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공권력 기관이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언제까지 시민이 검찰과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사회로 살아야 할 것인가. 법 대신 신뢰로 해결하는 사회로 전환이 시급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