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알게 된 광적인 애서가 이야기
- 책 한 권 때문에 집까지 무너뜨린 그는
- 위험하고 우둔했지만, 낭만적이었다
- 좋은책 나누며 그 매력에 빠져보려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띤 이 책은 책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전 문헌학 전공인 레오나드 우드 교수는 노년에 이르러 반신마비가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다섯 권이 제자리에서 빠져나와 그의 머리에 떨어져 버린 탓이었다. (중략) 내가 아는 어떤 칠레산 개는 웬일인지 몹시 성이 난 어느 날 오후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몽땅 삼켜버린 뒤 소화불량으로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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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형식을 띤 ‘위험한 책’은 애서가들의 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위트 있게 풀어내고 있다. 광기에 가까운 책에 대한 열정이 한편으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은 도서관의 장서. |
이야기의 문을 여는 인물인 블루마 레논은 책방에서 에밀리 디킨스의 구판본 시집을 사서 교차로에서 시를 읽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는다. ‘나’는 한 때 그녀의 연인이었고, 그녀의 뒤를 이어 연구실을 사용하고 강의를 이어받게 된 동료로 어느 날 그녀 앞으로 온 소포에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묻어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녀가 다른 지역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짧은 로맨스 상대였던 브라이어라는 인물에게 주었던 책이 2년이 지나 시멘트 가루가 묻은 채 다시 돌아온 것에 복잡한 호기심을 느낀다. 결국 수취인이 죽고 없으니 이 책의 주인인 ‘브라이어’를 찾아 돌려주겠다며 여정을 떠난다.
주소나 메모 등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브라이어라는 인물을 추적하며 ‘나’는 몇몇 독서광이나 책 수집가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브라이어라는 인물도 희귀본 책들을 비롯해 2만여 권의 장서를 수집하고 보관하던 광적인 애서가 중 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혼 등 여러 문제로 가세가 기울던 이 인물은 그 수집벽과 더불어 19세기 취향으로 촛불을 켜놓고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다가 잠든 사이 촛대가 넘어져 불이 번졌다. 다행히 책들은 무사했지만 자신이 모아온 책을 꼼꼼하게 정리해둔 서지 목록이 불에 타버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자신만의 책의 분류와 회로가 통째로 날아 가버리고 말았다. 혼돈에 빠진 그는 포기할 수 없는 그 책들을 한적한 바닷가로 옮겨 책으로 기둥과 벽을 쌓아 시멘트를 발라 오두막을 지었다. 보르헤스, 카프카, 칸트, 헤밍웨이, 아리스토텔레스 등 숱한 고전과 장서들이 벽돌을 대신했다. 나중에 그 바다의 오두막까지 찾아간 ‘나’는 그곳에 사는 어부들을 통해 그가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집 이곳저곳을 부수기 시작했고, 결국 집이 무너져 내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사 갈 때마다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책을 이고 지고 날라본 사람,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적인 소득을 기입하듯 해와 달과 날을 기록하는 사람, 첫 장에 자기 이름을 적거나 공공도서관처럼 도장을 찍어 놓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소설 속 인물들의 과도한 책에 대한 집착도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과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때로 우둔할 정도의 집착이 지니는 위험성을 위트 있게 드러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광기에 가까운 책에 대한 열정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주 광안리 근처 ‘생각하는 바다’라는 책 읽는 공간을 열었다. 책장 한 칸씩을 분양해 여러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채우고 사람들이 그 책을 꺼내볼 수 있도록 했는데 벌써 30명 넘게 분양을 신청했다. 소설 속 인물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좋은 책을 모으고, 나누고, 자랑하고 싶어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죽어도 그리 나쁜 죽음은 아닐 것 같고 사랑에 빠지는 것을 비롯해 어떤 낭만이든 사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좋은 책을 나누는 낭만에 목숨을 걸 만큼의 위험이 꼭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겠고.
생각하는 바다 대표·문화기획자